사전오기(四顚五起), 삶의 시작

by 꿈의복지사

새로운 삶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기다리던 울릉도 직장에서 입사 통보가 왔다. “5월부터 출근합시다.”

울릉도까지 직접 면접을 보러 갔던 수고가 통한 걸까.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문득 이력서에 적었던 문장이 떠올랐다.‘사전오기(四顚五起)의 마음으로 지원합니다.’

벌써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뒤였기에 절실한 마음을 담고 싶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두드린 끝에, 마침내 기다리던 문이 열렸다. 그날은 따뜻한 바람이 불던 4월의 봄날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원한다면 그냥 들어가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관광으로 스쳐 갔던 울릉도와, 삶의 터전을 옮기는 울릉도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잠시의 휴가가 아니라, 생계를 걸고 옮기는 일이기에 단순히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뚜렷한 생계 보장 없이, 그저 동경만으로 울릉도에 들어가는 건 퇴사보다 더 무모한 선택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더욱 신중히, 그리고 또 신중히 고민한 끝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내린 이상, 더는 꾸물거릴 틈이 없었다. 나를 위해 자신의 일을 흔쾌히 내어준 동생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지만, 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는 여정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지만, 그 감정마저도 새로운 출발의 일부였다.

이제 육지 생활을 정리하고, 하나씩 준비를 시작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해보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숙박’이었다.

잘 곳이 확보되지 않으면 생활의 기반이 흔들린다. 그 외의 것들은 차차 마련해도 괜찮았다.

도동.jpg 산 중턱에서 바라본 도동

그렇게 급히 울릉도행 배에 올랐다.

울릉도에는 전세 개념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 월세고, 관광지인 만큼 일반적인 거주용 월세집도 수요가 많지 않다.

설령 월셋집이 있더라도, 육지에서 상상하는 원룸과는 거리가 멀었고 금액 또한 만만치 않아 기준에 맞는 집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현지에 대학교 후배가 있었고 그를 통해 식당을 운영하시는 ‘울릉도 어머니’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어머니는 젊은 사람이 육지 생활을 접고 울릉도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안타까우셨는지, 친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렇게 어머니의 소개로 관광버스 기사님이 거주 중인 집을 알게 되었다. 섬 중심부에 위치한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방은 두 칸. 하나는 기사님이 쓰고 있었고, 다른 하나가 비어 있었다.

잠시 들러 살펴보니 방은 넓고 쾌적했지만, 보일러와 가까워 기름 냄새가 심했다.‘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입주를 결정하고 다시 대구로 돌아와, 섬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가져갈 것은 정리하고, 필요한 물품은 마트에서 구입해 짐을 꾸렸다.

내일이면 대구를 떠나 울릉도로 향한다.

정든 집은 우선 비워두기로 했다.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고, 사람이 살던 집처럼 말끔히 정리했다.

10년 가까이 살아온 공간을 떠나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지금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과연 맞는 것일까?’

혼란스러웠지만, 내 인생이 늘 순탄했던 것도 아닌 만큼, 이번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다음 날, 차를 몰고 포항에 있는 후배의 복지관으로 향했다. 차는 입도 시점이 아직 애매해 복지관 주차장에 세워두고, 큰 캐리어 하나와 배낭을 둘러멘 채 후배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이른 아침, 포항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바다 내음을 맡으며 터미널에 도착한 순간,‘이제 정말 가는구나’ 실감이 났다.‘결정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보자.’

배는 오전 8시 30분, 포항 선착장에서 출발해 약 4시간 후 도동항에 도착한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좋다.

섬사람들은 이런 날씨를 두고 말한다. “바다 기상이 좋아 파도가 잔잔한 날은, 장판을 깔았다고 한다.”

오늘이 바로 그 장판을 깐 날이었다.


4시간의 항해가 지나고 마침내 도동항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과 갈매기 울음이 마치 입도를 환영하듯 나를 반겼다.

이제, 두 번째 스무 살,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새로운 인생을 향해, 새로운 집이 있는 언덕길을 오른다…



집에서본 도동항.jpg
도동성당 성모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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