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살아본다는 것 Ⅰ

관광객에서 현지인으로

by 꿈의복지사

드디어 입도. 낯설지 않은 도동항 배에서 내린 뒤 도동항 근처 언덕길을 걸었다.

바람은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상쾌함이 나를 맞아주는 것 같았고,

갈매기 소리는 아직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어제와는 달랐다.

나는 오늘, 여행객이 아닌 주민이 되었다.


KakaoTalk_20250522_153817559_02.jpg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리분지

이삿짐은 우선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많지 않았다.

캐리어와 배낭에 계절에 맞는 몇 벌의 옷, 책 몇 권, 작은 주방 도구들...

소소한 것들이지만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러나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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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산책로 삼선암

‘이제 나는 이 섬에서 산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한 건, 그날 밤이었다.

방 한쪽에 캐리어를 내려놓고 앉았을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밥은... 어떻게 먹지?"

관광객일 때는 늘 음식점이 반겨주었다.

섬 특유의 정겨운 반찬과 생선구이, 홍합밥, 따개비밥, 명이나물, 전호나물 등등.

하지만 주민으로 살기엔 그 맛도 비싸고 자주 먹기엔 무리였다.


마트는 일찍 문을 닫았고, 편의점은 생필품 외 육지에서 판매하는 것들일 뿐 편치 않았다.

급히 밥솥을 꺼내고, 가져온 쌀을 씻었다.

그날 저녁은 포항 죽도시장에서 사 온 콩잎장아찌, 계란을 넣은 라면이었다.

처음 울릉도에서 혼자 차려 먹은 한 끼.

초라했지만,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며칠 뒤, ‘울릉도 어머니’가 반찬 몇 가지를 나눠주셨다.

“섬은 생활 처음이니, 뭘 해 먹는 것도 힘들 테니 밥 먹을 때 이거 조금씩 곁들여 먹어.”

정겨운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식당을 하시는 분이라 조금씩 만들어둔 반찬을 나눠주셨다. 오래된 인연이지만 자주 뵙던 분도 아닌데 이렇게 정을 나눠주신다.

나는 지금 이 섬에서, 낯선 누군가의 정으로 살고 있다.

관광객으로 왔을 때 신비로운 섬, 천국 같았던 곳,

그러나 이제는 현실

처음엔 불편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대도시에서는 대형마트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던 것들이 여기에서는 큰 숙제처럼 해야만 했다. 주문 배달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인터넷 쇼핑은 기상에 따라 지연되는 경우가 있어, 미리 필요한 것을 전쟁 나가는 군대처럼 미리 준비해 놓는 생활의 지혜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사도 될까?’보다 ‘이걸 꼭 사야 하나?’**를 먼저 따졌다.

육지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하나둘 달라지면서, 나도 모르게 선택이 단순해졌다.

대부분 물건은 인터넷 쇼핑으로 해결했다.

그래도 가계에 몇 번 들렀을 즈음, 상인 몇 분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단골이 생긴다는 건, 섬살이에서 큰 기쁨이었다.

누군가 나의 얼굴을, 나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

그건 어쩌면 ‘이곳에 살아간다’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섬 생활 살림살이는 기상에 제일 민감해야 한다.

어느 날, 강풍으로 여객선이 결항되었다.

그럴 때 떠나지 못하는 관광객에 현지 주민의 필요한 생필품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배가 일주일째 들어오지 않으면 편의점에서 흔한 우유가 사라진다. 구경할 수 없다.

처음 겪는 섬의 단절.

하지만 같이 생활하는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야. 진짜 태풍은, 며칠을 집 밖에 못 나가.”

심지어 70년대 겪었던 단전, 단수도 여기서는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이 섬의 시간을 배우고 있었다.

며칠 뒤, 울릉도 어머니의 초대를 받았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갔다.

어머니의 가족과, 대학후배, 그리고 함께 생활하는 관광버스 기사 아저씨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섬에서 귀한 삼겹살에 쓰디쓴 소주 한 잔 이야기꽃을 피우며 나는 느꼈다.

섬에서의 삶은 관계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

관광객은 매일 들어오고 매일 떠난다.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섬’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섬의 날씨에 민감하고, 어느 식당이 언제 문을 닫는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울릉도를 여행하지 않는다.

이제는 울릉도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물었다.

“여기 사신 지 오래됐어요?” 관광객의 물음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오래되진 않았지만, 여기에 살아가려고 해요.”

너무 편하게 입고 편하게 생활하고 편하게 섬을 거닐다 보니,

딴에는 섬사람 아닌 듯 보이려 했으나 그렇게 보였다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광객도 아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생활에 한층 여유로움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다.

다음 주엔 성당, 그리고 일터에서 만난 환갑을 바라보는 형님과 명이나물 밭에 농약 치러 간다.

그렇게 그 섬에서, 나는 조금씩 ‘우리’가 되어간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생기고, 내 자리가 생긴다.

낯선 섬에서 낯선 사람들과 호흡 그 모든 순간이 말해준다.

“짜식, 이제 섬사람 티가 좀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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