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나를 또 따로 조용히 부르신다. '까불면 일찍 죽는' 공포영화 클리셰처럼, '회의실에서 상사와 독대'는 불길함의 상징이다. 슬픈 예감은 오늘도 적중하며 별로 놀라지도, 화나지도 않는다. 차분하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꾹꾹 눌러왔던 것들이 또 터져버린다. 눈망울에 눈물이 한가득 차오르는 것을 겨우 참아보지만, 이미 충혈이 되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말
"원래, 그렇게 걸핏하면 우나?"
<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대사 中 // 7세 아들이 방구석에서 훌쩍이는 뒷모습.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힝 > 업무가 버거워 신체는 한계에 달하고, 내 맘대로 안될 정도로 감정도 소진되었는데, 거기에 화룡점정을 더한다. 내가 애써서 이룬 것들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유언비어는 내가 고쳐야 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씁쓸했다. 지치고 외롭고 힘들 때, 나만의 에너지 부스터를 찾는다. 무선 이어폰을 들고 화장실에 가서 딱 한 곡만 듣고 온다, BTS 진이 부르는 Awake를.
믿는 게 아냐
버텨보는 거야
할 수 있는 게
나 이것뿐이라서
...
온통 상처투성이겠지
But it's my fate
It's my fate
그래도 발버둥 치고 싶어
Maybe I, I can never fly
저기 저 꽃잎들처럼
날갤 단 것처럼은 안 돼
Maybe I, I can't touch the sky
그래도 손 뻗고 싶어
달려보고 싶어 조금 더
이 어둠 속을 그냥 걷고 또 걷고 있어
행복했던 시간들이 내게 물었어
너 넌 정말 괜찮은 거냐고
난 대답했어 아니 나는 너무 무서워
그래도 여섯 송이 꽃을 손에 꼭 쥐고
나 난 걷고 있을 뿐이라고
-BTS(진), Awake-
BTS 진의 수려한 외모에 끌려 노래를 듣긴 했지만, 세상에 잘생긴 사람은 많고 나의 마음은 갈대 같기에 누구를 꾸준히 좋아하는 것은 힘들다. 특히 지금처럼 에너지가 모자란 내 삶에 '덕질'이란 항목을 추가하려면, '그 무엇'이 있어야 했다. '진'은 BTS에서 맏형이지만, 막내미를 뿜어내며 '맏내'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천진난만 순진무결하다. 냉미남의 외모와 상반된 개구쟁이 모습에 한참 매료되던 중 그의 오래전 인터뷰를 보고, 내가 그에게 쏙 빠진 이유 '그 무엇'을 발견했다.
그래, 진아 (2015년에) 넌 정말 수고를 많이 했어.
(2016년에도) 수고를 굉장히 많이 할 테지만,
너의 수고, 내가 알고 있으니까
너의 수고는 너만 알면 돼.
그래, 앞으로도 파이팅하고
나는 너를 언제나 응원하고 있단다.
진아, 석진아, 김석진 파이팅
-'진'의 셀프 인터뷰 中 -
2021년이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진'과 달리 '나의 수고'를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나 보다.
'꼭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돼, 내 일을 묵묵히 하자'라고 되뇌어 보았지만, 결국 인정의 욕구를 자인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격려가, 브런치에서는 공모전 성과가, 가정에서는 가족들의 칭찬이 필요했나 보다.
자꾸 무언가를 바라고,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혼자 허탈해했나 보다.
방탄소년단 진을 좋아하게 되었던, 저 결정적 인터뷰 영상을 다시 본다.
자신의 수고는 자신만 알면 된다며,
스스로를 응원하는 모습을 닮아보려 노력한다.
인생 연차는 나보다 한참 어림에도 성숙한 저 자세에,
(안 그래도 잘생기면 '오빠'인데) 역시 '석진(오빠)'라며, 오늘도 덕질하는 나를 흐뭇해한다. 하하하.
<공감가득한 언어로 위로를 전달하고, 영광가득한 외모로 위안을 선사하JIN, 캬 / 출처 : GQ >
사실, 나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상사와의 오해가 애매하게 나를 불편하게 하는 날,
내가 진짜 듣고 싶은 위로의 말.
직장과 육아를 모두 퇴근한 후,
허탈한 내 마음을 달래주는 것.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필요할때마다, 타인이 '인정'해주면 고맙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가끔 절묘하게 타인이 내가 필요한 '인정'을 해줄 때는, 매우 고맙고 소중하다.)
표현이 서툰 나의 복잡 섬세한 마음을 타인이 알아주기 쉽지 않을뿐더러,
알았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긴 어려울 것이다.
'인정'은 '타인의 영역'으로 내가 원할 때마다 얻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해주려 한다.
BTS 진처럼, 수고 많았고 수고 많을 자신을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다, 셀프 인정 및 격려.
"나 괜찮나?" 하는 순간,
"나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내가 되어보려 한다.
상담실에서도 '인정'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결론은 같았다. 시도때도 없이 필요한 인정은 결국 '내가'해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물론 결론과 실천사이에 갭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특히나 이 날의 상담은 뼈를 정통으로 맞아 순살이 된 날이어서 더욱더 그 갭이 컸던 것 같다. 하하하.)
심리상담선생님 : 맞아요. 그럴때 마다 내 마음을 알고, "너, 괜찮아? 그래, 00야. 너 그 상황에서 진짜 속상했겠다."라고 토닥토닥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 계속 인정을 못받는다면 그것은 더 속상한 일 같아요.
나 : 맞아요. 두배로 속상할것 같네요. '원래 속상한 일' 더하기 '그럴 날 위로해줄 사람이 없는 것'.
심리상담선생님 : 조금 아픈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가끔 00씨는 성인에게 맞지 않는 바람을 가지는 때가 있는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정받은 경험이 그리 많지 않고, 타인과 감정을 건강하게 주고받은 기억이 별로 없어서 일수도 있어요. 그래서 일종의 현실에는 존재하기 힘든 '환상', 내가 힘들때마다 날 온전히 위로해줄 사람이란 '환상'을 갖고 있는 거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다 큰 어른에게 그런 바람은 적절하진 않은거 같아요. 어린아이라면 몰라도, 성인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사람이 늘 있을 수 없다는 걸요. 그렇다면 성인인 00씨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존재하는 방법을 찾아야해요. 상황과 타인탓만 하며 하염없이 기다리기에는 너무 속상한일이잖아요.
나 : 타인에게 기대하기보다는, 그 기대한 바대로 내가 스스로에게 인정을 해준다. 특히 내 안의 어른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며,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이런 말씀이신거죠?
심리상담선생님 : 쉽지 않은 일이에요. 누구에게나 인정의 욕구는 있으니까요. 그래도 타인에게 막연히 구하는 거보다 내가 노력해보는게 더 쉬울수 있어요. 한번 해보세요.
최근 인터뷰에서 BTS 진은 새해를 맞아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잘해왔고, 잘하고 있다"
비록, 난 그가 말하는 '젊은 친구'는 아닐지라도 나에게 딱 필요한 말이기에 또 한번 마음에 새긴다.
이미 잘해온 나에게, 잘하고 있으며, 잘할거라고 토닥여본다.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인정해준다.
진,
언제나 응원해.
덧.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었지만, 사실 아직도 나의 인정 욕구는 부지불식간에 출현하여 허탈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에 빠져서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예전 같으면, 나에게 '이것밖에 못하겠어? 좀 더 노력해봐.'라고 채근했겠지만
'진'의 셀프 인정을 본받아 '지금 내가 많이 버겁구나. 그럴 때도 있지. 지금도 괜찮아.' 해준다.
그렇게 또 하루를 버텨본다.(BTS 노래와 함께)
< 땀흘리며 수고하JIN, 언제라도 응원하JIN. 석진보며 힐링하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