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는 맞고, '힘든 사람'은 틀리다.

지나가. 언젠가, 분명히, 확실히.

by 나다움

뭐든지, 내가 경험해본 것은 약간 편하게 생각한다. 결과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함이 줄어든다. 코로나 백신 3차가 그랬다. 이미 2번의 경험으로 나에게 예상되는 부작용(간지럼증)에 별도의 약을 처방 받음으로써 대비했다. 주변에서 1,2차에 비해서 별로 안 아프다는 얘기에 더욱 안심했다.

모든 것에 예외가 있다. 간과한 변수도 있었다. 새해 첫날부터 새벽 3시에 기상한 나의 체력은 면역력이 바닥이었다. 부스터 샷에 내 몸이 부스러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임시 겨울잠을 이틀 자고, 되살아났다.


너무 아파서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더 아픈, 악순환을 끊기 위해 침대에 우선 누웠다. 책을 집어 든다. 따뜻한 이불 안에서 책을 5~10장 정도 읽으면, 어느새 눈꺼풀이 영업 종료를 알리며 스르르 닫힌다. 거기에 BGM은 바로 이 노래다.




지나가, 언젠가. 분명히. 확실히.

지나가, 언젠가. 분명히. 확실히.


밤이 가고 아침이 오듯이, 봄이 가고 여름이 오네

꽃이 지고 열매가 익듯이, 모든 것은 아파야만 해


세상을 안고 숨을 훅 들이마셔 봐

내 폐 안에 가득 들어찬 따가운 공기가

모든 걸 말해 그래 수없이 도망치고 싶었던

아파하고 무뎌지던 오랜 시간들

바로 그 아래 everyday



I pray

내가 좀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게

and everyday I stay

사람도 아픔도 언젠가는 죽기에

무뎌지려면 바람을 맞아야 하잖아

꿈속에서는 영원할 수가 없잖아


힘내란 뿌연 말 대신

다 그렇단 거짓말 대신

그저 이 모든 바람 바람처럼 지내가길

pray

(Everything, everything, everything goes

Everything everything everything goes)

지나가 지나가 지나가 지나가


지나가, 비가 와.

모든 건, 지나가.


-RM(BTS), 지나가 -


힘내란, (상투적) 뿌연 말 대신에. 다 그렇단 (새빨간) 거짓말 대신에. 그저 바람처럼 이 아픔이 지나가길 기도하며, 이 노래를 들었다. 주사가 아프긴 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이미 2번의 경험이, 이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괜찮아질 것을 알기에.


나에게 '번아웃'과 '우울증'도 코로나 부스터 샷과 같다. 아프긴 하지만, 무섭진 않다. 경험이 차곡차곡 누적된 나의 시간들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나간다고, 모든 건 지나간다고.

어제는 오랜만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은 제일 먼저 이렇게 묻는다. "요즘은 좀 어떠신가요?" 그러면 나는 멋쩍게 웃으며, "네, 그래도 잘 지냈어요. 일도, 육아도 더 힘든데도 잘 버텼거든요. 물론 한 번씩 폭발할 때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잘 지냈어요, 이 정도면." 하고 말한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처럼 훌쩍이지도 않고, 죽만 먹고 3일 버틴 사람처럼 맥없이 말하지도 않는다. 영어로 "How are you?"로 물으면 웃으며 "I'm fine. thank you."가 자동으로 발사되듯이, 이제는 한 문장에 그간의 나의 생활을 담되, 담백하게 알린다.

출처 : https://youtu.be/8a3CngAgmKg

유튜브의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백신 주사처럼 내 마음에 뭉근하게 머문다. "나는 힘든 사람"이 아니라 "지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 거기에 RM의 '지나가'란 노래를 덧붙이면 이렇게 된다. "그 힘든 시기는 지나가. 언젠가. 분명히. 확실히."

먹고 소화시키는 것도 귀찮아서 내리 20시간 가까이 자고 나서야 겨우 기력을 회복해 이렇게 글을 쓴다. 이렇게 부스터 샷도 '지나감'을 선언한다. 물론,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처음 맞을 때는 이렇게 부스터 샷까지 맞을지는 몰랐다. 우스갯소리로, '파이널 샷', '피니쉬샷', '디엔드샷' 등등 63차 접종까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미리 염려하진 않는다. 그때되서 예약하고, 주사 맞고, 또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백신주사가 주는 고통이 있지만, 그 경험으로 내 안에 코로나 면역력을 쌓는다.



내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심리상담을 받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굳이 알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는다.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말하기도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료의 과정의 장단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의도와는 달리, 이것을 나의 '약점'이라 생각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물론 그럴때마다, 이 사람과는 손절해야하는 타이밍이구나, 하고 오히려 쿨하게 인간관계 정리포인트로 잡기도 하지만, 그게 꽤 오랜시간 친분을 쌓아온 관계라면 속상함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 상담선생님과도 대화를 나눠보았던게 기억이 난다.



나 : 선생님도 제 상태가 주변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말을 들었을때 처음에는, 와 이 사람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 아픈 것가지고 공격하는 진짜 상종못할 사람이네, 했다가 또 저의 익숙한 심리도식 있잖아요. 제탓하기. 진짜 그런 면이 있으니까,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건 아닐까 하는 내 안의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심리상담선생님 : 글쎄요... 제가 모든 우울증을 겪는 분들을 다 만나보지 않아서 지금 하는 말들이 위험하다는 건 아는데요... 오래 우울증을 겪고 약물을 복용하시는 분들은 일상적인 업무도 겨우..해내세요.


나 : 그쵸... 쉽지 않아요.


심리상담선생님 : 여기서 포인트는 "겨우"에요. 근데 00님은 난이도 높고 많은 업무도 잘 해결해나가고 계시고, 그 와중에 자기개발도 진짜 열심히 하히고 뭐 하나 대충하시는게 없잖아요.


나 : 열심히 하려고는 해요.


심리상담선생님 : 열심히 하려는게 아니라 완전 열심히 하시죠. 상담도 엄청난 에너지 소진과 정신적 피로도가 동반하는 업무에요. 전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해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나 :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제 몫을 못해서... 어쩌면 그래서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받는거 같아요. 제 몫을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심리상담선생님 : 00님을 탓하는 그 분의 말에는 화가 나고, 그 타인의 말을 바로 인정해버리는 00님의 행동에는 마음이 찢어져요... 지금처럼 여러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생각을 듣는 것도 너무 좋아요. 00님은 참 강해요.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 엄청나요. 불안하고 두렵긴해도 잘해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아셨죠? 누군가의 편협된 생각을 굳이 내 안에 심지 마세요. 지금도 잘 하고 충분히 잘 하고 계세요.



내 안의 '우울증'도 그렇게 '지나갈 것'을 예견해본다. 물론, 내가 이렇게 꽤나 오랫동안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우울증이 잠잠해지면, 어느새 갱년가 되어 제3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미리 두려워하진 않는다. 심각해지면, 지금처럼 병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심리상담도 받으면서 그렇게 또 일상을 유지할 것이다. 힘든 시기가 주는 고통이 있지만, 그 경험을 내 인생에 오롯이 새긴다. 나는 힘든 사람이 아니라, 지금 힘든 시기를 지나는 사람이기에.



덧.

이제는 괜찮아진 줄 알고, 컴퓨터에 앉아서 글을 쓰니 다시 온몸에 힘이 빠지며 뼈가 흐물흐물거린다.

다시, RM의 중저음 목소리가 매력적인'지나가'를 틀어본다.

아직 덜 지나간 부스터 샷의 여운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며.


이왕지사 이딴 식으로 계속 아플 거면,

회사가는 '내일'까지 아프길 바란다.

일요일 밤까지 쭉~아프다가,

꼭 월요일 아침 되면 멀쩡해지더라.

나는 천상 직장 노예 체질인가,

이 뼛속부터 노예 체질은 언제 '지나갈 것'인가. 허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