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감자밭 있다.

어긋나는 건 너무 아픈 것, 겪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

by 나다움

나는 마이너스의 손, 파괴의 여왕, 겁 없는 자이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고, 애들 장난감을 조립하다 부숴버리며, 총알택시를 놀이기구 타듯 즐긴다.

내 몸에 있는 것들은 더욱 심각하다. 두 번의 출산으로 머리카락은 속절없이 이탈하기에 바쁘고, 내 안의 칼슘은 파괴되어 비 오는 날 먼지 쓸려가듯이 사라져 시큰거림을 남긴다. 얼굴에 탄력 역시 나와 이별을 고하며 굳이 주름을 선물하고 사라져도 그러려니 했다. 있던 것도 사라지는 내 몸에 무언가 끊임없이 줄기차게 자라고 있단 사실은 좀 어색하다.

그 ' 어색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유방외과에서였다. 작년에 종양이 생겨서 제거했는데, 그게 흔하지 않은 엽상종양이라며 재발 확률이 높다고 했다. 예방법은 딱히 없고 정기검진을 정기적으로 평생 해야 한다는 말만 덧붙이셨다. 그럼 제거한 것만 잘 지켜보면 되냐는 나의 질문에,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신다.

"감자밭이에요 감자밭. 제거한 거 외에도 종양의 개수가 많아요, 이중에 어떤 게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정기검진을 계속해야 해요. 아셨죠?"

그렇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가슴에 무수히 많은 감자들(?)을 키우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뭐든 내 손만 닿으면 죽는 게 일상인 나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는데 계속 뭔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뭔가 자라면 보통은 크기가 커지는데 그런 것도 없어서 실망했다, 하)

어느새 종양을 제거한 지 6개월이 지났고, 다시 자라지 않았는지 검사를 하러 대학병원에 갔다. 예상했던 일은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그나마 감당할 자세가 되어있다. 하지만 갑작스레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잠시 얼어붙곤 한다. 제거해낸 종양 자리에 다시 종양이 자라는지 확인하러 간 병원에서, 그 외에 또 다른 곳에 종양이 생겼고 제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일주일 전 초음파 촬영할 때, 내 가슴의 감자(?)들이 워낙 많아 한참을 찍고, 그중에는 크기가 꽤 큰지 몇 센티인지 재는 것을 보았다. 어느 정도 오늘의 수술 선고를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미루고 싶었나 보다. 나의 짐작이 아닌, 의사 선생님의 '2박 3일 감자 수확 진단'은 불편한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결국 유예되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태어난 김에 사는 여자이자, 전주에 놀러 온 김에 대학병원에 가는 사람이었다. 원래 목적은 대학병원 진찰이었지만, 순서를 잠시 바꾸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병원 가기 하루 전날 전주에 와서 여행자의 코스를 밟아가며 한옥에서 쌍화차를 마시는 일정을 구겨 넣었다. 병원을 가는 당일에도 택시에서 점심메뉴를 고민했더랬다. 콩나물 국밥과 피순대국 사이에서 갈등하고, 커피와 황차 사이에서 고뇌하던 차였는데, 갑작스러운 수술 이야기는 원래 내가 전주에 온 목적을 상기시키며 현실로 나를 옮겨놨다.


심리상담선생님과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그때는 처음 내 안에 감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게 암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조직검사를 했던 시기라 지금보다 조금 더 걱정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 : 조직검사 결과는 1주일 후에 나오고, 만약에 암일 경우에는 큰병원에서 진료를 다시 받아야 할 것 같대요. 종양이 자라나는 속도가 빠르고 모양도 예쁘지 않아서 조직검사를 한거구요. 근데요, 그 와중에도 전 만약에 수술을 하게 되면 0일, 0일, 0일은 안되겠다 왜냐면 회사에 일정을 바꿀 수 없으니까, 수술을 하게 되면 실비보험으로 되는건가, 제출해야하는 서류는 뭐지 등등 뭔가 문제해결형 생각밖에 안들더라고요.하하하


심리상담선생님 : 00님, 전 그게 속상해요. 사실 조직검사를 할 정도면 그렇게 가벼운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어쩌면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생각되는 부위에 종양이 생겼어요.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얼마나 놀라고 슬프고 힘들고 당황스러우며, 왜 나에게 이런일이 생겼을까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아직까지 결과가 나온게 아니니까 나를 토닥이기도 하고 등등 여러가지 감정이 들겠죠. 그런 여러가지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안에 머물러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00님 마음이 어땠어요? 회사에서 일정 조정 말고, 보험회사에 청구해야 할 서류 말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슬프다거나 놀랐다거나 등 내 마음을 충분히 인정해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요? 회사의 연차일정, 실비보험 처리 등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만, 내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버린다면 그거야말로 저는 너무 속상해요. 어쩌면 그게 익숙한 생활패턴이라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그 생각자체를 못했다 하더라도, 지금이라도 충분히 그때의 내 감정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야, 배운 것은 실천하는 여자로서 그때의 이야기를 상기하며 이번엔 내 마음에게 묻는다. 지금 어떠냐고. 억울했다. 뭐 좋은 거라고 자꾸 몸에 생겨서, 마치 여드름 짜러 피부과 가듯이, 정기적으로 유방외과에 가야 하고 갈 때마다 수술을 한다는 게 속상했다. 큰 병 아니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신랑의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조직검사를 안 했기에 큰 병인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르는 거였다. 혼자 병원에 와서 수술을 위한 사전검사를 몇 가지 더 하러 이곳저곳을 누비는데 자꾸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시 유방외과로 돌아와서 수술안내를 받는데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다. 그동안 스트레스와 외면했던 내 감정들이 알알이 사리처럼 맺혀, 가슴에 감자들이 되었나 싶어서 그 감자를 캐내는 일이 서러웠다. 그 순간에도 수술을 받으려면 언제 연차를 내야 하고, 수술비 환급에 필요한 보험 서류는 무엇이며, 보호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꼭 와야 하냐고 되묻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번에도 습관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려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를 위로해주기로 결심했다.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언젠가 가야지 생각만 했던 찻집에 왔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고 바람에 살랑이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참하게 생긴 청년이 가져다준 황차를 마시니 차분해졌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고즈넉한 한옥 카페에서 황차를 마시는 이 한가로운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마냥 내 안의 감자들이 밉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일상의 '쉼'을 선물하기 위해, 무언가 자라기 척박한 환경인 내 몸에서 자라는 감자 들일 수도 있다. 자꾸만 나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고 다그치는 나에게 잠시 휴식을 주며 돌아보라고 내 몸에서 감자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이럴 때 빠지면 섭섭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어본다. 오늘은 '어긋'을 무한반복 듣는다.



가끔 난 내게 실망해(내게 실망해)

스스로 나를 짓밟네 (나를 짓밟네)

"너 이것밖에 안 돼?" (너 이것밖에 안 돼?)

"훨씬 더 잘해야 해" (훨씬 더 잘해야 해)

"너 훨씬 더 멋져야 해" (훨씬 더 멋져야 해)

"지느니 죽어야 돼" (지느니 죽어야 돼)

"이겨야 해 넌 넌 넌"


어긋나는 건 너무 아픈 것

겪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

내 이상과 현실, 너무 멀고 먼

그 두 다리 건너, 네게 닿고 싶어

진짜 네게

진짜 네게


-방탄소년단(RM), 어긋-






몸이 아파 일상이 어긋난 김에 내 이상과 현실을 점검하기로 한다. 이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짓밟는 게 익숙한 현실에서 벗어나, 나를 정비하고 돌아보기로 한다. 동시에 그냥 지나치고 무시했던 내 감정안에 좀더 머물러보기로 한다. 이어폰을 타고 내 귓가에 전달되는 이 노래가 그래도 된다고 토닥여준다.


내 안의 감자들아,

왜 생기는지 묻지 않고, 다 사라지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대신, 너무 크거나 모양이 이상하게 자라지만 말자.

다 캐내기엔 인간적으로 손실이 너무 크다, 흑.



이렇게 내 안의 감자들을 달래 보며,

평화로운 공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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