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것까지 내 맘대로 안되는 거야.

가끔은 굴러가게 둬, 자전거 바퀴처럼

by 나다움

최애 스타를 따라 하고 싶은 내일모레 불혹인 애둘 엄마가 있다. 하지만 워킹맘의 시간과 돈은 그녀 자신만의 것이 아니기에,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움직일 수 없다.


잠시 화장실에서(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을 피해 화장실에 숨어서) 동경의 대상인 BTS 진님이 직접 딸기를 따서 지인에게 배달해주었다는 글을 본다. 별게 다 따라 하고 싶어서(그렇게나마 나 홀로 공통점을 억지로 만들며 내적 친분을 쌓아가고 싶어서) 나도 지인에게 직접 딴 딸기를 전해주기로 마음먹는다. 계획을 세운다.

먼저, 아이들이 자연을 학습할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딸기밭 체험학습을 신랑과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설득이 완료되면, 곧바로 체험할 수 있는 딸기밭을 수소문한다. 전화예약 후 맘 바뀌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딸기를 따러간다. 아들 둘과 간 딸기밭은 딸기를 따면서 먹고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을 정도가 돼서야 집에 올 수 있다. 이 험난한 과정 끝에 싱싱한 딸기를 잔뜩 따서 집에 온다. 이제 서야 준비 완료. 나의 진짜 목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직접 딴 딸기를 운동도 할 겸 자전거를 싣고 지인 집으로 배송을 간다.


언제나 문제는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딸기를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가 커서 작은 자전거 바구니에 비스듬히 담아가지고 간 게 화근이었다. 딸기들은 자전거 바구니가 좁다고 아우성을 치며, 턱을 넘을 때마다 덜컹거리는 자전거의 진동을 타고 딸기들은 자리를 조금씩 바꾼다. 푹 패인 자전거 도로에서는 딸기 바구니가 한번 뒤집어져서 딸기들이 탈출하기 직전까지 간다. 결국 지인 집에 도착했을 때는 귀하신 딸기가 흐물흐물해지고, 싱싱하던 딸기들은 선혈한 과즙을 내 바구니에 잔뜩 남겼다.

막 따서 탱글탱글한 딸기는 내 자전거 바구니 안에서 거칠게 뒹굴어서 상품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얼핏 보면 딸기들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거칠게 구른듯한 모양이다. 내가 상상했던 나의 최애 스타 따라 하기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울퉁불퉁한 자전거 도로로 인해 내가 생각한 그림을 벗어난다.


다행히 지인이 외출 중이라 집 앞에 딸기 바구니를 내려놓고 오는데, 이게 선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달달한 딸기향이 진동하는 씁쓸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엔 이 노래를 듣는다.




나쁘지 않아 온전히 혼자인 road
섬처럼 떠있는 사람들의 마음
어쩌면 오지 않을 듯한 밤
지평선을 걸어가 또 굴러가
우리가 정한 저 소실점으로


가끔은 굴러가게 둬, 자전거 바퀴처럼
찾을 게 있어, 오후의 간식처럼
이 작은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아
두 바퀴 위에선 다 사사로운 한낮의 꿈


Feel the roof, smell the truth
멀지 않아 기적은
어떤 얼굴을 해도 지금은 괜찮아
진짜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땅에서 발을 떼
저 새를 닮은 태
섬처럼 떠있기로 해
바람을 따라 춤춰

울어도 돼, 원래 행복하면 슬퍼


슬프면 자전거를 타자
바람을 두 발 아래 두자
오 자전거를 타자
두 팔을 자유로이 벌리며


-RM(방탄소년단), 자전거 -


호기롭게 시작한 딸기 배달이 예상했던 결과가 아닌 게 속상했나 보다. 당연히 딸기를 따기만 하면, 전달하는 일이야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뜻밖의 복병에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비단 오늘의 딸기 배달 실패 때문은 아니었다.

요 근래 특히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었다.

6세가 된 둘째 아들은 어린이집 5년 차이지만 아직도 등원 길에 대성통곡하며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떨어지질 않는다. 13년째 극사실 결혼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신랑이 날마다 생경하고 낯설다. 내가 업무를 하면서 매주 법원에 출장을 다니며 변호사와 같은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입사 15년 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그 업무를 하고 있는 내가 또 낯설다. 그게 조금씩 쌓여가던 차에 뭉그러진 딸기를 보니 꼭 내 맘 같았나 보다. 딸기가 으깨져서 만들어진 과즙처럼, 내 마음속에 담아뒀던 눈물이 뚝뚝 흐르고 말았다.


내 기준에는 싱싱한 딸기가 고운 자태 그대로 배달되는 것만 계획의 완성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인은 내가 전해준 딸기가 맛있었고,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렇게 귀하게 직접 딴 딸기를 전해준 것 자체가 고맙다고 말했다. 진심이 전해지는 그 말 덕분에, 깨달은 게 있었다. 내가 처음 생각한 방향이 아니어도 괜찮고, 거기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전거'에 나오는 가사마냥, "자전거 바퀴처럼 가끔은 굴러가게" 두련다, 내 일상을. 어차피 내가 맘먹은 대로 되지도 않는 것들, 내 안에 정형화된 틀을 버리고 둥그런 자전거 바퀴처럼 내달려보련다. "진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원래 행복하면 슬픈 거"라 생각하며 나에게 우는 것을 허락하고자 한다. 내가 왜 슬픈지, 슬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꾸 틀 안에 가두지 않고, "바람을 두발 아래 두고 자전거를 타듯"이 그냥 휙휙 지나가는 감정을 너무 오래 곱씹고 분석하지 않으려한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에 뜻밖에 발견한 것이 있었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닐 때는 보이지 않고, 두 바퀴로 조심스럽게 가야 하니 보였던 것들. 깨진 보드블록, 높은 턱 등이었다. 평소에는 신경 쓰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돌아보면, 그것들이 신경 쓰일 때가 있었다. 아이 둘 유아차를 끌고 다닐 때만 해도 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도로가 소수에게는 불편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이, 난 벌써 다리로 걷는 것에 익숙해져서 바퀴로 길을 지날 때의 불편함을 잊은 것이다.


딸기를 아기처럼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 자전거를 곡예 운전하며 갈 수밖에 없었던 무지막지하게 폭력적이었던 그 길이 집으로 오는 길에는 또 달라져 있었다. 딸기가 없으니 높은 턱도, 깨진 보드블록을 지날 때도 개념치 않고 쌩쌩 내달릴 수 있는 내가 되어버렸다. 그 자전거도로는 여전히 거칠지만, 딸기들이 없기에 그 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같은 길, 같은 사람이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딸기를 싣고 자전거를 탈때와, 그냥 자전거를 탈 때, 걸어갈 때, 모두 내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이지만, 과정과 결괏값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내가 보고 겪는 것이라고 해서 전부가 아님을, 어떤 틀 안에 나를 가두는 것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임을 인식한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쉽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상담선생님하고도 이 부분을 다뤘던 적이 있다.


심리상담선생님 : 삶에서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해요. '~는 ~해야하고, 0는 0해야한다' 등의 고정관념은 말그대로 머릿속에서만 있는 개념이지 실제 상황에서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나 : 그러게요. 그게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현실에 맞닥들이면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심리상담선생님 : 그럼요, 쉽지 않은건 맞아요. 그래도 나의 경향성을 알면 내가 대응하기가 좀더 쉬울 수 있어요. 예를들면, 나는 아플때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알아서 괜찮냐고 다정하게 물어봐주며 간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요. 당연한건 없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해요.


나 : 맞아요. 전 어떠한 틀이 있는거 같아요. 이 상황에서는 이래야 하고, 저 역할은 저래야 하는 등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평균적인 틀이라고 할까요? 거기에 나를 끼워맞추고, 나도 모르게 남도 끼워맞추는거 같아요.

요즘 명상을 하는데, 와닿는 말이 있었어요. "나의 기대는 내 것이다."에요. 나의 기대가 좌절되었다고 분노하고 슬퍼하면 뭐하겠어요. 어차피 내 기대에서 시작된 거라고 생각하면 좀 더 차분해지긴 하는거 같아요. 그 순간을 알아채기 쉬운거 같아요.



겪어보지 않으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들.

반복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리는 것들.

거기에 내 스스로 만든 틀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본다.

나의 틀, 나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도 동요되지 않은 채, 그것이 나에게서 나온 것임을 잊지 않는다.

거친 자전거 도로에서 연약한 딸기를 싣고 달리며, 뭉개져버린 딸기들을 보며 그렇게 나는 겸손해진다.



덧.

요즘엔 글을 완성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브런치 서랍에 첫 단추만 잠그고 아직 열린 결말의 글들이 무수히 쌓여간다.

이 또한 내 맘대로 되는 게 확률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라며,

'글을 써야 한다'란 생각의 틀에 옭아매려는 나를 풀어준다.


하지만, 곧 BTS컴백을 앞두고 있는 지금,

BTS에 집중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해야만 하는 일들 사이에서,

인터넷 창에 '음악방송 공개방송 신청방법'을 검색하고 당첨되지도 않은 방청권을 그려보며

그날 연차 사유란에는 '가사'로 해야 하나 '기타'로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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