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에만 주의사항 표시가 필요한 게 아니다.

고마 쫌 팅기라, 궁디를 주차뿌기 전에

by 나다움

'이 제품은 오징어, 돼지고기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식품 포장에서 볼 수 있는 문구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정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에게는 교차오염조차 치명적일 수 있기에 정보를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식품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런 문구가 필요하다고.

'이 사람은 무뚝뚝함, 까칠함이 기본값으로 제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레르기 있는 음식은 피하는 게 최선이듯, 신랑은 다정함 알레르기 보유자답게 달달함을 거부한다. 나는 정반대로 선천적 다정함 추구인데, 지금은 달달한 드라마조차 못 본다. 드라마에 이입하여 보다 보면 현실의 쓸쓸함이 배가되어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 때문이다. 본다면, 추리나 살인 같은 달콤한 감정이 배제된 스릴러만 본다.

그런 내가 우연히 본 드라마에 꽂혀서 봉인된 내 마음의 달달함이 현실판에서 꺼내 달라고 아우성친다. 구 남자 친구 현 남편은 드라마 속 서브 남주조차 안되고, 지나가는 행인1 정도의 다정함 보유자이기에 당연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다정함을 기대할 수 있는 남자인, 내 아들에게 다정하게 말해본다. 마침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응~ 아들!"

"엄마 있잖아, 어린이집에서 졸업할 때 선물로 받은 나무상자에 들어있는 그림 그리기 도구 있지? 그거 갖다 줘요."

"응, 알겠어. 근데 아들 엄마 좋아해, 안 좋아해?"

"좋아, 그리고 내가 시켜달라는 장난감은 언제 와?"

"..."


잊었다, 내 아들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아들이기도 한 것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이까칠씨 아들은 어쩔 수 없다. 대화란 정보전달이 주목적이기에, 간결하고 명확하게 핵심만 말하는 것을 지향하는 어머님 아들과 내 아들이 되시겠다. 텅 빈 마음속을 순식간에 꽉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것을 해내는 이들, BTS가 부른다. "어디에서 왔는지"이다.


가시나야 니는 어데서 왔노? 까리뽕쌈하네 지금 어데로 가노?
니는 몇살이고? 니가 내보다 누나야가?
아 아이라꼬? 그캄 내가 마 오빠야네
(작살나네) 얼굴이 조막디 해 까리하네
사라다같이 쌔그랍게 생기가꼬 쪼매 반반하네
밥 뭇나? 까대기 치는 거 아이다
커피나 한사바리 땡길까? 커피는 개안나?


(중략)

너 어디에서 왔는지, 니 이름 알 수 있는지
난 너무나도 궁금해, 나 정말 너무 궁금해

너 어디에서 왔는지, 니 이름 알 수 있는지
Oh 난 너무나도 궁금해, 나 정말 너무 궁금해

나는 부산에서 너는 광주에서 왔지만 똑같아 우리
여기 서울에도 저기 제주도에도 다 사랑을 하잖아 oh yeah


고마 쫌 팅기라, 궁디를 주차뿌기 전에
짱나게 하지 마라 쫌 내 맘 바꾸기 전에
점만 그냥 얼라다 니 금마 때매 이카나?
내 나뚜고 거따 조타카니까 내 안 씅나나
가스나야 장난 똥 때리나? 눈이 삣나
호석이같은 머스마는 천지 삐까리다, 쌔리삐다
아 쫌 금마는 지삐 모른다
내 맘, 다 이제 다 니 끼다 난 니삐 모른다

(중략)

-BTS,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평균에서 벗어난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취향이 특이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꿈 많은 학창 시절에도 이상형으로 잘생긴 '조인성'을 꼽았던 친구들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차태현'이라고 나지막이 말했던 나이다. 래서일까, 나에게 달달함이 최고조인 노래를 꼽으라면 사투리 가득하고 직설적이며, 뭔가 나무라듯 하면서 애잔한 매력이 돋보이며 현실미 가득한 방탄소년단의 "어디에서 왔는지"를 좋아한다. 특히 "고마 쫌 팅기라, 궁디를 주차뿌기 전에/ 짱나게 하지 마라 쫌 내 맘 바꾸기 전에"라고 승질을 냈다가도 "아 쫌 금마는 지삐 모른다 / 내 맘, 다 이제 다 니끼다/ 난 니삐 모른다"하며 비맞은 강아지마냥 꼬리를 내린 모습에 마음이 쏠린다. 뭔가 저 마지막 말을 하기 위해, 쑥스러움을 화냄으로 가장하여 빌드업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나, 변태인가. 하하하)


반복해서 넘어지는 지점에서 공통점을 찾고, 내가 편해지기 위해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 심리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리상담선생님 : 타협점을 찾을 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포기할줄도 알아야 해요.


나 : 그럴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야 할까요?


심리상담선생님 : 예를 들어, 타인과 갈등이 생겼을때 섭섭한 마음이 들고 내키지 않지만 그냥 마지못해 내가 상대에게 맞춰줬다고 합시다. 행동은 상대가 원하는대로 해줬지만 기분나쁜 내색을 간접적으로 내비치면 상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고마워 하나요? 아니죠? 오히려 나는 희생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역시 만족스럽지 않은 이상한 상황이죠?표정, 말투 등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상대방은 다 느끼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서로가 불만인 상황이 되는거죠.


나 : 맞아요. 지난 주말에도 그랬어요. 남편은 자유자재로 약속을 잡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그럴때마다 제가 아이육아를 혼자 담당하고 불만이 쌓여갔죠. 싸우기 싫어서 그냥 참고 넘겼어요. 그런데 제가 어쩌다 주말에 지인을 만나러 나가면 저와는 달리, 누구 만나냐, 언제오냐, 어디 가냐, 왜 그시간까지 있어야 하냐 등등 물어봐요. 그럼 전 "이제까지 난 아무소리 없이 다 허용해줬는데 내가 이런것도 내맘대로 못해?"라며 폭발 버튼이 눌러지고, 이제까지 눌러왔던 감정 팡 하고 터져버렸어요. 혼자 꾹꾹 참다가 한번에 감정이 터져버리는 패턴이 있어요.


심리상담선생님 : 그래요, 그 패턴을 잘 기억해보세요. 그리고 이젠 그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거에요. 필요하면 담백하게 그때그때 말을 가볍게 툭툭 하는거에요, 참지 않으니까 감정이 세게 묻어나지 않을거에요. 그러면 상대방도 좀더 받아들이기 쉽겠죠?

그리고 동시에 내 마음도 역시 그때그때 알아주세요. 아, 지금 내가 서운하다고 느끼도 있구나, 남편이 나의 수고에 대해 인정해주길 원하고 있구나 하고 내 안의 소리를 들어주는 거에요.가만히 있는 그대로 내마음을 읽어줍니다.

거기에 한가지 더, "너의 생각, 행동이 틀렸어"라는 전제가 내 안에 있었음을 인정해보세요. 남편은 이래야해, 아내는 이래야해 등등 규정된 틀에 억지로 나와 상대를 맞추어 넣지 말고, 상황을 유연하게 볼줄 알면 00님이 훨씬 편해질 것 같아요. 대신, 00님이 꿈에 그리는 이상적인 남편상은 일정부분 내려놔야 겠죠? 현실과 타협을 하며 말이에요.



심리상담선생님과 대화를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 군데 놓고 가만히 나열해보니 공통점이 있다. 달달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게 또 너무 지나치면 소스라치게 싫어한다. 4분의 3박자, 강약약처럼 강력한 달달함 한 번에 무심함 두 번이 나에게는 최적의 비율이다. 원래 초기버전은 '강약약. 강약약...'이었기에 선택했으나, 세월의 흐름으로 노화된 탓에 '약약약약약......강......약약약약약'이 되어 버린 상대에 울화통이 터지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시종일관 달달한 것에 대해서는 나도 알레르기가 있는 것을. 자업자득, 인과응보, 초록동색, 유유상종이라고 하며, 오늘의 쓸쓸함에 마침표를 찍는다.



덧.

아빠한테 서운한 감정을 아들에게 투영시킨 것 같아 결국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자 아들은 쿨하게

"괜찮아. 근데 내 장난감은 언제 오는지 택배아저씨한테 전화해봐."

사과도 쿨하게 받아주며, 대화란 감정교류보다는 정보전달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상기시켜준다.


다시한번 복창한다.

콩심은데 콩나고, 이까칠씨 아들은 까칠하다.

그리고 난 취향이 독특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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