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릎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6세 둘째아들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뜬금없는 이야기에 궁금해서 "왜?"라고 반문하니 그런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예뻐서."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마음이 한여름날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캬.
가만히 옆에서 듣던 첫째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야, 그게 아니지. 엄마는 꼬추(?)가 없으니까 여자야. 그래서 딱 봐도 여자인거야."
첫째아들의 대답에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역시 물개박수를 치며 감탄한다. 색다른 매력이 있다면서.
하지만 이내 곧 첫째아들에게 말해준다.
"아들아, 엄마는 너의 대답도 좋아. 네 말도 맞거든. 근데, 여자친구들이 들으면 그닥 좋아하진 않을 수 있어.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답이 어느정도 정해져있는거거든. 너도 엄마의 예쁜점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연습삼아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랑은 둘째의 대답엔 똥씹은 표정을 하더니, 첫째의 대답엔 바로 그거야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한마디 한다.
"엄마가 아들 상대로 가스라이팅한다."
첫째아들이 누굴 닮았겠니. 신랑 뒷통수에 대고 눈으로 욕해준다. 뭐 어때, 내가 행복하고 아들도 기뻐하는데 뭐가 문제야. 미의 기준을 어릴때부터 현실적으로 잡은거라 해둔다.
내가 달달함에 심취한 꼴을 못보는 부자를 뒤로하고, 예쁘기에 딱 봐도 여자라는 말이 주는 달콤함에 더 취해보고자 이 노래를 듣는다.
(생략)
Yes you're my only girl
너는 내게 최고
너의 하루를 알고 싶어, 너의 한숨이 되고 싶어
Yes you're my only girl 너는 내게 최고
영화 속에서나 있을 것만 같던 그 사람
날씨마저 딱 좋은데 너와는 딱 인듯해 난 같이 걸어볼까 함께 걸어볼까 날씨마저 딱 좋은데 나와는 딱 인듯해 넌 소설 속에서나 있을 것만 같던 그 사람 바로 너야
어쩜 사람이 그래 세상을 혼자 사는 듯한 착각이 드네 내 곁을 지나는 그대 내 맘에는 너라는 달콤한 바람이 부네
넌 딱히 꾸미지 않아도 매력이란 향수를 뿌리겠지 아마도 신은 없다고 믿었었던 나마저도 신을 믿게 만들어 나에게 여신은 바로 너
니가 어리던 말던, 나이가 많던 숨긴 아이가 있던 나는 상관없어 내가 널 사랑하거든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꽃이 핀 garden 명품 백을 쥐기보다는 내 손을 잡아주는 질투심과 시기보단 됨됨이를 알아주는 그런 너와 함께 우리의 미래를 그려봐 우리 커플 신발 사이에 어린이 운동화
(생략)
- BTS, Miss Right -
팩트폭격기 첫째아들과 인간양봉장 둘째 아들. 그런데 나는 첫째의 그 정직함과 자신만의 소신이 또 사랑스럽다. 나처럼 취향 독특한 여자가 있으면 우리 첫째도 인연을 만나겠지만, 높은 확률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열심히 교육을 시켜본다. 하지만 쉽지 않다.
"자, 엄마가 딱 봐도 여자인 점을 한번 찾아봐."
"엄마는, 엄마는!(이 말만 10번반복 후) 머리가 길고"
"그렇지, 길고~"
"눈이 초롱초롱하고"
"오~ 잘한다 잘한다. 그리고?"
"코는 납작하고"
"...."
가끔은 오글거림이 필요하다. 어머님아들은 선천적으로 없는데다가 후천적 학습까지 결여되어 나에게 달달멘트를 날릴리 만무하다. 어머님 아들은 빠른 포기를 택한다. 쓸데없는(?) 유전자를 물려준 탓에, 첫째아들의 미래 며느리에게 들어올 반품요청이 예상된다. 이를 방지하고자, 포기하지 않고 교육의 힘으로 극복하는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나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벚꽃을 함께 보다가, 연신 벚꽃이 예쁘다고 감탄을 하는 나에게 첫째아들이 달콤한 바람처럼 말한다.
"엄마, 벚꽃보다 엄마가 더 예뻐."
나는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신랑을 바라보며 말한다. 거봐, 교육으로 된다 그랬잖아.
다시한번 뒤에서 어머님 아들은 다섯글자로 답한다.
"가.스.라.이.팅"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어리던 말던, 나이가 많던, 숨긴 아이가 있던 상관없이 널 사랑하는 것' 은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말들 종합선물세트, 내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사랑해준다는 가사가 참 좋다. (그런게 가능할리 만무함을 알면서도 가끔씩 나는 그런 사랑을 받는 나를 상상한다. 하하하)
있는 그대로 한사람을 사랑하는 것, 나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는 내 모습마저 사랑해주는 누구가를 만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특히 난,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한 탓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기에, 주변사람의 사랑이 묻어나는 이 순간들은 더욱 소중하다. 비록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어긋나 있지만, 그래도 그런 시간이 나에게도 잠시나마 있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거기에 뜻하지 않은 아들들의 달콤한 감동멘트는 딱딱해진 내마음을 말랑거리게 한다.(옆에서 신랑은 자꾸 '애들 상대로한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해도 말이다.)
심리상담선생님과 좋아하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일종의 심리테스트(?)같은 거였는데 그게 또 그게 은근히 잘 맞았었던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 자신을 잘 몰랐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나의 삶을 공유하며 나에 대해 명확히 알게되었던 것 같다.
심리상담선생님 : 내가 바라보는 나를 동물로 표현한다면 뭐가 있을까요?
나 : 음... 전 다람쥐요. 실제로 제가 다람쥐를 키우기도 했어요. 작고 귀엽고 명랑해보여서 키웠는데, 사실 알고 보면 예민하고 경계심도 강해요. 제가 먹이를 충분히 주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먹이를 물어다가 어딘가에 묻어놔요. 실제로 자연에서도 다람쥐는 도토리 등 먹이를 쉼없이 물어나르고 땅에 저장하지만 실상 그게 어디에 묻히는지 기억을 못하기도 한대요. 하지만 다람쥐가 땅에 묻은 도토리 등 열매는 씨앗이 되어 숲은 울창해지는데 도움을 준대요. 주변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부지런한 다람쥐가 좋아요. 그런데 다람쥐는 작고 연약해서 쉽게 죽을 수도 있기에 보호가 필요한 동물이기도 해요.
심리상담선생님 : 그렇군요. 그럼 본인이 가장 옆에 두고 싶은 동물은 뭐에요?
나 : 강아지요. 흰털이 복실복실하고 부드러운 작은 강아지요. 애교도 많고 사랑스럽고 정서교류가 되는 그런 동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집에 혼자두기 외로울 것 같아서 키우기는 꺼려지기도해요.
심리상담선생님 : 아마 00님은 내가 바라는 이상형이 바로 그런 강아지처럼 살갑고 따뜻하며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본인의 이상형, 강아지 같은 사람이었나봐요.
나 : ...
심리상담선생님 : 또 다른 동물은 어떤게 생각나나요? 내가 이정도면 키울 수 있겠다 싶은 동물로요.
나 : 거북이 또는 고양이요. 둘다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기에 키우기 쉬울 거 같아요. 제가 무언가를 많이 해줘야한다면 부담이 되고요, 최소한의 돌봄이 있으면 제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심리상담선생님 : 00님이 양육해야하는 자식에 대한 생각을 엿볼수 있네요.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다. 00님도 그렇게 자랐다고 하셨었죠? 재밌죠? 나 자신, 내 이상형, 또는 자녀에게 바라는 점 등을 말하라고 하면 쉽지 않죠. 그런데 동물을 떠올리면 조금 쉬운데, 그게 또 잘 설명해주기도 해요.
아직도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여전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데 서투르고 내 안의 욕구를 제대로 읽어주지 않고 누르기에 급급하다.
이런 나 자신은 믿지 못하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를 믿어주기에 그 힘에 또 한발 내딛는 동력을 얻는다. "존재만으로도 날 위로하던 사람이 있다는 것. 나도 나를 믿지 못할때 나를 믿는 그 사람을 믿어서 해낸 것"이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오래도록 마음에 울림으로 머문다.
오늘은 삐진 둘째아들이 "엄마는 딱 봐도 바보야." 라고 한다. 달달공장이 임시휴업인가보다.
섭섭하지만 이내 쿨한 표정으로 답한다.
"응, 엄마는 바보 아니니까 니가 바보라고 해도 괜찮아."
내가 타격을 안받으니 2차 공격을 한다.
"엄마 안 예뻐!"
그동안 아들이 보내준 달달함을 저축해둔 덕에, 그 아들의 사랑덕에 나를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된 나는 이렇게 답해준다.
"음, 넌 엄마가 안예쁘다고 생각할수 있지. 근데 엄마는 스스로 이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 만족해. 그래서 니가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그래도 언젠가 어딘가에는(이번생은 망했으니 다음생이라도), 자다깨서 팅팅 부어 휴대폰 안면인식조차 못알아보는 나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지그시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공상에 다시 한번 몰입하기 위해 BGM을 듣는다, Miss 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