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불편하다. 거리는 반짝이는 조명으로 축제 분위기인데, 내맘은 기관장 행사 준비하는 직장인이다. 실질적 산타임에도 산타라 말하지 못하고 선물을 눈치 있게 준비해야 하며, 기억에 남는 하루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득이다. 나에게도 산타가 있다면, 24일 밤에 잠들어서 26일에 깨는 선물을 달라고 소원을 빈다.
코로나가 쏘아 올린 어린이집 휴원으로, 활발 섬세 발랄한 5세, 7세 아들과 이틀 방콕 후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산타할아버지는 내 소원을 반대로 들으셨는지, 새나라의 아들 둘을 새벽 6시부터 일어나게 해서 또 이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망할 산타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나에게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났다.
힘들어도 울면 안 되는 캔디 같은 내가 측은했는지, 산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주신 것이다.
나에게 세 아들(내 아들 둘과 어머님 아들) 없이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을 주셨다. 육아가 필요할 땐 바쁜지만, 살아남는 법을 귀신같이 아는 남편이 나에게 '시간'을 선물한 것이다. 에너지 풀 충전한 아들 둘과 장렬히 집을 나서며, 신랑은 카톡으로 공연 영상을 보낸다. 편히 쉬라는 꽤나 서윗(sweet)한 말과 함께.
< 오랜만에 내편으로 출몰한 남편님, 이런건 기록해둬야해. 오늘과 17년 그때. > 카톡 속 영상에 'BTS'란 글자에 동공이 커지며 순간 집중력이 솟아오른다. 그렇다, 이것은 내가 처음 BTS를 직접 실물을 영접했던 순간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둘째 아들의 출산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서태지를 좋아하는 신랑과, 출산 전 마지막 나들이를 즐기는 내가 '서태지 25주년 콘서트'를 보러 갔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을 재연하는데, 그 '아이들'을 맡았던 아이돌이 있었으니 바로 방탄소년단이었다. 그때는 이름만 알던 아이돌이었었지만, 그들의 무대를 보며 '아이돌 칼군무'란 말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그렇게 잠시 '아이돌의 매력'을 잠시 체험하고, 나는 '아들둘의 엄마'가 되고, 그들은 잊혔다.(그리고 한참 후 'JIN'의 미모에 늦덕하게 된다, 하하)
< 서태지 콘서트를 다시 보면서, 그날 내가 직접 보았던 BTS를 떠올려본다. 웃는모습이 예쁘JIN > 직접 공연장에 가서 보았던 공연을 TV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이유인 즉 바로, BTS를 작정하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구석 나 혼자 콘서트를 보니, 구겨진 빨랫감 같던 내 마음에 기운이 샘솟으며 비로소 오늘이 예수님이 태어난 기쁜 날, 성탄절임을 떠올린다.
그때도 멋있었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을 삼키며,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이라고 하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는 BTS의 노래 가사에 있었다. BTS의 노래 가사는 나의 뇌에 반복 재생을 설정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 중 최고는 바로 이 노래(Answer: Love Myself)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네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
니 삶 속의 굵은 나이테
그 또한 너의 일부, 너이기에
이제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 버리기엔
우리 인생은 길어 미로 속에선 날 믿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차가운 밤의 시선, 초라한 날 감추려 몹시 뒤척였지만
저 수많은 별을 맞기 위해 난 떨어졌던가
저 수천 개 찬란한 화살의 과녁은 나 하나
정답은 없을지도 몰라
어쩜 이것도 답은 아닌 거야
그저 날 사랑하는 일조차, 누구의 허락이 필요했던 거야
난 지금도 나를 또 찾고 있어
But 더는 죽고 싶지가 않은 걸
슬프던 me , 아프던 me, 더 아름다울 美
그래 그 아름다움이 있다고, 아는 마음이
나의 사랑으로 가는 길
가장 필요한 나다운 일
지금 날 위한 행보는, 바로 날 위한 행동,
날 위한 태도, 그게 날 위한 행복
I'll show you what I got
두렵진 않아 그건 내 존재니까
Love myself
시작의 처음부터, 끝의 마지막까지, 해답은 오직 하나
왜 자꾸만 감추려고만 해 니 가면 속으로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
내 숨 내 걸어온 길 전부로 답해
내 안에는 여전히
서툰 내가 있지만
You've shown me I have reasons I should love myself
내 숨 내 걸어온 길 전부로 답해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I'm learning how to love myself)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BTS, Answer: Love Myself
심리상담을 받고, 정신과를 다니며, 심리학 책을 읽을수록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밤에 라면을 먹으면 다음날 부은 얼굴과 불편한 속이 예상되기에 이성은 아니라 하지만, 이미 물을 끓이는 습관적 내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의 해결책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리라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어느새 자책하고 반성하며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 노래는 이런 내가 '일반적'이라고 말해준다. 나에게 내리는 잣대가 더 엄격해서 나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은 것, 그런 초라한 나를 감추려고 노력하는 하는 것. 이렇게 서툴지만, 그것 역시 빠짐없이 모두 다 나 자신이며 그런 자신을 사랑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조차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응원해준다.
어제 (직장에서의 상사와)의 상처에 아직도 울고 있는 나,
오늘 (집안에서의 아이와)의 육아에 여전히 헤매는 나,
내일 (자아실현에 자신과)의 싸움에 또다시 굴복하는 나,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이다.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고 되뇐다.
내일의 '이상적 내'가 되기 위해 영어단어를 외우는 대신, 오늘의 '즐거운 내'가 되기 위해 BTS와 나 홀로 콘서트를 즐긴다. 그렇게 어제의 '울적한 나'를 토닥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선물 받은 시간을 채운다. 진정한 크리스마스다.
심리상담선생님은 내가 보기 싫어하는, 나의 모습과 타인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었다.
심리상담선생님 : 내 안의 욕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온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면 남편과 싸우고 속상한 마음이 들때, 내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는거에요. 이 사람과 행복해지기를 포기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이 가정안에서 행복하고 싶구나, 라고요. 비록 내가 바라는 색깔의 행복이 아닐 수 있어요. 00씨가 바라는 색이 아니라서 외롭고, 괴로울 수 있어요. 그래서 어쩌면 00씨는 본인 안의 욕구를 그대로 바라보기 싫어서, 그 외에 다른 것들로 자꾸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 일수도 있어요. 물론, 글을 쓰는 것도, 작사를 배우는 것도 다 00씨에게 활력을 주는 좋은 활동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00씨가 보기 싫어하는 내 마음을 회피하는 것 일수 있어요.
나 : 네, 이제는 저도 어느정도 알고 있어요. 제가 무언가에 매진하는게 그 자체가 좋아서 인것도 있지만, 다른 것에 몰두함으로써 제가 보고싶지 않은 저의 모습을 안볼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저의 오래된 습관이에요. 그게 또 회사에 합격할때나 책을 출판할때 등등 통할 때도 있었고요. 예전에는 그걸 모르고 했다면, 지금은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게 차이점이긴 해요.
심리상담선생님 : 아이를 양육하면서 남편에게 더 기대고 싶고, 더 많은 시간 가정에 할애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그게 00씨의 기대에 충족하지 않는다고 해서, 즉 00씨의 마음에 100이란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 나쁜 남편이 되는건 아니에요.
지난번에 얘기했던 흑백논리가 여기도 보이는 거에요. "좋은 남편"과 "나쁜 남편"이란 양 극단에의 스펙트럼 어딘가 실제 00씨의 남편이 있어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기도 하고요. 내 기준이 너무 높고, 그 기준에 100%달성하지 못하면 0%라는 흑백논리는, 다른사람이 아닌 00씨를 힘들게 해요. 그리고 그 기준은 곧 00씨 본인에게도 적용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우선 00씨를 상담하는 사람이기때문에, 남편분의 편을 드는게 아니에요. 나 자신에게 먼저 관대해져보세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게 그 시작이에요. 그게 잘 되면, 타인에게도 그렇게 될거에요.
오래전 직관했던 서태지 공연에서 BTS를 처음 만났고,
그 BTS는 이렇게 나를 또 일으켜 세워준다.
이런 게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인가.(이런 식으로 나 홀로 내적 친분을 두텁게 만든다, 하하하.)
덧.
크리스마스니까 용기 내며 신랑에게 한마디(이 글을 읽는 분들께 미리 용서를 구합니다.)
내가 은혜로운 BTS '진'님의 영상으로 영혼을 정화하고 있으면, 아들 둘이 스멀스멀 다가와 이렇게 외친다.
"아빠다!!!"
기가 막히다 못해 약간은 화나는 마음을 부여잡고 "어디가 닮았는데?"라고 물으니, 그 대답이 더 놀랍다.
"얼굴!!"
신랑, 기분 좋지?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혼자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준 (오랜만에 영민해진) 남편, 고마워.
이래서 '가족은 사랑'인가 보다. 무조건 아빠 편인 아들들이 있어서 좋겠다.
그렇지만, 난 인정모답니다!!!!(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해)
내가 (비록 안면인식 장애 있냐는 소리 감수하고) 신랑 닮은꼴로 '비', '박해일', '남주혁' 까진 어디 가서 얘기할 수 있었는데...
미안해, 안 되겠어. BTS '진'은.
이렇게, 오늘도 나의 소신을 지켜본다.
< 남편을 아는 지인에게 내아들의 망언을 전하니 "남편"과 "방탄 진"의 비슷한 점을 (굳이) 찾아준다. 난 그런 시도도 안했는데... 고운 심성을 지닌 지인이다.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