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3시에 일어났어.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by 나다움

오후 3시가 아니다, 새벽 3시다. 뒤척이다 눈을 잠깐 뜬 게 아니라, 벌떡 일어났다. 마치 잠시 눈감았다 일어난 사람인양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없는 듯한 고요한 새벽,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하고 싶던 것을 다 하기로 한다. 반신욕기에 들어간다. 디즈니 영화를 하나 튼다. 시트러스 향초도 켰다. 아구포를 턱이 아플 때까지 씹는다. 그렇게 압축적으로 3시간 보내면, 둘째 아드님이 날 부른다. 고작 새벽 6시인데, 그렇게 '애데렐라'로 돌아간다.

혹시나 더 잘까 싶어 아들을 한번 더 재워본다. 하지만,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엄마의 아들답게 새벽 6시면 기상해야하나보다. 애들 잘 때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 체크리스트에 많기에, 아쉬운 마음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엄마가 누우니 아들도 쪼르르 와서 옆에 눕는다. 조바심과 무기력의 사이에서 BTS를 외친다. 특히, 이곡이 딱이다.




마라톤, 삶은 길어 천천히 해
42.195, 그 끝엔 꿈의 낙원이 가득해


하지만 진짜 세상은 약속과는 달라
우린 달려야 해, 밟아야 해
신호탄을 쏘면
너, 목적지도 없어, 아무 풍경도 없어


네가 내뱉는 모든 호흡은 이미 낙원에

우린 꿈을 남한테서 꿔 (빚처럼)
위대해져야 한다 배워 (빛처럼)
너의 dream. 사실은 짐.

미래만이 꿈이라면, 내가 어젯밤 침대서 꾼 건 뭐?
꿈의 이름이 달라도 괜찮아
다음 달에 노트북 사는 거, 아니면 그냥 먹고 자는 거, 암것도 안 하는데 돈이 많은 거
꿈이 뭐 거창한 거라고, 그냥 아무나 되라고
We deserve a life
뭐가 크건 작건 그냥 너는 너잖어


멈춰서도 괜찮아,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들이 있다면
멈춰서도 괜찮아, 이젠 목적도 모르는 채 달리지 않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네가 내뱉는 모든 호흡은 이미 낙원에


Now 어리석은 경주를 끝내
네가 내뱉는 모든 호흡은 이미 낙원에

다 꾸는 꿈 따윈 없어도 돼
너를 이루는 모든 언어는 이미 낙원에


-BTS, 낙원-


2021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2022년이 찾아왔다. 특별할 게 없는 하루인데, 마음은 마라톤 출발점에 있는 선수 같다. 아무 이유도 없고, 목적도 모르는 채 그냥 군중에 휩싸여 같이 달리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냥 달리는 것도 아니고, 양다리에는 6세, 8세 아들을 모래주머니처럼 달고 달리는 기분이다. 앞으로 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사실, 왜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서까지 '내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 개인'이 정체되는 게 두려운가 보다. 집안에서는 엄마, 아내, 며느리, 가사도우미 등의 역할이 있다. 직장에서 담당자, 상담자, 상사, 감정 쓰레기통 등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어느새 '그냥 나 자신'은 무색무취로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거기에 체력, 암기력, 소화력 등 온갖 기능들은 세월을 체감하며 점점 퇴화되어 가니, '정체'를 넘어서 '퇴보'라고 느낀다.


그런 나에게, 이 노래는 멈춰서도,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한다. 꿈이 뭐 거창한 거냐고, 꿈이 없어도 되고 멈춰서도 괜찮다 말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남들이 다 꾸는 꿈 따윈 없어도 된다고 단호히 알려준다. 쉬는 것조차 이유가 필요한 나에겐, 맞춤형 노래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30년 넘게 달려온 내가, 이 노래 몇 번 들었다고 여유로워지진 않는다. 평소보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날, 퇴근해서 세수하러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때, 최애 떡볶이조차 먹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습관적으로 이 노래를 듣는다. 잠시 멈춰서 쉬어야 함을 알고, 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나'로 인정하고자 한다.


쉬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 심리상담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심리상담선생님 : 본인을 닮은 동물에, '다람쥐'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나 : 다람쥐는 쉴새없이 도토리를 모아요, 근데 다람쥐는 자기가 모은 도토리가 어디에 있는지 다 기억하지 못한대요. 그래도 다람쥐는 자기 볼이 터질정도로 많은 양의 도토리를 모으고 또 저장을 해요. 어쩌면 제가 그러고 있는지도모르겠어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시간을 밀도있게 보내는지도 모른채, 그냥 습관상,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 일상을 살아가는거 같아요.


심리상담선생님 : 그럼 00씨는 왜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는 먹이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지내는걸까요? 어떤 마음이, 어떤 감정이 있는거 같아요?


나 : '좀 쉬고 싶다'는 지침과 '여기서 쉬면 안된다'는 조바심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거 같아요. 사실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실, 전 다람쥐를 좋아해요. 다람쥐가 도토리를 열심히 묻어두고 찾지 못한 덕에, 숲이 풍성해지기도 한대요. 땅에 묻어둔 도토리가 씨앗이 되어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는 거죠. 그렇게 보면, 다람쥐가 쉴새없이 도토리를 모으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볼 수 없잖아요. 비록 다람쥐 본인이 의도한 일이 아니라 해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이 된거잖아요.

저 역시 그래요. 지금 당장은 내 오랜 습관에 의해서, 어쩌면 보고싶지 않은 무언가를 피하고 싶은 심정으로 시간을 꽉꽉 채워서 쓰는 것일지 몰라도 그런 날들이 모여서 또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거니까요. 내 자신이 너무 지치지 않게만 조절하려고는 해요.



"잠시 멈춰 쉬어야 함을 안다"라고 하지만, 여전히 쉬지 못한다. 당장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토익시험을 접수하고,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 시험을 기웃거리며,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온 책과 넷플릭스 및 디즈니채널에 언젠가 볼 거라며 관심설정해놓은 영화들 사이에서 고민하며, '새해에는 모른 척 안 할 거지?'란 눈빛을 발사하고 있는 듯한 리포머 외 운동기구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휴식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몸도 마음도 맥시멀 리스트. 하하.

자책하지 않고, 이것 역시 나,라고 가볍게 인정한다. 그중에 제일 '휴식스러워 보이는' 소설책을 짚어 든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난 오래 살 건가보다 라고 생각하는 지금이다.




덧.

그래도, 새해인데 '꿈'을 그려본다.

거창한 꿈은 체력, 기력, 노력이 필요하니 제쳐둔다.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다음 달에 노트북 사는 거'같은 게 뭐 있을까 고민하다, 노트북이 사고 싶지만 비싸고 당장 쓸 일이 없다. 값싸고 당장 먹을 수 있는 떡볶이가 떠오른다. 이럴 때는 빠른 실행력을 보이며 떡볶이 세트를 사본다. 그리고 동료에게 카톡 보낸다.

"나, 유명한 전국 떡볶이를 종류별로 사봤어. 조만간 놀러 와."

올해는 떡볶이 애호가로서, 열심히 활동하겠다 다짐한다.

이게 내 '213번째 꿈'이다, 이 꿈은 실현한다, 반드시.

이렇게 꿈을 실현하는 경험을 하나 늘린다.

역시 꿈은 좋은 것이다,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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