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저는 수시로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저는 자기 전에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가까스로 뜬 눈으로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무턱대고 유튜브를 틀어 보았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하등 이유도 없이 매일을 이같이 보냈습니다
이같이 저는 쓰레기입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유튜버들의 무한 알고리즘으로
한편이 두 편으로 두 편이 세편으로 그렇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루하루가 무한반복 재생되었습니다
이유라 할 것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을 잘라낼 수단으로 유튜브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아니 애당초 버튼을 누르면서 포기하고 말았던 일입니다
요즈음에
저는 이같이 온 하루를 유튜브에 허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유튜브는 드넓고도 황량한 세상입니다
채널을 옮길수록 느끼는 건 황폐함이더군요
여행가들은 전 세계를 누비다 발목이 나가고
지식인들은 지식을 나누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교양인들은 교양 떨다 구독자를 잃고
헬창인 들은 근육 자랑하다 쥐가 나고
패션인들은 너도 나도 명품을 사재 끼며 이게 더 이쁜 거야! 이게 더 비싼 거야! 사치를 부리더군요
현대 사회에서 가벼운 소비거리를 무참히 양산해 버린 유투버들
그리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나
좋은 유튜버 나쁜 유튜버
생각하기 싫어서 살아 있는 게 싫어서 마냥 그것들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나
그러나 저들은 애를 쓰며 돈이라도 벌지
저는 죄 없는 뇌를 매일같이 때려눕혔습니다
이사 올 때 산 이태리 짝퉁 소파에 사지를 뻗은 채로 그냥 그렇게 꼬박 24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그렇게나 멍청하게!
하루를 포기하는 건 너무 쉬웠습니다
평생 우아하게 살고 싶었는데 이같이 우아하지 않은 일이 또 있을까요
최악에는 욕창에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나름 자랑해 오던 근면성실함은 온데간데없이 그만 2024년에 실종해 버렸습니다
낙지처럼 살아온 질기고 유연한 근육은 끝내 굳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창작자였습니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독수리타법으로 일기를 쓰고 운동을 하고 밥을 지어먹고 내일을 설계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침내 이 같은 쓰레기입니다
제가 어쩌다 이같이 돼버렸을까요
네 저는 갱년기입니다
설마 했는데 맞다고 합니다
대체 우울하고 대체 무기력합니다
대체 답도 없습니다
팔 한쪽 드는 것, 고개를 드는 것, 꼿꼿하게 앉는 것, 곧은 자세로 일어서는 것이 천근만근이니 걷는 일은 상상도 못 합니다
스스로 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집에 불이라도 나야 살려고 뛰쳐나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옳다거니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달려들지 않고 살려고 몸부림친다면 그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으레 눈을 감고 그냥 그렇게 죽고 싶기만 합니다
그렇게 뇌가 없는 뇌사 상태로 지내다 보면 죽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 모릅니다
저승사자는 3월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밖에서 24시간 대기하고 있더군요
나의 이름을 갖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나는
이같이 나를 버리고 내가 없는 내가 이같이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즉시 관할 사무소에 신고해 주십시오
병원에 가면 이토록 무서운 갱년기를 치료할 수 있을까요
하루를 피같이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시한부를 만나게 되면 심봉사의 눈이 떠지듯 정신이 번쩍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매가 필요합니다
아니 저는 따듯한 말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이 하나 없고 그저 남들과 비교하기만 바쁜 모진 세상이더군요
저는 아침에 친구들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나눈 뒤 활기찬 하루를 보내라고 그 하루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제게 그런 아름다운 인사를 건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아무도 제가 이런 인사를 받고 싶어 한다고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 누가 알까요
이같이 인색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저는 어떤 영화에서처럼 아름다운 일상이 펼쳐지길 기대했습니다
참 무모했습니다
저는 이제 알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이 같은 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우린 각자 살다 오며 가며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나눌 테니까요
저는 다시금 높고 낮은 무대에서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등장할 테고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내 이 같은 우울을 이겨 낼 테니 까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털어 버리고 살아갈 테니까요
어떤 영화에서처럼 그렇게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할 테니깐요
이 같은 상상을 하니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일이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뇌가 자고 있을 땐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어려웠는데
이렇게 망해버린 것에 백기를 들려던 참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는 밖에 나가 걸어 보겠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이 하루를 무심하게 뒹굴진 않겠습니다
티브이를 끄고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 보겠습니다
예정된 무대를 대비해 몸을 가꾸고 그 무대에서 펼칠 안무를 구상해 보겠습니다
그것들에 걸맞은 하루가 되길 노력해 보겠습니다
쓰레기로 전락해 죽어가는 건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모지민 쓰레기 소각장에서 재로 발견
그렇게 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버텨 오진 않았을 테니깐요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다루겠습니다
이 같은 시간에 감사해하며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영위해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입니다
오늘은 그저 웃어나보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쓰레기처럼 허비한 시간들에 명복을 빌고 무릎 꿇어 반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