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명상, 예언,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채워진 내면의 힘
하수들은 생활이 불규칙하다. 변수가 많다. 일관성이 떨어진다. (중략)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자꾸 약속을 만든다. 온갖 모임에 다 출두한다. 오라는 곳, 오지 말라는 곳, 갈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불문하고 다 참석한다. (중략) 도대체 누구를 위해, 왜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바쁜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생에 한번 고수를 만나라 』중 -
이 대목을 읽는 내내 찔렸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약속, 저 약속을 잡고서 알맹이가 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 순간은 즐겁고 재밌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허무하고 외로웠다. 그 시절의 나는 마음의 빈 공간을 '사람'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다.
그 자리는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나 자신’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걸 몰라 얼마 간 방황을 했다. 지금의 루틴이 만들어지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이제는 새벽 기상부터 저녁 요가까지 매일 해야 할 것이 생기니 중요한 약속이 아닌 이상 굳이 만들지 않았다. 게다가 작년에는 유부녀가 되고,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퍼지며 바깥에서 만날 '건덕지'가 자연스럽게 줄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밤 11시가 되기 전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삶을 이 책의 저자, 한근태 작가는 이렇게 풀어낸다. '완전 승려 같은 삶'이라고.
많은 글을 쓰려면 생활이 심플해야 한다. 저녁 약속이 있거나 늦게 자거나 술을 마시면 리듬이 깨진다. 완전 승려의 생활과 다름없다. 예전엔 술도 좋아하고 모임도 제법 많았다. 요즘은 저녁 약속을 거의 하지 않는다. 주로 점심으로 대체한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중략) 9시쯤 잠자리에 든다. 완전 새나라의 어린이다. 따분해 보이지만 즐겁다. -『일생에 한번 고수를 만나라 』중 -
나의 승려 같은 삶은 단조롭고 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살았을 때 가장 자유롭다. 활력이 샘솟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의 아침 루틴 - 1. 일어나자마자 명상하기
출근을 하면 500ml 텀블러에 따듯한 물을 받는다. 목을 쓰는 직업이기에 쉬는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틈틈이 목을 적시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퇴근할 때면 텀블러의 물은 그대로거나 반이상 남아 있을 때가 허다했다.
물 마실 여유조차 만들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한 느낌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종종 목이 잠기거나 인후염에 걸렸다. 의식적으로 물을 마셔야 했다.
생존의 욕구인 갈증도 해결 못할 정도로 마음이 급한 나에게 긴급 처방이 필요했다. 무엇을 해야 잠깐이라도 나를 돌볼 수 있을까. 그 쯤 대학원에서 동양의 심리학에 대해 발표 준비를 하며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었다. 마음챙김 명상으로 우울증 환자의 50%나 증상을 완화시켰다는 논문을 보고 '이거다!' 했다.
핸드폰으로 명상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세상에, 마음챙김 명상을 전문으로 하는 앱이 있는 것이다. 일주일 무료 체험코스가 있었지만 월 커피 한잔 값이면 무료 이용을 할 수 있었기에 고민하지 않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 안에는 호릅 집중하는 명상, 잠자리에서 깼을 때 바로 하는 명상 등 시기에 맞고 수준에 맞는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명상은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지금은 반년 정도가 되었다.
명상으로 달라진 점 2가지
1. 여유가 생겼다. 일상 속 놓친 행복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물을 마실 줄 안다. 텀블러에 물을 2번 이상은 받아먹는다.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한다. 쉬는 시간이나 아이들이 몰입해야 하는 과제를 할 때면 텀블러에 손이 간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했으나 이제는 내가 물을 이렇게 많이 마셨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물 마실 여유뿐만 아니라 미소 지을 여유, 아이의 이야기에 잠깐 귀 기울일 여유, 화단을 한번 둘러볼 여유, 허브 차의 향기를 맡을 여유, 수업하다가 가을 하늘을 올라다 볼 여유 등 예전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갈 순간들이지만 이제는 그 찰나에 잠시 머무를 수 있다.
나는 명상 최적형 인간이었다. 조급한데다가 조그만 일을 두고 불안감에 금방 휩싸여버리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아닌 ‘당신은 명상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2.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알아차린다.
나는 내 마음속 동요나 불안감, 불편함을 자주 덮어두고 살았다. 일부러 표현하면 더 그 감정에 휩싸여버려 감정에 매몰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어기제 중 하나다.
어떤 감정은 가볍게 덮어둘 수 있지만 나의 생활에 지장이 갈 만큼 영향력이 큰 감정은 덮어둘수록 독이 된다. 감정은 ‘표현해야’ 한다. 매끄러운 일상의 흐름에 금이가고 깨진 후에야 그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마음 챙김 명상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알아차리기’다. 호흡과 더불어 사소한 신체변화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무거운 감정일수록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 지금 내가 많이 속상하구나.’ ‘나는 지금 ( ) 때문에 불안하구나.’라고. 의식했다면 다음 일은 순조롭다. 잠깐 멈추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누군가에게 표현할까, 글을 쓸까, 등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을 고른 후 실천에 옮긴다.
마음 챙김 명상이 아니더라도 유튜브에는 감사 명상, 확언 명상 등 각자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명상 자료가 있다. 나는 몇 개를 들어본 후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것을 듣는 편이다. 이 영상, 저 영상을 듣는 것보다 한 가지를 딱 정해서 꾸준히 듣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처음 명상을 하면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왜 이렇게 잡생각이 나는 거지' '명상을 제대로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것이 명상의 목적이다. '잡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의식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의 용어로는 '알아차리기'다.
때로는 원치 않지만 생각에 휩 싸여버리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 집중한다. 들숨에는 내가 원하는 가치를 날숨에는 내가 원치 않은 가치를 호흡으로 다스려 보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용기’를, 내쉬면서 ‘두려움’, '불안'을 빼내는 느낌으로 호흡에 집중해본다.
명상은 10분 내외면 충분하다. 더 짧은 5분 명상도 있다. 몇 분이 되었든 일단은 시도해본다. 명상을 실천하면서 나의 소소한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가 된다.
나의 아침루틴 - 2. 오늘 하루 예언하기
오늘 나에게 일어날 일을 내 스스로에게 확언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만세 삼창 하며 크게 외쳐보는 것이 효과가 좋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속으로만 생각했을 때와 소리 내어 말했을 때의 확언 효과는 극명하다.
우스꽝스러울 수 있으니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팔을 쭉 뻗어가며 외쳐보자! “나는 오늘도 행복을 선택한다! 나는 오늘도 행복을 선택한다! 나는 오늘도 행복을 선택한다!” , “나는 오늘도 물 마실 여유가 있다! 나는 오늘도 물 마실 여유가 있다! 나는 오늘도 물 마실 여유가 있다!”
나의 아침 루틴 - 3. 이미지 트레이닝
하루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자세할수록 좋다. 아침에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먹을지, 수업 시간에 마음에 걸리는 녀석이 문제 행동을 보였을 때 나는 어떤 표정과 말로 마음을 전할지, 수업 시간에 설명을 어떤 식으로 할지. 퇴근 후에는 저녁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등을 떠올린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 옷 고를 시간, 메뉴를 고를 시간이 줄어든다.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을 시간에 맞게 처리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쓴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한없이 가라앉는 날이면 위 루틴에 더욱 공을 들였다. 하루, 이틀만 되어도 복잡하던 마음의 창이 조금씩 말끔해졌다. 활력이 생겼다.
생리적 욕구만 잘 지켜도 우리의 일상은 꽤 살만하게 느껴진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운동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집밥을 먹는 것을 습관화하고, 명상을 하고, 요가를 다니고. 별 볼일 없이 단순한 이 3가지는 지금, 나를 단단하고 건강하게 만든 매일의 루틴이다.
사람으로 메꿔왔던 마음의 헛헛함은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엔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나름의 의식들로 꾹꾹 눌러 담고 있다. 빈자리는 결국 ‘나’만 채울 수 있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이 옆에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곳을 대신 채울 수 없는 것임을 이제 안다.
오늘도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동이 트지 않은 거실 창가에 가서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