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nx May 19. 2023

소 때려잡는 아내와 바퀴벌레

"악!"

이른 아침, 아내의 비명 소리였다.

"왜?"하고 물으니 바퀴벌레가 나타나서 슬리퍼로 죽여놨으니 치워달라는 거였다.

문득, 신혼시절이 생각났다. 비명소리는 지금보다 분명 거칠고 날카로웠다. 바퀴벌레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화장실로 향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생긴 건 소도 때려잡게 생겨가지고 바퀴벌레에 놀라기는".

아내가 들리지 않게 말했고 다행히 아내도 듣지 못한 듯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또다시 아내가 외쳤다.

"악! 바퀴벌레!(빨리 죽여!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퀴를 잡아 변기에 버린 후 물을 내리면 혼자 말했다.

"먹는 건 나보다 더 먹고 힘은 소도 때려잡겠고만 그깟 바퀴벌레에 호들갑은...".

물론 변기 물소리에 내 말소리는 묻혔다.

그때마다 바퀴벌레 박멸약을 부엌은 물론 집안 곳곳에 설치했고 싱크대 아래에는 바퀴벌레가 싫어한다는 은행잎을 구해 양파망에 넣어두기도 했다.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니, 바퀴벌레 따위를 무서워하는 아내가 슬쩍 측은해졌다. 그녀도 집에선 귀한 딸이었을 텐데. 그녀의 부모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쁜 딸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더 귀한 아들이었고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은 자식이었다고.

그렇지만, 귀갓길 내 손에는 바퀴벌레 없애는 약이 들려있고 이미 문자로 택배 박스에 딸려 바퀴벌레가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택배를 밖에 두면 내가 내용물을 꺼내 들고 가겠다는 내용을 아내에게 보내고 난 후였다.

그래, 나도 그녀도 다 집안의 귀한 아들 딸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마시려고 걱정하는 척?"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의 일관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