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가 주는 짜릿함>
편입을 하고 새로운 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작곡 수업을 들었다. 점수를 받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곡을 쓰고 가사 쓰는 훈련을 했다. 약 2년 동안 여러 결과물들을 창작하며 몰랐던 나의 음악적 취향을 알게 되었다. 작곡 전공들도 어려워한다는 매주 새로운 곡을 쓰고 발표하는 창작이 보컬 전공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과정들을 거쳐 창작물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내가 쓴 음악과 가사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 80% 이상의 곡들이 대부분 탱고 4박자, 왈츠 3박자의 곡이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가사 속의 나‘ 와 ‘현실 속의 나‘는 전혀 반대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절망적이고 처절함이 느껴지는 슬픈 가사를 쓴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연애에 빠져있었고, 설렘과 행복함이 가득한 가사 속 나는 실제로 이별을 겪고 심각한 우울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과 반대되는 상황을 상상하여 스토리를 만들어 낸 곡은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고 나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과정 중에 김윤아 님의 앨범 <유리가면>을 듣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애정하는 앨범 중 하나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트랙 하나하나, 내가 좋아하는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한 무대에서 김윤아 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 앨범은 탱고의 정서를 담았고 한 사람의 욕망을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곡의 재미는 서로 부딪치는 말이 많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불안하고 달콤한
나른하고 숨이 멎을듯한
죄의식과 행복의 기묘한 일체
차갑고 농밀한 나의 열정이 내 눈먼 영혼을 잠식하면
뜨겁고 농염한 죄의 입맞춤
타락의 나락 그 황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단어가 나열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나는 무척이나 끌렸다. 내가 곡을 쓰고 가사를 쓰며 느낀 반대가 주는 시너지는 굉장했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깊이 있게 빠질 수 있다. 이 곡은 사랑할 수 없는 상대와의 뜨거운 사랑을 상상한다.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위험한 사랑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이 ‘날 위안한다’는 말 또한 매력적이다.
나는 곡을 쓸 때 습관적으로 반대의 상황을 상상하고 그대로 가사에 실어내는 편이다. 노래를 감상할 때에는 반대된 상황을 그려보며 가사가 가진 간절함을 깊게 느끼기 위해 꼬아 듣는 나만의 방식을 즐기곤 한다. 그러면 곡이 가진 본래의 감정을 더 빠르게 이입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어려운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노래를 듣고 만들때 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다.
가장 뜨거운 사랑을 나눌 때, 이별을 상상하면 지금 현재의 감사함을 느낄 수도 있고 또는 집요함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반대로 가장 차가운 이별을 맞이했을 때, 사랑했던 때를 떠올리며 아프지만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 돌아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또는 그때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과한 집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아래 곡은 대학원 시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시기에 쓰고 발매한 앨범이다. 내가 작사/작곡을 하고 멤버들의 편곡으로 완성된 이별 노래 <해탈>. 3박자 왈츠 리듬에 간결한 슬픔을 담은 짧은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아픔을 해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복잡함과 차분함 속에서 울렁거리는 감정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악기 솔로 연주에 중점을 둔 곡이다. 즐거운 감상이 되시길 바란다.
안녕이라고 그대와
선명한 이별을 하고
아직도 나는 아파도
고운 맘으로 그댈 보내리
(Song. 로호 ‘해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