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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26. 2024

이직 준비의 첫 발걸음

이번 주 월요일 밤, 혼자 이직 사이트를 뒤져보다가 막막함을 느끼고는 고민 끝에 반년 전 우리 부서를 퇴사하신 A님께 카톡을 보냈다. 'A님, 잘 지내시죠? 저 이제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해보려고 하는데,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서... 연락드려봐요.'


아침이 되자 A님께서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로 시작하는 답장을 보내셨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전화가 왔다. 야근 중이던 나는 회사에서 전화를 받았다.


"소연님, 잘 지냈어요? 아니, 잘 지냈으면 나한테 연락을 안 했겠지?"


반가운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사투리 섞인 목소리는 여전히 유쾌했다. 어쩌다 이직까지 생각하게 되었냐, 거기는 어떠냐는 질문에 나는 여기는 분위기가 더 안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A님은 본인도 그랬다면서 공감을 해주셨다. 더럽게 일하기 싫고, 모든 게 손에 안 잡히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고. 그런 마음 잘 이해한다고. 그렇지만 무턱대고 퇴사는 하면 안 된다고, 지금부터 잘 준비해 보자고.


첫 발짝 떼기가 힘들다는 내 말에 A님은 우선 각종 채용 사이트에 가입하는 게 먼저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각 사이트의 특징을 알려주셨고, 이와 더불어 이직을 준비하기에 가장 첫 단계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어떤 마음의 준비냐고 물어보자, 지금 있는 회사보다 연봉은 낮아질 수 있다는 각오부터 하라고 하셨다. 본인은 이직할 때 연봉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에, 나는 나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이력서를 준비해 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내가 지금까지 회사에서 5년 동안 해온 일들을 나열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들에 강세를 둔 이력서를 미리 준비해 둬야, 원하는 곳에 공고가 떴을 때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아무리 당장 떠나고 싶어도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잘못하면 커리어가 꼬일 수 있기 때문이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냥 연락 오는 아무 기업이나 갈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안 그러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했다. 어쨌든 빠르게 이직을 하려면 같은 직무로 이직을 준비하는 게 쉬울 거라고 하셨다.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선퇴사를 때리고 직무나 업종을 아예 바꿔버릴까 하는 다소 충동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는 확실히 시기적절한 조언이었다.


"저 맨날 밥 혼자 먹었잖아요. 그거 그 시간에 다 그런 사이트 보면서 일자리 찾고 있던 거였어요ㅋㅋㅋㅋ워낙 시간이 없으니까, 밥 먹는 시간 아껴서 찾고 그랬지. 막 밤에 다음날 해야 할 거 생각하면 스트레스받아서 잠도 안 오고 그랬어요."


나는 내가 지금 딱 잠을 잘 못 잔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또 마음이 아팠다. 반년 전 그즈음, 부쩍 말수가 없어지고 매일 밥을 따로 드시던 A님을 보며 마음 아파했었는데, 지금의 나 같은 상태셨던 거다. 이제는 내가 그런 시기가 된 거구나, 그때 A님도 이렇게 힘드셨겠구나. 그때의 나는 그 심정을 몰라서 힘도 위로도 못 되어드렸던 게 생각이 났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조언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올해 안에만 뜬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신중하게, 회사 일은 좀 마음에서 내려놓고 그렇게 지내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당장 상반기에 뭔가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다시 한번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A님도 2월부터 준비해서 8월에 붙으셨으니, 나도 그 정도는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 괜히 싱숭생숭하게 이직 준비하는 거 알리거나 들키지 말라고 하시길래, 사실 우리는 A님 이직 준비하시는 거 다 알고 있었다고 자리에 졸업증명서 같은 거 두지 않으셨냐고 대답했다. 그때 들킨 걸 얘기하면서 또 한바탕 서로 웃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A님은 내게 말해준 사이트들을 다시 한번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그러면서, 이번 전화 한 통으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준비하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지속적으로 물어보라고 하셨다. 이 회사 어떻대요? 이런 것들도 편하게 물어보면 아는 선에서 다 대답해 주겠다고. 그러면서 연락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셔서 또 마음이 뭉클해졌다. 자기가 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는 말에, 첫걸음 떼는 게 힘든데 그때 이렇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A님이 퇴사하실 때 이직 생각 있으면 꼭 도와줄 테니 연락하라고 하셨었는데, 그 말 때문에 연락드릴 수 있었다고, 그때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A님이 퇴사하시던 날, 다 같이 회의실에 모여서 인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A님, 그동안 저희와 함께 보낸 2년이 좋은 추억으로..."라며 말 한마디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오열했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직하는 건 좋은 일인데 대체 왜 우냐고 황당해할 정도였다. 헤어지는 게 슬픈 게 아니었다. 축하하는 마음도 진심이었다. 다만, 혼자 이직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그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지가 슬펐고, 그동안 내가 그 사실을 미처 몰라줬다는 게 속상했다. A님은 경력직으로 입사하신 탓에 송도에 마음 둘 곳이 진짜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회사에서 가장 가까웠을 우리한테도 괜히 심란하게 만들까 봐 미처 털어놓지 못하셨을 그 심정이, 그럼에도 마지막 퇴사 직전까지 야근하면서 일들을 처리하고 가신 모습들이 떠오를수록 계속 눈물이 났었다.


아마 그때도 나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곧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걸. 그래서 더욱 그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무튼, 나는 어쩌면 인사치레로 건네셨을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빈말을 염치도 없이 덥석 물고 연락했고, A님은 감사하게도 성심성의껏 조언을 해주셨다. 반년 전, 앞으로 하시는 일 다 잘되시라는 인사를 전하면서 사실 나는 A님께 마음속으로 영영 작별인사를 건넸다.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또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히 생각해 보자면,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시는 걸 보면 함께 지낸 2년 동안 A님께 나도 나쁜 동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인연의 맺고 끊음은 내 생각대로만 되지 않음을, 그리고 어떤 인연이든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니 매 인연에게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본다.


방향을 제시받았으니 이제는 실천할 때이다. 가장 첫걸음부터, 나의 지난 5년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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