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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May 23. 2024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믿는다

길리 프리다이빙 일기 2



여행을 다니면서 일기를 꾸역꾸역 열심히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나를 위한 기록이었던 그 일기들은 의외로 정보를 얻기 위한 외부인들도 많이 읽어주신다. 다시 읽어본 내 일기에는 생각보다 프리다이빙 얘기가 엄청 많았다. 그동안 열심히 읽어주시던 이름 모를 한 분이 나중에는 결국 성공하는거냐며 축하한다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일기가 밀려서 일주일 정도 시차가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물론 거기에 나는, 길리에서 따는 건 포기했다고 답글을 남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아직 실패한 게 아니라 했다. 내가 프리다이빙을 계속하는 한 언젠가는 성공하긴 할 거고, 그러니 나는 계속 실패한 게 아니라 도전 중인 상태다. 그렇지만 길리에서 될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격증을 따기 위한 첫 번째 도전은 완전히 처참하게 실패했다. 나는 단 3m도 잠수하지 못했다.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기만 하면, 어딘가에서 단단히 막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체내에서 공기의 흐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벽에 가로막힌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하겠다는 말에 선생님은 그건 돈낭비일 뿐이라고, 내가 뭔가를 깨닫지 못하면 재도전해도 의미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한국에 가서 한국 강사한테 한국어로 다시 배워보라고 했다. 그 말이 나를 포기한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그저 “I’m so sad….”라고 하자, 선생님도 “Yes, so sad….”라는 말로 대답하실 뿐이었다. 친구들이 다시 하면 된다고 위로해 줬지만, 선생님 말처럼 이건 그냥 다시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혼자서 열심히 연습하려고 유튜브와 블로그를 닥치는 대로 찾아봤는데, 혹자는 반년 넘게 걸렸다고 했다. 만 번을 연습하면 된다는 보장만 주어진다면 만 번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삶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누구도 내게 만 번을 연습하면 된다는 확신을 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아예 구강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낮은 확률에 무턱대고 도전하는 것을 잘 못하기에, 안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무력감에 휩싸인 그날은 울적해서 숙소에서 쉬기만 했다.


그렇지만 나는 말로는 체념했다고 하면서도 길리 트라왕안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물렀다. 비자 만료를 앞두고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서 눈물이 났던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는 프리다이빙을 포기하고 떠나기 싫었던 것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에, 내가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더 내가 안될 거라고 생각하려 했다.


프리다이빙을 처음 시작하면서 자격증 따기 전에는 한국 안 돌아갈 거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었다. 그런데 그게 내 생각보다 더 진심이었나 보다. 돌아가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그 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미련을 뒤로 하 길리 트라왕안을 떠나서 길리 아이르로 향했지만, 그건 사실 떠난 게 아니었다. 길리 아이르에서는 길리 트라왕안까지는 30분 만에 갈 수 있으니까, 언제든지 성공만 하면 바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길리 아이르로 옮긴 뒤에도 계속 물놀이 겸 프리다이빙 연습을 했다. 길리에서는 어차피 스노클링 밖에 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늘 그듯 혼자 깊은 곳에서 연습 삼매경에 빠져있던 어제,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헤드퍼스트 이퀄라이징이 뚫렸다! 양쪽 귀에서 삐이이이 하는 약한 소리가 나더니 귀의 통증이 사라졌다. 그대로 나는 물 밑 몇 미터 아래 바닥을 짚을 수 있었다. 얼떨떨해서 몇 번 더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됐다. 뭐지? 이거 된 건가? 바로 물 밖으로 나와서 프리다이빙 센터에 연락했다. “저 내일 재도전하러 가도 되나요?”


그리고 나는 오늘, 마지막 도전을 하기 위해 이미 떠나온 길리 트라왕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그냥 스노클링 하면서 잠수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정신승리하면서 국으로 돌아갈 준비하던 것을 내팽개치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심장이 뛰었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내 생각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나는 치열하게 노력해서 성취해 낸 경험이 별로 없고, 그래서 노력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사실 이번에도 연습을 열심히 했냐고 물으면, 그냥 한가할 때 하루 30분~1시간? 생각날 때 가끔? 매일 그날 해야할 일로 적어두고는 정작 제대로 안 하고 누워서 뒹굴거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런 나를 옆에서 일주일 정도 지켜본 동행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너 정도 연습했으면 진짜 무슨 강사 했겠다.” 누가 매일 두 시간씩 스노클링을 하냐며, 자기가 보기에는 내가 프리다이빙에 대한 집착과 노력이 굉장했다고 했다. 나는 그냥 물놀이 겸 한 건데…. 그때 든 생각이, 어쩌면 나는 내가 노력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사실 내 노력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게 아닐까? 이미 충분히 노력한건데, 나는 그 노력을 과소평가하고 계속 나 자신을 노력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치부하며 유리천장에 가둬둔 것은 아니었을까.


그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성취해 낸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내 마음 한편에는 곧 될 것 같다는 낙천적인 희망과 어차피 안될 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내가 은은한 자포자기의 마음을 내내 지니고 있었던 것은 실패에 대한 방어기제이자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었다.


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 해를 맞이하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체감했을 때의 나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퇴사를 하고 싶지만 퇴사하면 다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차마 퇴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팀장님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업무 상 강점을 말해주셨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신입사원 때, 대학생 때, 혹은 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나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 내가 이뤄낸 것들은 다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도전하지 않으며 혹시 결과가 안 좋더라도 의연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안될 줄 알고 있었어, 정신승리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이번에 성공해냈다. “뭐야, 나 하면 또 하는 사람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순간적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나는 원체 물놀이를 좋아하고, 둘째, 여기서는 할 게 이것밖에 없어서 맨날 연습했다. 그렇다면 명확하다. 나는 “좋아하는 일에 몰입한다면 성취해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내가 뭔가를 못 해낸 이유는 좋아하는 걸 못 찾았거나, 여러 가지를 건드리느라 하나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 후자의 이유가 컸으리라. 욕심 많은 나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항상 바쁘고 피곤한 사람이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단 하나에 집중하라”, 작년에 읽었던 <원씽>의 교훈이 돌고 돌아서 다시 내 머리를 쳤다. 글이나 그림이나 악기나 운동이나 여러 가지를 건드리는 나를 보고 한 친구가 다재다능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프로가 되지 못할 애매한 재능은 아무 소용없다고 대꾸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나는 나의 그 재능들에 노력을 쏟은 적이나 있던가? 프로가 오직 재능만으로 되는 건 아닐 텐데, 어쩌면 나에게도 프로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재능이 있었을 텐데 내가 솎아내고 물을 주지 않은 건 아닐까. 어쩌면 그런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또한, 지난 여행 동안의 경험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나의 또 다른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장기여행자가 많았고, 나처럼 인생의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떠나온 경우도 많았다. 한 친구는 말했다. “여기에 이러고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고 뭐든 해도 행복할 거 같은데, 한국 가면 다시 남들과 똑같은 것을 쫓으며 살게 되겠죠.” 적어도 2호선 출근길의 표정 없는 사람들보다 행복해 보이는 여기 현지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내가 재능이 있었다면 여기서 프리다이빙 강사나 했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정말 농담일까? 어쩌면 내 속에 있는 깊고 무거운 생각들을 가벼운 농담에 섞어서 풀어내는 것은 나의 또 다른 방어기제일 것이다. 퇴사하고 발리 한 달 살기를 떠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다가 퇴사는 못했지만 발리 한 달 살기는 왔고, 프리다이빙을 그냥 좋은 경험이라 얘기해 놓고 나도 모르게 엄청 집착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고 보니 언젠가 모임에서 만난 한 분이 내 관상을 보고 나중에 프리랜서랑 결혼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그때는 “엥? 저 해외지사도 없는 대기업 사원인데요? 해외 못 가요…그리고 전 평생 한국에 살고 싶어요.”하면서 내가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렇게 한달살이를 하며 내가 정말 그런 삶을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되면 돗자리 펴라고 말씀드려야겠다….) 프리다이빙 강사는 안될 것 같긴 한데, 어떤 형태로든지 여유로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다.


나에게 프리다이빙을 처음 가르쳐준 길리생활 첫 동행 S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프리다이버가 된다면 넌 내 삶을 바꾼 귀인이 되는 거라고. 길리에서 프리다이빙을 배우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덕분에 여기에 온 프리다이버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더 넓고 깊은 바다를 볼 수 있었고, 노력하고 성취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길리에 눌러앉은 덕분에 여행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한때 나는 내가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여행은 귀찮고 피곤한 거였다. 그냥 맛있는 거 먹고 돈 쓰고, 같이 가는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정도의 의미. 유럽여행 한 달에 400만 원을 쓴대서, 그 돈을 한국에서 한 달 동안 써도 충분히 행복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냥 관광에 별 관심이 없는 거였다. 이번에 내가 한 여행은 달랐다. 그 지역에 녹아들어서 현지인들의 일상을 경험하는 것. 경외심이 드는 넓은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 세상의 작은 일부임을 체감하는 것. 그러면서 내가 걱정하는 모든 것들이 다른 세상에서는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삶이 어떤 형태든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었고, 나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 작은 도전은 내가 인지하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정말 그 친구는 내 삶을 바꾼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살다 보면 뭔가 이렇게 될 것만 같았던 일들이 있다. 길리에 와서 프리다이빙을 배운 것도 그렇다. 그리고 혹시 이번의 여행을 계기로, 내가 정말 프리랜서가 되어서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으려나 하는 가벼운 상상을 해본다. 그럼 우리가 주고받은 모든 말들이 다 계시가 되는 거다. 만약 그런 날이 오면, 내 인생을 바꾼 순간으로 이 날들을 기억해야지.


...


...


...


...사실 위의 글들은 미래일기였다. 연습하면서 이퀄라이징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재시험을 보러 돌아오는 길에 쓴 일기. 시험은 방금 막 끝났다.


그래서, 프리다이버가 되긴 한 거냐고 묻는다면, 어찌어찌 턱걸이로 간신히 합격은 했다! 캬캬캬캬캬캬캬컄캬ㅎㅎㅎㅎㅎ


사실 더 잘 해내고 싶었는데, 어제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고 편도가 잔뜩 부었다. 거기다 긴장한 탓인지 선생님 앞에서 이퀄라이징이 더럽게 안 돼서 또 난항을 겪었다. 다시금 마주한 벽에 아주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내 멘탈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많이 다독여주셨다. 너는 확실히 나아졌고, 그것 만으로 대단하다, 자격증은 다음에 또 따도 된다. 와, 내가 정말 안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저는 여기서 따고 싶어요” 하면서 꾸역꾸역 시도했다. 고막이 터져도 어차피 곧 한국 돌아가서 치료하면 된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선생님이 계속 기다려주시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마음 편히 먹으라고 조언해 주신 덕에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합격이라는 말을 듣고도 연습 때보다 너무 못한 게 아쉬워서 별로 기쁘지 않았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하이파이브를 해주면서 내가 발전해서 기쁘다고 해주셨다. 그제야, 어찌 됐든 일단 수고했다는 말을 나한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보다 show and prove 하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내가 프리다이빙 자격증에 매달린 동기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을까, 또 그렇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어쨌든, 아무 생각 없이 왔던 여행에서 의외의 성과를 얻게 되어서 기쁘다. 수영을 못하던 전소연에서 프리다이버 전소연이 되어 돌아가게 되었다(근데 사실 수영은 여전히 못한다…ㅎ) 당장 다음에는 어느 바다를 갈지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보고 있다. 아마 앞으로 내가 보는 바다는 지금까지 봐온 바다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외에도 아마 이 여행이 내게 남긴 것은 많을 것이다. 나의 경험과 깨달음들이 언젠가 적절한 상황에 싹 틔울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또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 여러모로 이번 여행, 참 오길 잘했다! 이제 진짜 여한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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