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내게는 루틴이 생겼다. 바로 거북이를 보는 것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숙소 수영장에서 놀거나 프리다이빙 연습을 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밥을 먹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오후 서너 시가 되어서 따가운 태양이 한풀 꺾일 때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섬 북쪽 터틀포인트로 향했다. 바로 내 친구 두두의 렌탈샵이 있는 곳이다.
두두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길리 트라왕안에 입도한 첫날이었다. 앞으로 머물게 될 작은 섬의 구석구석을 자전거를 타고 탐색하는 중이었다. ‘거북이섬’으로 유명한 곳답게, 지나가는 곳마다 현지인들이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 꼬부기 봤어?"
참 묘한 게, 사실 길리에 오기로 결정하면서 나는 거북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뭔가를 보고 싶다는 욕심 자체가 별로 없는 편이다. 나는 단지 바다를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길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마주치는 사람마다 죄다 내가 거북이를 못 봤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저쪽에 가면 거북이를 볼 수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선의에 호응하기 위해서 인도네시아어로 “뜨리마 까시” 혹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그쪽으로 향하게 되었다.속으로는 '굳이 봐야 하나' 싶었으면서도.
아무튼, 그렇게 거북이를 봐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지만 내게는 스노클링 마스크도, 오리발도, 구명조끼도 없었다. 처음 발리한달살기를 계획하면서 내가 길리에 올 줄은 꿈에도 모른 탓이다. 뭐, 사면 되지! 그렇게 인터넷을 뒤져서 섬의 북쪽이 거북이가 자주 출몰하는 터틀포인트며 그 앞에 스노클링 장비 렌탈샵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그렇게 북쪽으로 향했다.
렌탈샵 앞에 놓인 좌판대를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주인아저씨가 무엇을 찾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스노클링 마스크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가 하나 골라주며, 하루 빌리는데 25K 루피아(한화 약 2000원)라고 말했다. 나는 잠깐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렸다. 길리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 나는 하나 사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혹시 대여 말고 판매도 하냐는 내 말에아저씨는잠깐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새 마스크 두 개를 가지고 나왔다. 7만 원짜리인 이건 렌즈가 유리고, 3만 원짜리인 저건 렌즈가 플라스틱이고…. 그렇게 마스크 두 개의 특징을 설명해 주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나는 오래 고민했다. 아니 길리 물가 미쳤네!
유리와 플라스틱의 차이가 뭐야? 고무가 더 말랑말랑하면 뭐가 좋아? 이것저것 캐묻는 나에게 아저씨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 천천히 둘러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다보니 스몰토크가 시작되었다.
길리에는 언제 온 거야?
나 오늘이 길리에 온 첫날이야.
오,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 거야?
글쎄, 한 일주일? 모르겠어. 내가 가고 싶을 때?
그렇구나, 네 친구는 어디 있어?
나 친구 없어. 혼자 여행 왔어.
인도네시아에서는 나처럼 여자 혼자 여행 다니는 일이 흔치 않은 듯했다. 내가 혼자 여행 다닌다고 말할 때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다.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이내오, 너 외롭겠다, 하고는 말했다.
그럼 내가 네 친구가 되어줄게.
좋아! 흔쾌히 대답한 나는 마스크도 바로 구매하기로 했다. 그때는 내가 프리다이빙을 하게 될 줄 몰랐으므로 그냥 대충 싼 걸 골랐다. 아저씨는 친구니까 깎아준다며 마스크 케이스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깎아주었다. 내 자전거와 짐들을 맡아주기도 했다. 아저씨는 아쿠아 슈즈를 빌려 신고 뒤뚱거리며 바다로 들어가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다가, 물에 들어갔던 내가 바로 다시 해변으로 걸어 나오자 황급히 뛰어 왔다. 무슨 문제 있어?! 나는 깜빡하고 손목에 차고 들어간 갤럭시 워치를 풀어서 건넸다. 나 이거 깜빡했어, 이것도 맡아줘! 아저씨는 웃으며 워치를 받아 들고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그 순간 뭐랄까, 지금까지 2주 넘게 혼자서만 챙겨 왔던 내 물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보호자가 생긴 것 같은 기분에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그날 스노클링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친구라면서 이름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서로 이름을 외우는 게 그 사람과의 관계의 기본인데, 다음에 만나면 이름을 물어봐야지.
그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물어본 그의 이름은 두두였다. 그렇게 두두는 길리에서의 내 첫 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 매일같이 두두의 렌탈샵에 가서 오리발을 빌려서 스노클링을 했다. 생각보다 길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럴 거면 그때 오리발도 그냥 살걸, 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오리발을 빌리면서 매일 두두와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니 오히려 잘된 셈이다. 두두는 늘 내 자전거와 짐을 맡아주었고, 가게 근처에서 기타 치며 놀고 있는 자기의 친구들을 불러서 내가 거북이 찾는 것을 도와주라고 시키기도 했다. (왜 직접 안 도와주냐고 물어봤더니 담배를 너무 많이 펴서 폐활량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발리/길리에서는 정말 모두가 골초다!)
아무튼, 두두의 도움으로 거북이를 처음 보고 나서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거북이에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영상이나 아쿠아리움에서 거북이를 보는 게 2D라면, 내가 직접 거북이와 같은 공간에 담겨 있는 것은 4D였다. 물속에 잠겨 있으면 중력의 영향을 거스르고 바깥의 소음이 차단되면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와중에 나와 다른 시간축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릿느릿한 거북이의 몸짓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 내가 속한 세상을 잊게 된다. 머릿속이 깨끗이 비워지고 오롯이 거북이의 움직임에만 모든 감각이 집중되는 기분. 처음 길리에 올 때 거북이를 보는 게 목표가 아니었던 나도, 길리에 계속 머물면서 점점 더 거북이 보는 것에 진심이 되었다.
그렇게 거북이를 보고 물밖으로 나오면 두두를 비롯한 현지인 친구들이 물어본다. 꼬부기 봤어? 그럼 나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Yes! 그럼 또 그들이 물어본다. 몇 마리?! 아니, 거북이 봤으면 됐지, 이제 또 여러 마리를 봐야 해!? 어이가 없었다.한 마리만 봤다고 하면 그들은 또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데,정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또 다음번에는 여러 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나도 어이가 없다! 과연 내가 가진 욕망 중 어느 것이 나의 고유한 욕망이고 어느 것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입된 욕망일까…나는 사실 이 거북이섬에 세뇌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하소연을 하며 나는 한 마리만으로 만족할 거라고 했더니, 두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길리에 머문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일까. 두두가 며칠 롬복에 있는 본가를 다녀와야 해서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언제 돌아올 것인지, 자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가 길리에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참 이상했다. 두두와는 고작 하루에 십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사이일 뿐인데,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내가 갈 때마다 반겨주던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이 섬이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뭔가 큰 조각이 빠져서 그 자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정말 고작 인사 몇 마디뿐인데, 그게 그렇게 내게 큰 의미였나 보다. 사람들 대하는 게 피곤하다고 발리로 도망쳐온 나였지만, 결국 나는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두두가 돌아올 때까지 길리 트라왕안에 계속 머물렀다. 두두는 꼬박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두두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며칠 더 머물다가, 마침내 나는 길리 아이르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쉽지 않았다.꾸따나 우붓도 떠나기 아쉬워서 하루하루 미뤘던 나인데 보름 넘게 머물렀던 길리 트라왕안은 오죽할까.아직 프리다이빙 자격증도 따지 못했는데.떠날 결심을 하는 게 쉽지 않아서 하루하루 미뤘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이곳에 눌러붙어 있을 순 없었다. 이제는 정말 가야 할 때라고 마음속으로 정한 날이 다가왔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욱 꾸물거린 탓에 4시가 넘어서야 두두네 샵에 도착했다. 두두가 친구를 딸려 보내려고 찾았지만 괜찮다고 거절했다(프리다이빙은 버디가 필수이므로 사실 이러면 절대 안 된다). 길리 생활 2주가 넘었는데, 이제 혼자서도 거북이 여러 마리를 찾아낼 정도로 스노클링 고수가 되었다며 큰소리쳤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날 혼자서 나는 거북이를 4마리 넘게 발견했다. 길리 T에서의 마지막 날, 기적처럼 이퀄라이징이 되기를 기도하며 더욱 열심히 연습하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퀄라이징은 되지 않았고 나는 5미터도 채 못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마지막까지 결국 안 되는 거였다.
체념한 채 해변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저 멀리 깊은 곳에 거북이 한 마리가 계속 가만히 앉아있었다. 뭐지? 가까이 다가가보니 정박되어 있는 보트와 연결된 밧줄이 눈에 띄었다. 그 거북이는 밧줄과 바위 사이에 끼어 있었다. 수면으로 호흡하러 가지 못하면 거북이는 질식할 것이므로 구해주고 싶었다.그러나 내가 내려갈 수 있는 깊이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충분히 준비 호흡을 하고 덕다이빙을 해서 내려가보았지만,내 손은 아직 턱없이 멀었는데 귀가 먼저 아파왔다. 내가 헤드퍼스트 이퀄라이징을 못한다는 게, 그리고 하필 지금 이곳에는 나 혼자라는 게 너무 야속했다.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는 저 거북이를 내가 구할 수 있을까, 내 호흡이 딸려서 질식하는 건 아닐까, 무섭기도 했다.
그 와중에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물밖으로 나가기 전에 완전히 어두워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바닷물이 더 차갑게 느껴지면서 공포가 몰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저 거북이를 그대로 두고 갈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헤드퍼스트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밧줄을 붙잡고 똑바로 풋퍼스트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무섭고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숨을 꾹 참고 내려간 뒤, 다리를 쭉 뻗어서오리발 끝으로 힘껏거북이를 밀어냈다. 밧줄 사이에서 거북이가 쑥 빠져나왔고,나는 곧바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뿌듯함에 취할 겨를도 없이 더 어두워질세라서둘러서 해변으로 향했다.
방수팩에 넣어서 가져온 핸드폰 화면을 보니 벌써 6시 반이 넘어 있었다. 두 시간 넘게 바닷속에 있었던 셈이다. 두두의 렌탈샵 근처로 갔더니 나를 발견한 현지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너 어디 있었어? 죽은 줄 알았어! 머쓱해하며 두두는 어딨냐고 물어보니 나를 찾으러 갔다고 했다. 내가 거북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섬의 동쪽까지 멀리 간 탓에, 북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미리 말하고 갈 걸 그랬다.
나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두두가 저 멀리서 뛰어왔다. 두두는 나를 보고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오 마이갓! 너 죽은 줄 알았어! 대체 누가 두 시간 넘게 스노클링을 해! 그 모습을 보는데 코끝이 찡했다. 내가 여기서 머무는 2주 동안 나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내가 물속에 있는 동안 안전하기를 바라주는 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 덕분에 내가 지난 2주 동안 무탈했나 보다.
나는 괜히 더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 이제 수영 잘한다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거북이도 네 마리나 봤다고! 그 말에 두두도 대꾸했다. 맞아, 너 이제 피부색도 완전 나랑 비슷해. 이제 한국 가면 사람들이 발리 사람인 줄 알 거야. 우리는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았다. 갑자기 두두가 잠깐 기다려보라며 좌판대에서 발찌 하나를 골라 들더니, 나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발목에 묶어 주었다. 거북이가 달려 있는 발찌였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 섬을 잊지 마.
당연히, 나는 이곳을 결코 못 잊을 것이다.
나는 두두에게 주려고 가져온 우붓에서 산 과일잼을 내밀었다. 한국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주려고 산 거지만,한국의 친구들에겐 다른 방식으로 감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진 게 없어서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 여기서 현지인 친구가 생길 거라는 생각을 미처 못한 게 아쉬웠다. 다음에 만날 땐 꼭 한국에서 선물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서는데, 자꾸 눈물이 비죽비죽 나왔다. 이래서 친구를 안 만들려 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얄팍한 인연 따위에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울까 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여행을 다니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게 그런 마음으로 인사를 전했다. 여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내가 살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잠깐 내가 머물렀던 풍경 속에서 그대로 또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미뤄뒀던 소설 과제의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스노클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제출했다. 그 소설에는 주인공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는 현지인 친구가 나온다. 그 친구의 이름을 뭐라 붙일지 잠깐 고민했다. 떠오르는 이름은 바로 '두두'였다.
이따금씩 나는 생각한다. 길리에서는 오늘도 하늘이 파랗고 태양이 쨍쨍하고 거북이들이 헤엄치고 두두와 친구들은 기타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그날로부터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길리에서 온 거북이는 내 발목에 달려 있고, 그 거북이를 볼 때마다 나는 길리에서 만난 거북이와 두두를 떠올린다.
사람을 이루는 것은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길리에서의 기억들로 이루어진 나의 일부를 두두네 렌탈샵 앞바다에 두고 온 것 같다. 그 일부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구석 빈자리가 뻐근하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서 그동안 잘 지냈냐고 웃으며 대화할 수 있길. 그렇게 언젠가의 미래를 기약하며 오늘을 잘 지낼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