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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Oct 20. 2024

달리는 게 즐겁다, 그거면 되었다!

첫 번째 하프 마라톤 후기

오늘은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기다리던 나의 첫 하프마라톤이었다. 2024 하반기를 맞이하며 나는 달성하고 싶은 몇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 하프마라톤 도전이었다. 특히 오늘의 마라톤은 매년 10월 초에 내 집 앞(정말 리터럴리 내 집 앞을 지나간다)을 지나가는 송도 마라톤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작년 송도 마라톤에서는 10km를 도전했었다. 그건 나의 두 번째 10km 마라톤이었다. 첫 번째 10km 마라톤보다는 무조건 성장한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 욕심이 지나쳤던 탓일까, 늘 10월 초 환절기에 걸리는 감기몸살 때문일까. 처음 발걸음을 떼자마자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꼈고, 천근 같은 다리를 억지로 잡아끌면서 달린 1시간은 내 러닝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1시간이었다.


그날 뒤풀이에서 러닝크루 사람들이 저마다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하프마라톤이니, 풀마라톤이니,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면서 반짝이는 눈빛들을 보면서 그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날 쓴 아래의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으면서 나 자신을 위로했다.


뒤풀이에서 러닝크루 사람들이 다음에 예정되어 있는 대회들과, 언젠가의 하프마라톤, 풀마라톤을 얘기했다. 나는 10km도 충분히 벅차고 이보다 더 힘든 건 싫기 때문에 하프마라톤도 풀마라톤도 전혀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얘기하는 그 사람들이 반짝반짝해 보여서, 나도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는'하는 작은 가능성을 심게 되었다. 지금은 그분들에 비해서 내가 너무 쪼렙이지만, 한편으로 그건 아직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


그렇지만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러닝을 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숨이 가빠질라치면, 그때의 괴로웠던 기분이 생각나서 멈추곤 했다. 항상 나는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게 너무 속상했다. 잘 달려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러닝을 즐길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욕심을 버리고 다시 천천히 시작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항상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오버페이스 하지 말자. 항상 내가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속도를 내자. 당장 빠르게 가는 것보다 지치지 말고 오래오래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 그렇게 조금씩 다시 달리는 거리를 늘리고, 러닝크루에서 하는 각종 훈련에도 열심히 참여하게 되면서, 다시금 러닝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취미가 되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은 특히 러닝에 매진했다. 러닝크루에서 러닝거리로 대결하는 이벤트를 벌인 덕분이기도 했고, 오늘 있을 하프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2024년 하반기에 이르러서 나는 뭔가에 굶주린 것처럼 하고 싶은 것들이 넘쳤고, 그 덕에 해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질식할 것 같았다. 눈 딱 감고, 단 하나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게 바로 러닝이었다.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생기면 바로 주저고 뛰러 나갔다. 눈앞에 놓인 일들과 스트레스에 대한 회피인 걸 알았지만, 9월 한 달은 그렇게 매진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220km를 뛰고, 무릎을 다치고,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 내가 얼마나 러닝을 좋아하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고, 치료와 휴식에 집중하다가 맞이한 오늘이 바로 달리기를 중심으로 살았던 지난 몇 주간의 여정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어제 아침부터 갑자기 목이 아프고 열이 나기 시작해서 나는 또 덜컥 겁이 났다. 다시금 나를 제치고 달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면서 달릴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어젯밤에 약과 비타민을 챙겨 먹고 일찍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하면서 기도했다. 부디 내일 뛰는 게 괴롭지 않게만 해주세요.


그렇게 도전한 나의 첫 하프마라톤. 욕심내지 말고 단지 완주만 하자던 다짐이 무색하게 우르르 뛰기 시작하는 인파 속에서 나는 초반부터 오버페이스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 530도 뛰지 못하는 내 시계에 적힌 페이스는 510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금방 지칠 게 분명해서 페이스를 낮췄다. 나와 발맞추어 뛰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제치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분명 나보다 평소에도 잘 뛸 게 분명한, 내가 경쟁상대로 삼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서가는 그들을 쫓아가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내 목표는 저 사람들보다 잘 달리는 게 아니고, 단지 즐거울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완주하는 거라는 걸. 나에게 마라톤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계속 되뇌었다.


몇 번이고 마음이 급해지거나 너무 힘들다 싶을 때면 의식적으로 페이스를 낮추면서 내가 지속할 수 있는 페이스를 찾았다. 21km라는 거리가 막막하게 느껴져서 포기하고 싶을 때면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려고 애썼다. 힘들다는 생각 대신 할만하다는 생각을, 아직 10km나 남았다는 생각 대신에 10km 정도는 평소 많이 뛰어봤으니 만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하게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다는 진리를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나 지금 너무 힘든데? 못하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힘들어졌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할만해!! 할 수 있어!! 안 힘들다!!'라고 되뇌니까 정말 덜 힘들어졌다. 결국 내가 못하고 포기해야 할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한계는 내가 정하는 거였다.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계속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힘든 순간에는 곧 마주칠 응원단을 생각했다. 웃는 얼굴로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보란 듯이 힘차게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대체 어디에 남아있는지 모르겠는 힘이 솟아났다. 2km쯤 남겨두고 마지막 응원을 받은 뒤 이제 천천히 마무리해야겠다 싶던 찰나, 10km를 먼저 완주하신 분들이 결승점 근처에서 다시금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얼마 안 남았어, 끝까지 달려!!!" 그 말에 나는 또 땅을 힘차게 박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 전력질주를 한 끝에, 내가 피니쉬라인을 밟고 멈췄을 때 워치에 표시된 시간은 01:58:39! 나는 2시간 이내에 하프를 완주한 것이다! 첫 하프니까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선언하진 않았지만 내심 마음속으로 바라던 성적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2시간 이내에 들어온 것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한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좋은 것은 2시간 동안 달리고 나서도 그 기억이 힘들기보다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게 가장 행복했다. 당장 또 다음 대회를 준비해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뒤풀이에서 러닝크루 사람들과 다음에 있을 하프마라톤과 풀마라톤에 대해서 얘기했다. 1년 전 내가 반짝반짝해 보여서 부러워했던 그 표정을, 어쩌면 오늘의 내가 하고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9월 한 달 동안 200km를 넘게 달리는 동안 달리는 게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최선을 다해 뛴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설렁설렁,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뛰면 앞으로도 한없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9월을 시작하면서 “이번 달엔 꼭 100km 넘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9월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사실 그보다 더 많이 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은 무척 소중하다. 러닝을 하면서 그런 순간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작년에는 꿈도 못 꿨던 하프마라톤을 뛸 수 있게 되었고, 언젠가 풀마라톤도 뛸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즐기면서 꾸준히 하다 보면 뭔가가 쌓이긴 하는 것 같다. 아마 나는 대단한 성취는 할 수 없는 사람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그럭저럭 즐겁게 살 수는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내 주변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오늘 받았던 이 응원을 두고두고 돌려줘야지,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오늘의 나에게도 한 마디 건넨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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