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이 Oct 27. 2024

그래서 나는 발리로 떠나기로 했다

[프롤로그] 내가 발리로 도망친 이유



저, 회사를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2024년 봄, 나는 휴직을 결정했다. 사실 고민한 지는 꽤 되었다. 작년 연말부터 사내상담소와 정신과를 다니면서 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심이 서지 않아서 몇 달을 질질 끌었다. 내 일을 나눠가질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못하겠다, 잠깐 쉬어야 할 것 같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못하겠다는 말은 내가 늘 어려워하는 말이다. 결국 턱끝까지 올라온 말에 질식할 지경이 되어서야 토해낼 수 있었다. 저 더 이상 못하겠어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휴직 기간을 어떻게 보낼거냐고 주변에서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글쎄요, 아무 계획이 없어요. 그냥... 그냥 쉬고 싶어요. 그건 내 진심이었다. 지금껏 내게는 해야 할 일이 항상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번 휴직 동안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 굴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서 나에게 온전한 휴식을 주고 싶었다.


입사 만 6년을 맞이한 7년 차 직장인, 대리 2년 차. 이제는 부서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기.  그런데 나는 그 6년 동안 탄탄하게 역량을 쌓아오기는커녕, 오히려 나라는 자아조차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항상 바쁘게 얼렁뚱땅 눈앞에 닥쳐오는 일들을 쳐내기 급급한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서 어느새 6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완전히 고갈되어, 누군가 툭 건들기만 해도 눈물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었다. 이건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몸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강한 확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아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나를 그렇게 방치할 순 없었다.


휴직을 하고 초반에는 갑자기 생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학창시절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서 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하고는 곧바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방학 때도 계절학기를 듣곤 했던 나에게 처음 제대로 주어진 쉼인 셈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것도 힘들었다.


음에는 그냥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녔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이에서는 으레 가벼운 근황과 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나는 바빴고, 번아웃이 왔고, 그래서 휴직을 했어. 잘 못 지내. 계속해서 내가 처한 상황을 되새기게 되는 대화들. 그 뒤에 따라붙는 공감과 위로마저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은 금세 찾아왔다. 나는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휴식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발리로 떠나기로 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힘들고 지친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곳이 발리였다. 6년 전, 입사 직전 가보았던 자유롭고 평화로운 지상낙원 같았던 그곳. 바다와 태양밤하늘의 별이 빛나던 그곳.


나는 언제든지 날짜를 바꿀 수 있는 비행기 티켓과 처음 3일 묵을 숙소만 덜렁 예약하고는 여행 준비를 끝냈다. 언제 돌아올지, 어떤 곳들에서 무엇을 경험할지는 오롯이 그 순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맡기기로 했다. 내가 정한 원칙은 단 하나였다. 풍부하게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


이제는 꿈결처럼 아득하지만, 기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 순간들을 엮어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