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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Apr 17. 2024

방콕의 송크란 축제에서 나눈 것

방콕 여행 후기 1



내 여행의 시작은 방콕이었다. 발리로 떠난다고 해놓고 뜬금없이 웬 방콕? 


원래 내가 휴직하고 려고 하던 곳은 발리였다. 그런데 내가 휴직했다는 말을 듣고, 친구가 갑자기 혹시 자기랑 방콕 갈 생각 없냐고 물어봤다. 마침 선거일을 껴서 연차를 쓰려던 참이었다고. 그래, 어차피 발리를 가려면 다른 곳을 경유해서 가는 게 낫고, 앞으로 한동안 혼자서만 지낼텐데 그전에 친구와 여행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게 극단적 P들의 급 방콕행이 결정되었다.


4월이 방콕의 가장 더운 시기라는데, 급하게 일주일 전에 계획한 여행답게 아무 생각 없이 덜컥 왔다가 37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내가 떠나온 한국.. 피크닉 가기 딱 좋은 날씨겠지..? 역시 계획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내가 여행 가는 날이 태국의 최대 명절인 ‘송크란’과 겹치게 되었다. 송크란은 태국의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로 우리나라의 설과 비슷한 것 같았다. 이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물총을 쏘며 즐기고 논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2박 묵을 숙소를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 불리는 ‘카오산 로드’ 근처에 잡았다. 이 역시 두고두고 땅을 치고 후회할 뻔한 것 중 하나인데, 나는 보통 여유롭고 한적하게 그 지역 문화를 즐기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정말 카오산 로드, 시끄러워도 너!!! 무!!!! 시끄럽다. 시끄러울 줄 알고 일부러 후기 찾아보면서 완전 메인거리에서는 좀 떨어진 곳으로 잡았는데, 나는 내가 머무는 기간이 송크란 축제와 겹친다는 걸 간과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시끄러운 노랫소리와 물총 맞는 꺅꺅 소리에 도무지 숙소에서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원래도 번화한 곳이니만큼 축제와 겹쳐서 더욱 사람이 많았고 어딜 가나 정신 사나웠다. 그래서 원래 원하던 유유자적한 여행은 포기하고, 나도 그냥 피곤에 쩌들 때까지 놀다가 곯아떨어지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소 기빨리긴 해도 송크란 축제에 참여하게 된 것은 참 인상 깊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남녀노소 국적불문하고 물총을 들고 있다면 누구나 이 축제를 즐길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이다. 잠깐 눈이 마주치면, 바로 물총을 겨누고 쏘기 시작한다. 설령 그것이 도로 위라 하더라도. 택시에 탄 승객과 오토바이 뒤에 탄 승객이 서로 물총을 쏴재끼는 것을 보고 지금 이 광경이 송크란 축제의 정체성이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원체 만만하게 생긴 탓인지 여기서도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었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물총에 맞으면 리액션을 잘해줘서 더 그런 듯하다. 특히 태국 꼬맹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그 친구들이 물을 쏠까 말까 큰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이얏!” 하면서 이니시에이팅을 걸어주기도 했다. 그러면 그 친구들은 정말 끈질기게 나를 추격해서 결국 내가 두 손을 들고 항복할 때까지 쫓아왔다. 몇 번 호되게 당하고는 다시는 잼민이를 건들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또 그 기대에 찬 눈망울과 물총을 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물총을 꺼내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짓궂은 집단은 한국인 남자들이었다. 역시 해외에서는 같은 한국인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더니!!(물론 그들의 물총을 조심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는 생각보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을 마주하게 되면 반가워하며 “코리안???”하고는 오히려 더 쏘아대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한국인을 만나면 꼭 쏴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녔다. 좀 의아했던 것은 여행 동안 나는 한국인들을 얼굴만 봐도 알아보겠던데, 정작 나는 한국인으로 안 보였나 보다. 방콕에서 지내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고, 태국인이냐고 물어봤다. 그들은 내가 진성 한국인 길치라는 것을 못 알아본 거다. 저 7년째 살고 있는 송도에서도 길 못 찾는 사람인데요…ㅠ 너무 현지인처럼 다녔나 싶다.


송크란 축제에서는 뺨에 화이트 머드를 발라주는 장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피부에 뭐 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이 많았지만, 나는 누가 내 얼굴에 머드를 발라주는 게 좋았다. 무턱대고 바르는 게 아니라 먼저 눈짓으로 의사를 물어보고, 내가 기꺼이 얼굴을 갖다 대면 조심스레 스윽 볼에 발라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얼굴을 내어주고 나면 상대방의 밝은 미소와 함께 “Thank you”라는 인사가 뒤따랐다. 물총도 머드도 송크란에서 새해 복을 빌어주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럼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부드러운 눈빛과 손길에 서로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에, 그 행위가 흡사 숭고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방콕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정신없고 번잡하고 더워 죽을 거 같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한없이 여유롭고 평온한. 또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운전하는 사람들이 절대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콕은 정말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시이고, 송크란 축제와 겹쳐서 내가 머무는 곳까지는 원래면 10분 걸릴 거리도 1시간 걸리기 일쑤라 택시를 부르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도중에 차를 세우거나 불법유턴(한국 기준에서)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님들은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성격 급한 나였으면 이미 수 차례 빵빵 거렸을 텐데. 그 여유롭고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나는 괜히 나의 성급함을 경건한 마음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과연 날을 잘 잡은 것인지, 못 잡은 것인지. 가려고 찾아보았던 가게들이 죄다 명절이라고 문을 닫고, 이동이 힘들어서 카오산 로드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되돌아보았을 때 지금 이 시기에 방콕 여행을 온 것이 행운이었다 싶은 것은, 서로 물과 머드와 미소를 나눴던 기억이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불지옥 경험은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할 것 같지만…!ㅎ)


아무튼, 여러 가지 생각과 추억을 안겨준 방콕 여행. 이제 남은 생각거리들을 가지고 나는 발리로 간다. 안녕 방콕!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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