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
두 팔 끝 가지가지 가냘픈 오월의 꽃을 피워낸 채 미동도 없던 고목(孤木)
그 말이 무색할 만큼 향기는 야비하게 달큼했는지
날아든 날벌레에게 갉아먹혔나
꽃잎은 송송히 찢어발겨져 있다
그날 동녘에서 불어오던 그 사늘간질한 입김은
구멍 난 연분홍빛 날개를 출렁이는 공기 위로 여리여리 띄우더니
터질 듯 익어 봉긋한 하얀 뺨을 발그스름하게 물들여 떨어뜨리고는
파릇파릇한 애간장을 바싹 태워 바스러뜨린다
만추(晩秋)는 님을 그리는 마음의 절정
그래서 단풍(丹楓)의 단은 단심(丹心)의 단이고
단풍의 풍(楓)은 나무와 당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