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를 찍어보자는 그 말
"우리 세계 일주 여행 갈까?"
2024년 2월, 남편은 나에게 말을 꺼냈다. 갑자기, 뜬금없이, 난데없이 꺼내는 그 말에 대한 나의 인식은 느렸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기에 관련 준비로 분주했던 나는 어리둥절했다.
"가게 곧 정리될 거 같아서. 그럼 일 년 정도 시간 생기는 데 그냥 보내기 아깝잖아."
그렇게 말하는 남편은 설레 보였다. 그는 자신의 필드에서 십여 년을 근속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자신은 성실하지 않다고 코웃음을 치지만 날 때부터 새겨져 있는 일종의 Birth Mark인 '모범 DNA'가 그를 하루 12시간을 근무하고, 주말도 없이 일을 하면서도 십여 년을 버티게 했다. 그런 그가 몇 해 전부터 지나가는 말처럼 '나 하던 일 좀 쉬고 싶다'라던가 남들은 잘 된다고 부러워하던 업장을 '팔고 싶다'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가 하는 일이 계속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했다. 조금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호머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직업이라는 건 형편없이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니까.
하지만 일 년 전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아버님께서 소천하시고 난 후 남편은 번아웃이 제대로 온 것 같았다. 그저 가볍게 그의 말을 듣고 넘기기에는 조금 위태로운. 그래서 그가 가게를 팔고 싶다고 다시 한번 더 말했을 때 나는 '정리하고 좀 쉬어.'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었다. 속에 담아두는 것을 잘하고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잘 내뱉지 않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그 후엔 뭐가 진행은 되는지 알 수 없었고,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그날 저녁 우리에게 왔다.
"올해 당장? 갑자기?"
처음부터 흔쾌히 "응, 그러자."하고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나도 소위 말하는 계획이라는 게 있었으니 쉽게 쪼르르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는 내 마음을 관통하는 말을 했다.
"우리 결혼하고 나서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잖아. 마흔 되면 하던 일 내려놓고 일 년 정도 삶의 전환기를 가져보자고. 여행도 가고 하면서. 그거, 올해가 바로 그 해인 것 같아. 생각해봐."
맞다. 우리는 그런 말을 했었다. 한 번도 잊은 적은 없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던 우리는 그 여행을 끝내는 아쉬움에 서로에게 약속했었다. '우리 나이 마흔 살이 되면 삶에 쉼표를 찍고 쉬면서 여행을 많이 해보자'라고. 그리고 늘 때로는 내가, 때로는 남편이 '우리 마흔 되면 세계 일주 가기로 한 거 언제 가지?'라고 서로에게 상기시켜주곤 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업(UP)"의 오프닝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와 그의 짝꿍 할머니의 일대기가 잔잔히 흘러나온다. 그들은 결혼 후 뱃속에서 아이를 잃고, 그 우울함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기 위해 언젠가 '파라다이스 폭포'로 가자는 목표를 가지고 그 믿음으로 서로의 삶을 지탱해 나가는 모습이 나온다. 딱 그거였다. '마흔 살의 휴가'는 우리에겐 '파라다이스 폭포'였다. 어쩌면 애니메이션 속 두 사람이 결국 함께는 가지 못했던 것처럼, 꿈꾸지만 어쩌면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도 꼭 붙잡고 걸어가는 우리의 몽글몽글한 '로망'이었다.
한 살 차이가 나는 우리 부부 중 누구의 마흔 살에 떠날지 기약도 없던 그 삶의 쉼표는 남편의 나이 마흔에 찾아왔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바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휴직을 해야 한다는 걸 학교에 알려야 하기도 했고, 우리 부부에게는 학령기 아동이 두 명이나 있었다. 원래 처음 우리의 계획처럼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까도 생각을 했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학교에 근무하니 학교 일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세계 일주를 가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학교를 못 다니게 되니 유급할 우려가 있었다. '세계 일주를 통해 배우는 것이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더 많다'는 속세의 명언도 지극히 현실적인 한국의 부모에게는 쉽게 실행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세계 일주로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한 나라에 정착하여 학교를 다니면서 여행도 함께하는 소위 '일 년 살기'를 알아봤다. 호주, 미국, 캐나다, 가까이는 말레이시아 등을 떠올리며 서치 했고 그중 우리는 캐나다로 가기로 했다.
"나도 이 참에 공부를 좀 하면 아이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우리 미국이랑 남미 여행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설레는 남편의 눈동자가 정말 오랜만에 나의 눈에 들어왔다. 캐나다는 우리에게 좋은 선택지였다. 아름다운 자연과 총기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그러면서도 미국이나 남미 대륙과 가까이 있어 언제나 가고 싶어 했던 그곳을 가볼 수 있겠다는 생각. 아이들의 학업도 지속하면서 우리 부부의 꿈이었던 세계 여행도 반토막이라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더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모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 되었을 때, 우리는 그렇게 캐내다 행 티켓을 예매했다.
편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