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로 떠나던 날 당신이 건넸던 약 더미들
누군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몸에 흉터가 생기는 거라고 말할 거다.
상처는 늘 생채기가 나 피가 흐르고 물이 닿을 때마다 시린 걸 견뎌야 하며
때론 그마저도 덧나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아문다.
심지어 이토록 과정이 쓰리고 괴로운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처들은 아주 미세한 갈색으로 흉터가 되어 가만 보고 있자면 그 당시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좋은 기억은 드물고 아픈 기억이 회상되는 게 흔했다.
물론 조심성이 없어 자주 다치는 거에 비해 약을 꾸준히 바르는 성격이 못 되는 것도 한몫한다.
몇 달간의 타지살이는 초반부터 상처가 생길 일이 수도 없었고
그 상처들은 물이나 옷깃에 닿을 때면 한참을 쓰라리며 아물기가 더뎠다.
그리고 쓰린 그 순간 당신이 떠올랐다.
거의 아문 미세한 상처에까지 밤이며 낮이며 약을 바르는 나를 발견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미 괜찮은 상처를 보고도 모른 채 넘어갈 수 없었다.
누가 챙겨주지 않는 이상 먹지 않게 됐던 계절 과일처럼
어쩌면 당신이 챙겨준 이 연고는 알맞은 계절 누군가 내어주는 과일 같은 거였을까
다치고 연고를 바르고 상처가 아물어 옅어지는 이 과정은 이제 내게 좋은 기억이 될까
돌아가면 당신에게 이야기해야겠다.
당신 몸 곳곳에 있던 흉터를 알아주고 싶다고
그 흉터가 옅어지기까지 겪은 아픔과 삶을 자꾸만 안아주고 싶다고
미어지고 때론 도려져 피멍이 들었을 마음까지도 사랑하고 싶다고
그리고 당신도 흉터로 남은 내 상처들을 사랑해 줄 수 있겠냐고
어느 순간부터 몸에 생긴 상처들을 보며 당시가 아닌 당신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