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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May 24. 2024

순례길에서 놓치면 안 될 도네이션 바 2곳

순례길의 오아시스, 도네이션 바를 아시나요?

이건 분명 오아시스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정말 재밌는 컨셉인 도네이션 바(Donation Bar)라는 걸 만날 수 있다. 도네이션 바는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소정의 기부를 하는 자율적인 바이다. 푸드 트럭처럼 준비된 곳도 있고, 내가 들린 곳처럼 아예 지정된 공간을 만들어 상시 운영하는 곳들도 있다. 1유로를 내던 20유로를 내던 본인의 상황에 맞게, 본인이 먹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오는 곳. 세상 어디에도 없는 컨셉이라 정말 신기하고 귀여울 뿐만 아니라 배도 부를 수 있는 든든한 도네이션 바. 힘들게 걷다 이런 곳을 만나면 어찌나 행복하고 고마운지 사막의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친언니가 첫 순례길을 걸은 10년 전만 해도 코로나라는 건 뭐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람들도 더 순수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는 크고 작은 도네이션바를 참 많이 만났다고 한다. 대부분은 간이 트럭들이었다고 하는데 작은 물, 주스, 과일들과 빵들을 원하는 만큼 먹거나 조금 챙겨가며 몇 유로씩의 자율적인 기부를 하는게 재밌었다고 한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길 위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그 기쁨에 산티아고 순례길 하루가 참 특별해지는 순간들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언니를 보며 나도 너무 기대했었지. 그런데 실제로 내가 걸은 2023년 9월-10월에는 이런 도네이션 바를 찾아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마도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전체적인 순례길의 분위기가 다 바뀐 듯하다.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순례자들과 나누는 느낌으로 준비하시는 도네이션 바였을 텐데 선량한 마음으로 준비하시던 분들이 접으시는데 다 이유가 있겠지 싶어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도 순례길 어딘가에는 도네이션 바가 존재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간이 트럭이 아닌 정말 지정된 장소에 있는 큰 규모의 도네이션바를 두 군데나 찾을 수 있었고, 행복 그 이상을 느꼈다. 31일간 순례길을 걷다가 정말 여기는 대박이다라고 느낀 이 두 군데를 미래의 순례자님들도 잊지 말고 꼭 경험하시길 바라며 공유해 본다.


순례길 22일 차 아스토르가 가는 날에 만난 La casa de los Dioses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라 카사 데 로스 디오세스는 우리 언니가 순례길을 걸었을 때에도 이미 있었던 곳으로 언니가 나와 함께 꼭 같이 들리고 싶어 했던 도네이션 바이다. 세요가 하트모양인 걸로 나름 유명하다. 나도 손꼽아 기다렸던 곳이었는데 웃기게도 여기가 어딘지는 크게 생각 안하고 20일을 넘게 걸었다지. 걷다가 언니가 “저기야! 저기! 내가 말했던 도네이션 바!”라고 알려줘서 다행히 안 놓치고 들어갔다.

 여기는 지금 생각해도 꿈을 꾼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하고 풍요로웠던 곳이다. 엄청나게 다양한 음식들과 과일들, 음료들 정말 가짓수가 너무 많아 하나씩 다 맛도 못본다. 수박 또한 맛있게 먹으라고 시원하게 보관해 둔걸 그때그때 맞춰 잘라 내놓으시고, 운영하시는 젊은 부부는 사람들이 부담 안되게 부엌에서 또는 마당에서 멀찌감치 바에 필요한 준비 작업들을 하신다. 중간중간 향도 피우시고, 음식들 부족한거 없는지 확인하시며 순례자들이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게 도와주신다.

 나는 이곳에서 세상에서 지금까지 먹은 수박 중 가장 맛있는 수박을 먹었다. 해가 쨍쨍한 날씨 덕에 지쳐 있었는데 이곳에 도착한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난 그늘에 앉아 수박을 먹고, 함께 걸은 J 씨는 기타를 집어 들고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리에 남아있다. 평화 그 자체. 나랑 꼭 같이 와보고 싶었다던 언니는 자신이 걸었을 때보다 더 커지고 음식도 많아졌다며 아주 신나했는데 이런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납작 복숭아랑 치즈 슬라이스와 초콜렛 한 조각을 집어먹으며 잠시나마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한 이 분위기를 실컷 즐겼다 갔다.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많이 마련해 두셨고, 마실 수 있는 음료들에 하다못해 우유만 해도 소이밀크, 스킴밀크 등 종류별로 가져다 두셨을 정도로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 느낌의 도네이션 바라 강력 추천한다. 아스토르가 가는 날에 작은 언덕들을 위아래로 오르다가 어느 순간 뻥 뚫린 곳에서 직선으로 쭉 걸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뜬금없이 짠하고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바인가 보다 하고 휙 지나가기도 쉬워 꼭 지도에 찍어놓고 시간을 내어 들려가시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실제로 같이 자주 걸은 일행 H양은 이 날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는데 여기가 도네이션 바인지 모르고 휑 지나가버렸단다. 단지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도네이션 바가 아니라 마음도 편해지고, 굉장히 너그러운 사람들에게 인류애를 충전해 가는 그런 느낌이라 그 따뜻함에 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 맛있었던 수박, 바에는 씨리얼과 우유, 커피와 차도 마실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La casa de los Dioses  
La Majada de Ventura, n 1, 24710 San Justo de la Vega, León, 스페인


순례길 24일 차 사리아 가는 날에 만난 Terra de Luz
겉에서 보면 모르고 지나가기 딱 좋은 테라 데 루즈 도네이션 바

 

 테라 데 루즈는 골목들 사이 안쪽에 자리 잡은 도네이션 바라 정말 지나치기 쉽다. 문들이 열려있지만 꼭 남의 집 마당 내지는 가게로 들어가는 분위기라 도네이션 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나도 카페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정말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이곳이 도네이션 바인지 미리 알고 있다면 100% 꼭 들렸을 곳이다. 일단 히피 분위기가 물씬한 누군가의 아지트 같은 바이브가 풍기는 곳이다. 예술적인 분위기라고 할까? 음식 갖춤은 내가 위에 언급한  라 카사 데 로스 디오세스를 따라갈 수는 없는 건 솔직한 사실이다. 그래도 직접 키운 것 같은 과일들과 견과류, 간단한 빵과 잼, 주스가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운영자처럼 보이는 분이 돌아다니시면서 ‘커피 마실사람?’하며 따로 주문도 받으신다. 나는 따로 시키진 않았지만 라떼나 코르타도 등 간단한 건 직접 만들어다 가져다 주신다고 한다.

 여기 테라 데 루즈가 재밌는 건 공간이다. 약간 헛간 느낌의 장소인데 분리를 잘해놔서 요가나 스트레칭이나 명상 등을 하는 장소도 있고, 가방에 달 순례자 조개를 직접 꾸미는 공간도 있는 등 자유롭게 참여할 액티비티들이 몇 개 있어 신선했다. 이곳에서는 어느 정도 머물며 다른 순례자들과 수다도 떨고, 음식도 먹고, 몸도 풀고 하는 분위기다. ENFP 스타일의 도네이션 바라고 할까. 곳곳에 젊은 무리들이 수다를 떨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곳곳에 있는 돌들도 하나같이 알록달록한 페인트들로 예쁜 그림과 글들로 꾸며져 있고, 손으로 딴 허브들을 담아갈 수도 있게 봉투까지 있어서 보는 재미, 머무는 재미가 있는 곳이라 추천한다.


자신의 조개를 만드는 공간, 유기농 허브차를 원하는 조합으로 만들어 담아갈 수 있는 공간


Terra de Luz
27627 Samos, Lugo, 스페인


도네이션 바에서도 예의는 꼭 지키자

 도네이션 바에서는 한숨 쉬어가며 음식과 음료도 섭취하고 필요하다면 가는 길에 먹을 간단한 삶은 계란이나 바나나 등을 챙겨갈 수도 있다. 그러니 선한 마음으로 순례자들을 위해 공간을 마련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운영자 분들을 위해 소정의 도네이션은 하는걸 꼭 잊지 말자. 알베르게나 식당의 가격만 고려해 보아도 코로나 이후로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을 체감하기에 1-2유로는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나는 둘 다 5유로를 내고 나왔다. 물론 절대 내가 많이 냈다는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 내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순례길의 오아시스 같은 몇 개 없는 좋은 도네이션 바를 이용할 수 있는 감사함의 표시는 꼭 하시길 바란다는 뜻이다. 그래야 이런 좋은 곳들이 다음에 우리가 순례길을 다시 걷게 될 때까지 계속 남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언니가 나를 본인이 9년 전에 갔었던 도네이션 바로 데려가 함께 즐겼듯이 말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미래의 순례길에서 이 행복한 공간들을 만나시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평온한 분위기를 마음껏 즐긴신 뒤 좋은 기억을 마음에 담아 오셨으면 좋겠다. 나는 도네이션 바를 경험하며 사람들의 선함에 다시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열심히 걷느라 지친 우리에게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와 “화이팅!”이라 소리치며 음식을 내밀고, 힘내라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는 나만의 치어리더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순례길의 도네이션 바. 이렇게 재밌고 독특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건 오직 우리가 순례자이기에 가능한 것이니 놓치지 말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 순간을 즐기시길 바란다. 묵묵히 매일 긴 거리를 걷는 우리 순례자만을 위한 깜짝 선물이니까 말이다.


쉬어가기에 너무 예뻤던 의자,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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