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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May 28. 2024

산티아고 순례길 전구간 동키서비스 이용한 후기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긴 순례길을 걷는게 두려운 모든 사람들에게

동키서비스? 가방 운반 서비스? 하코 서비스?
가방을 보내는 봉투, 모든 알베르게나 호텔의 입구에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곳이 다른 분들의 후기를 읽어 보는 거였다. 어떤 브랜드의 신발, 가방, 준비물은 어땠는지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길을 걷는게 어땠는지 등 궁금한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싶어 했고, 확실하게 하고 싶었던 부분은 짐을 운반하는 서비스에 대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정보가 많지 않았다. 단발적인 사용에 대한 후기는 많지만 지속적으로 이용하신 분들의 후기가 없었다는 것.

 한국인들은 흔히 동키 서비스라고 부르는, 순례길 구간에서 구간으로 하루 단위로 내 짐을 옮겨주는 서비스는 스페인에서는 하코트랜스(Jacotrans)라고 부르는데 엄연히 따지면 가방을 보내주는 업체 중 한 업체의 이름이다. 대표적으로 하코트랜스와 NCS 두 업체가 유명하고 어느 알베르게나 호텔에서든 봉투가 상시 준비되어 있기에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NCS는 가방이 잘못 배달되거나 잃어버리는 등의 사건사고가 자자하다고 소문이 나있어서 모두들 가능한 하코트랜스를 이용한다. 혹시나 하코트랜스가 자리가 없어서 예약을 못할 경우가 생기는데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NCS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내가 다녀온 2023년 9월~10월 사이의 짐 운반 서비스는 한 회당 6유로, 한화 8700원이었고, 사람들이 많아지는 100km 남긴 사리아에서부터는 경쟁 업체들이 많아져 4유로로 가격이 살짝 떨어진다.


 나는 가방 다 메고 열심히 걸을 텐데 가방 배송 서비스가 왜 궁금하냐고?

 그래.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가방 배송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거참 엄살이네, 아니 가방을 보낼 거면 왜 걸어?’ 이렇게 생각을 한 대표적인 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10년 전에 순례길을 다녀온 언니도 내가 ”첫날 피레네가 너무 힘들어서 가방을 많이들 보내고 가볍게 걷는다던데? “라고 하니 “그건 치팅이야. 다 메고 걸어야지.”라고 대답을 했을 정도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정석은 내 어깨에 한가득 죄의 무게를 느끼며 한발 한발 디디는데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철없이 순례길을 검색할 때는 나 또한 이에 동의했지.


힘들어야 산티아고다, 그 무게를 견뎌내는 자가 진정한 순례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례길을 걷는 31일 동안 단 한 번도 안 빼고 전구간 하코트랜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아예 처음부터 전 구간을 이용할 거라고 계획을 세워서 간 거다. 이유는 하나. 이미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예 이번 말고 다 나은 다음에 가는게 낫지 않겠어? 의미가 퇴색되잖아 “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미 비행기에 기차에 숙소 등 예약을 해둔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취소는 거진 불가능하다. 게다가 예약을 다 바꿀 수 있다고 쳐도 몇 달을 미룬다 하면 계절 또한 바뀌고 순례길 날씨도, 내가 준비하는 짐들도 바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꼭 39살에 걷고 싶었다. 마흔이 돼서 찾아오기보다 순례길을 걸으며 내 삼십 대를 놓아주고 싶었고, 조금은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고 비워진 새로운 내가 되어 40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나는 산티아고로 향했다.


수학을 해보기로 했다 : 27만 원으로 내가 다리를 고칠 수 있을까?

 처음에 나도 무조건 가방을 메고 끝까지 간다 파였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산티아고 순례길 몇 달 전부터 예행연습이랍시고 집에서 7-8kg 정도의 가방을 메고 매일 두 시간씩 걷다가 무릎이 나갔다. 약을 바르고 파스를 붙여도 그대로고, 아예 한 달을 쉬어보았지만 낫지 않았던 무릎. 걷지 않을 때조차 무릎이 찌릿찌릿하고 멍든 곳을 누가 누르는 듯한 느낌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하코 트랜스를 알아보았고 간단한 계산을 해보게 되었다.


6유로(8700원) x 31일 = 26만 9700원


 내가 가방을 매일 보내도 얼추 27만 원이란 말이지. 근데 말이야… 내가 이미 다친 다리를 가지고 10kg가 넘는 가방을 메고 순례길을 완주한 다음에 고생하고 더 망가진 다리를 27만 원으로 고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지. 이게 다리를 세게 다쳐보니까 알겠더라. 다리 부상은 완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걸 말이야. 운동선수도 아닌 일반인인 내가 7kg 정도 가방을 메고 하루 겨우 2시간씩 몇 달 걸었다고 무릎이 나간 것도 우습고 속상하지만, 그 이후에 쉬어도 낫지 않는게 정말 어이없고 답이 안보였다. 한 번 다친 다리는 평생 조심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는 걸 몸으로 깨우치니 다리는 후치료보다는 다치기 전 선예방을 하는 방법만이 살길임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순례길에서 가방을 메고는 걷되, 매일 4kg, 무거운 날도 5kg 미만으로 배낭을 꾸리기로 하고, 그 이상의 무게들은 보조가방에 실어 매일 보냈다. 내 다리를 일단 보호하며 걸어야지, 다리를 혹사시켜 산티아고에 도착한들 그 여정이 즐겁고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결과적으로 매우 다행이고 현명한 결정이었다.


보낼 가방을 어떻게 준비하지?
나와 함께 걸어야 할 짐, 다음 숙소로 보낼 짐
만오천원에 구매한 접이식 보조가방, 나중에는 내 짐과 언니 짐까지 함께 넣어 잘 사용했다


 나는 첫날 피레네 산맥을 지나는 날만 제외하고는 내 등산배낭을 계속 메고 걷기로 했다. 그럼 배낭 안에 있던 무거운 짐들을 덜어 하코트랜스를 보낼 다른 가방이 하나 더 필요하게 되는데 그래서 내 배낭이 다 들어갈 사이즈의 접이식 보스턴 보조가방을 사갔지. 나일론으로 얇긴 하지만 31일이나 내 짐들을 보내는 데는 문제없었다. 이 가방은 나중에 언니가 왔을 때 언니 짐까지 조금 덜어 보내고 아주 유용했다. 얇은 재질이라 처음 며칠 써보고 이런… 이거 금방 찢어지겠다 싶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너무 다행이었다. 공항에서는 내 등산배낭을 이 보조 보스턴백 안에 넣어 수화물로 부쳤다. 끝까지 열일한 알리바바에서 산 보조가방 아주 고맙다.


내가 걷는 동안 지고 간 가방은 일단 가방무게를 포함해 대략 4kg 정도였다.

날씨가 좋으나 흐리나 어느정도의 무게가 들어간 가방은 메고 걷기


 가방에 넣고 걸은 물건들 : 배낭( 가방 무게만 이미 근 2kg이다)
다이어리와 여권, 충전기들과 해드랜턴, 지갑과 휴지, 선크림, 선글라스, 장갑과 얼굴 가리개, 혹시 날씨가 변덕스러울까 늘 넣어두는 우비와 스패츠, 커버팬츠, 경량패딩과 바람막이, 간단한 간식과 물. 핸드폰과 이어폰, 모자, 장갑, 해가리게. 갈아 신을 슬리퍼와 비상약들 그리고 폴

숙소에서 숙소로 구간마다 미리 보내두는 물건 : 보조 가방
침낭, 세면도구, 화장품, 옷( 양말들, 바지 2벌, 티 3벌, 원피스, 뒤로 메는 보조가방, 스포츠브라, 속옷 등) 기념품 산 것들, 마사지 크림 등 부피 큰 약들


 다음 숙소로 보낼게 의외로 없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부피도 크고 무게도 꽤 나간다. 내가 메고 갈 가방에서 무게가 절반이상 줄어든다는 건 하늘과 땅 차이기에 걷는데 정말 무리가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덜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보낼 별도의 가방과 여유가 있기 때문에 순례길을 걸으며 발견한 마음에 드는 기념품들을 양껏 살 수 있었다. 이게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긴 거리를 걷는게 두려운 모든 사람들에게

 순례길 후 내 다리 상태에 대해 말하자면 2023년 10월에 산티아고를 완주하고 런던을 거쳐 이탈리아에 돌아온 다음에 한동안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래, 가방을 가볍게 메고 다녔어도 물리치료를 받을 정도로 순례길은 어떤 형태로든 몸에 그 흔적을 남길 것이다. 한 달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면 발등 속의 뼈가 발등을 향해 쫙 열리는 듯한 정말 참신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새로운 고통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날 때 고통이 가장 심하고 걷기 시작하면 조금씩 사그라들어서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헷갈렸다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2024년 5월까지도 오른쪽 무릎과 발목이 운동을 할 때 뭔가 시리고 멍든 듯 한 울림이 있다. 너무 아파서 운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고, 30분 정도 트레이드밀에서 걸은 날 저녁에는 무릎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정도랄까. 그래서 난 순례길에서 가방을 매일 보낸 거에 한치의 후회도 없다. 내가 배낭 전체를 다 지고 못 걸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가방을 보내며 다리 건강을 사수했기에 그나마 이 정도의 부상에 그친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내 선택에 만족한다.


 이해한다. 나도 남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 이거 반칙 아니야?”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을 거다. 내가 그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순례길은 정석이라는게 없다. 걷는다는게 중요한 거지 가방이 가볍다고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걷는 것도 아니고, 누구 가방이 작네, 크네 판단해 가며 걷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의미가 있다면 되는게 순례길이니까 혹시나 다리가 아픈 사람들이나, 연세가 있어서 무게가 부담스러운 모든 사람들이 가방 이동 서비스를 잘 이용하며 용기 내서 순례길을 계획하시고, 도전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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