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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Jun 05. 2024

순례길 숙소비만 200만 원 나온 이야기 (1)

너무 어리지도, 많지도 않은 39살 여자의 순례길 숙소 선택

39살 여자의 순례길 숙소 선택
과연 내가 도미토리에서 잘 쉴 수 있을까?

 마흔을 앞두고 선택한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역시나 숙소였다. 내가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면 뭐 겁날게 있겠어. 당연히 도미토리를 쓰는 거고, 대부분은 공립 알베르게에서 지내며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가며 참 재밌었겠지. 그런데 나는 마흔을 앞둔 39살의 기혼자로서 참 생각이 많아지더라. 내가 과연 단체로 같이 침실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그런 상황에서 31일 간 피로를 충전해 가며 잘 걸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훌쩍 떠나기에 이미 해외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었고, 유럽에 정착한 지는 5년이 돼 가는, 꾀나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삶에 굳어졌던 것 같았다.


 일단 20대 말에서 30대 중반까지 해외에서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좋은 항공사 덕에 전 세계 비행을 다니며 호텔도 개인실만 쓰고, 숙소도 화장실이 딸린 개인방을 썼다. 우리는 극한 서비스직이지만 팀제로 운영하는 국내 항공사와는 달리 몇천 명의 크루가 매 비행 랜덤으로 정해지기에 늘 새로운 사람과 일회성으로 비행하는 것에 익숙했고, 손님이야 말해 뭐 해. 매번 수백 명의 처음 보는 손님과 한 번의 비행으로 만나 비행이 끝남과 동시에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깔끔하게 뒤돌아서 내 개인의 사생활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마음 쓸 일이 없었다. 내가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어떤 인간관계의 지속성 같은 게 없었단 말이지. 일을 같이하는 크루들도, 서비스를 해야 하는 손님들도 늘 바뀌는 단발성 만남이었기에 그날 하루 정말 최선을 다하고, 비행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관계라고 할까. 사람들을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참 즐겼던 직업이지만 그런 면에서 승무원은 다양한 사람은 많이 만나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기에는 아주 특별하지 않으면 힘든, 의외로 외로운 직업이기도 했다.


 비행이라는 게 길 때는 14시간을 미주로 날아가는 날도 있어 체력도 소모되고, 서비스 직업이다 보니 사람들과 대화하며 나름 에너지도 많이 썼다. 그만큼 제대로 된 휴식은 다음 비행을 위해서도 필수이기에 쉬는 날에는 거의 남자친구 만나는 거 아니면 집에서 자고 휴식을 취하는 게 일상. 그런 생활을 5년 넘게 하니 개인시간이 참 중요해졌고, 따라서 내가 온전하게 쉴 수 있는 개인 공간에 대한 애착도 많이 생겼다. 그런 내가 순례길을 걷기로 했고, 공동생활을 피할 수 없는데 어쩌지? 승무원 생활 이후 유럽사람과 결혼을 하고 유럽에 정착하고는 더 내 집이란 개념, 나의 사생활이 철저히 보장되는 그 테두리가 중요해졌고 특히 유럽에선 모든 사람들이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니까 뭐 내가 유난이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런데 한국인과 비교해서는 내가 유난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더라고. 그래도 난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니니까, 내가 편한 방식으로 조금은 사생활이 보호되고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순례길 숙소들 위주로 고르기로 결정했다.


나이가 문제일까? 성별이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경험?

 내가 오십이 넘은 아줌마라면 조금 더 무던해지고, 불편함도 더 잘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쨌든 지금의 나는 참으로 애매한 마흔이 되기 전, 아직은 30대인 39살의 처자(?)이다. 젊은 아이들과 격 없이 막 어울리기에는 조금 나이가 많고, 아줌마 아저씨들이랑 술도 한잔 마셔가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또 어린 나이 서른아홉. 게다가 난 여자가 아닌가. 피곤하면 코도 골 수 있을 테고, 생얼에 땀나고 피곤한 일상을 남과 공유하는게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아 그렇다고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건 아니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결혼한 젊은 아줌마인데 그냥 내 나이가 참 다 내려놓고 다니기에는 정말 애매한, 적어도 철은 들었어야 하는 나이라는 거다. 게다가 오래된 외국생활로 나름 개인의 공간과 시간이 매우 중요한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정말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난 신랑이랑 평소에도 참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 마음 편하게 침대에 누워 통화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개인실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 200만 원이라는 숙소비를 결제하고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마음먹는다고 31일 모두 개인실 예약을 할 수 있을까?
개인실부터 여러명이 함께하는 도미토리까지 다양하게 경험했다


 9월 산티아고를 앞두고 모든 숙소의 예약을 끝낸 건 6월 중순. 한번 시동이 걸렸을 때 주르륵 하루에 4건이고, 5건이고 연달아 예약을 마쳤다. 원래 순례길 초반에 숙소 잡기 어려운 3일 정도만 미리 예약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걸어 다니며 본인의 몸상태를 고려해 당일 정착지와 숙소를 고른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냥 다 예약을 마치고 싶었다. 어차피 걷는 루트는 이미 정해놨고, 이왕이면 내 지친 몸을 뉘일 장소가 이미 정해져있는게 동기부여도 되고, 위로도 되지 않을까 싶어 예약이 불가능했던 한 곳을 빼놓고 전 숙소의 예약을 끝냈다. 이런 나를 보며 파워 J가 아닐까 생각하시겠지만 나의 MBTI는 엄청 충동성이 강한 ENFP 일시다. 뭐든 되겠지 하고 여유가 있을 법도 한 내 성격인데 이거 정말 나이가 들어가면서 불확실성이 주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게 불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을 할 때 픽업타임부터 리포팅, 비행시간, 랜딩시간 깨알같이 정해진 스케줄에서 오래 살아 틀이 있는게 이젠 더 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비행을 가도 정확히 내가 어느 호텔에 머문다는게 정해져 있었기에 아마도 같은 맥락으로 숙소를 다 정함으로 익숙한 패턴을 통해 안정감을 갖고 순례길을 시작하려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31일 전체를 다 개인실에서 묵은 것은 아니다. 총 31일 중 8일은 2인실에서부터 16인실까지 다양한 도미토리를 썼고 남은 23일은 개인실을 썼다. 가능한 센터에 있는 곳들로 선택을 했고, 내가 인터넷으로 검색과 예약이 가능한 곳들을 선택하다 보니 모든 숙소를 개인실로 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도미토리들 중 평점이 정말 높고, 모든 사람들이 칭찬이 자자한 곳들은 공유하는 숙소여도 경험해보고 싶어 큰 기대감을 안고 예약했다.


구글맵과 북킹닷컴의 환상의 콜라보
구글맵과 북킹닷컴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정말 세상 좋아졌다는게 우리 언니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10년 전에는 이런 것들이 활성화돼있지 않았었다. 나는 구글맵과 북킹닷컴을 정말 200프로 이용해 숙소들을 문제없이 예약했고 더 나아가 평점도 일일이 확인하고, 이왕이면 남들의 경험으로 확인된 나름 유명한 곳들을 예약했다. 이렇게 숙소를 예약하니 이젠 정말 내가 걷는 일만 남았구나 생각이 들면서 돌이킬 수 없이 무조건 갈 수밖에 없다는 쐐기가 박혔다. 그래도 정보가 없는 것보다 있는게 참 다행이었지. 조금이나마 내가 지낼 곳이 어떤 곳일지 조금의 사진들을 통해 가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놓였다. 나는 매일매일 걷는 것도 힘들 텐데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남보다 일찍 마을에 도착해야 하고, 줄을 서고 기다리는 그런 마음 졸이는 일로 긴장하고 걱정하는게 싫었던 것 같다. 정말 자신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상황에서 더 편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계획을 세운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고 즐겁게 순례길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그때 세웠던 순례길 숙소 전체를 예약한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걸으면서 같이 걷는 사람들도 어떻게 그걸 다 예약할 생각을 했냐고 부럽다고 할 정도였으니 순례길이 우리가 예전에 티비를 통해보던 아무 곳이나 다 열려있는 그런 순례길이 아니라는거, 숙소전쟁이 나는 구역도 있고, 없어서 택시 타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나라고 돈이 안 아까웠을까? 순례길을 시작하기도 전에 숙박비가 200만 원, 비행기와 기차, 버스 등등 50만 원, 이래저래 순례길을 위해 사모은 물건이 몇십만 원…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산티아고는 더 이상 로망과 열정만으로 갈 수가 없다는 걸. 의외로 돈이 많이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도 후회는 없다. 사립 도미토리에서 30일을 다 묵어도 얼추 100만 원은 나오기 때문에 난 100만 원을 더 주고 내 공간과 휴식을 보장받았기에 그만큼 잘 쉬고, 제대로 충전해서 늘 좋은 컨디션으로 아주 잘 걸었다. 만족도가 높아서 다시 간다 해도 개인실 중심으로 고를 것 같다. 이것에 따른 장점과 단점 또한 확실하니 다음번에는 개인실을 이용함에 따른 몇 가지의 장단점과 내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숙소와 도미토리, 나의 가장 비싼 숙소와 가장 저렴했던 숙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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