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2023년 8월 25일
누군가 그랬다
산티아고를 걷는 가방의 무게는 내 죄의 무게라고
그렇다면 나는 아주 죄가 많은 죄인 중의 죄인이구나. 벌써 10kg가 넘었고 이 무게는 내 핸드폰, 이어폰, 보조 충전기와 노트, 당일에 가지고 다닐 물과 음식 무게를 아직 합치지 않은 무게이다. 진짜 큰일이다.
조언에 따르면 가방의 무게는 내 몸무게의 10%를 안 넘는 게 좋다고 한다. 좋다는 말인 즉 이상적이고, 가장 효율적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50kg 대 중반인 나는 많아도 6kg를 넘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열과 성을 다하는 진정한 맥시멀리스트인 나에게 산티아고 가방 싸기는 시련이다. 여행을 갈 때도 챙겨 가는 게 원체 많은 사람이라 늘 수화물을 여유 있게 구매하는 편인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시작도 하기 전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지금' 변하라고 한다.
가기 전부터 시험에 든 것 같다.
대체 무엇을 넣은 거지?
남들은 가방을 아주 얄팍하니 잘만 만들던데 나는 남들과 다른 무엇을 더 넣었길래 이리 무거울까? 짐을 다 펼쳐놓고 하나하나 무게를 재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예행연습으로 인해 아팠던 무릎과 발목이 걱정인지라 나는 뭐라도 해서 줄여야 한다.
펼치고 보니 한가득인 내 물건들은 얼핏 보아 다 나름의 쓸모가 있어 보였다. 옷도 욕심 없이 티셔츠 두벌, 바지 두 벌이 끝이었고 심지어 잠옷도 포기했다. 다음날 입을 옷을 입고 잔다는 사람들의 후기도 꽤 봤기에 없으면 없는 대로 익숙해지겠지 싶어 과감히 포기한 거다. 다른 의류라고 한다면 양말 4켤 레에 양말 라이너 2개, 브라탑 2개에 속옷 2장이 전부. 아, 아침저녁으로 꾀나 춥다고 해 경량패딩, 경량잠바에 바람막이도 챙겼다. 보호용으로는 등산 스틱, 무릎과 발목 보호대, 모자와 얼굴 스카프, UV 장갑 정도가 다다.
중요한 사실은 이 중에서 매일 한 세트는 입고 출발 하니까 옷을 입고 무릎 발목보호대에 등산스틱도 하는 걸로 쳐서 얼추 1.3kg 정도는 전체 무게에서 빠지게 되어 그나마 9kg 남짓이 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내가 길을 걸으면서 마실 간단한 음식과 물 1리터 정도를 들고 시작한다면 다시 원점이 되는 무게다.
여자이고 싶으면 더 늘어나는 무게
이상한 곳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간 건 세면, 화장 도구였다. 무게가 1kg가 훨씬 넘었다. 긴 머리를 위한 샴푸와 린스를 챙기고, 넉넉한 용량의 선크림에 하루를 마무리할 때 깨끗이 씻어낼 클렌징 티슈와 클렌징 폼도 넣었다. 그리고 미니 드라이기도 넣었다. 나는 긴 머리를 젖은 상태로 두어본 적도 없고, 머리카락을 바짝 말리는 걸 좋아한다. 게다가 다른 분 팁으로는 빗길에 젖은 신발이나 옷이 덜 말랐을 때 정말 유용했다고 한다. 그래, 그리고 솔직히 화장 품도 좀 넣었다. 팩트와 작은 셰도우와 볼터치 정도? 지친 산티아고 중간중간에 대도시들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좀 사람같이 하고 몇 시간이나마 이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랄까. 이건 순전히 자기만족이다. 나는 연예를 한창 할 20대도 아니고 누구에게 이뻐 보일 필요도, 생각도 없는 곧 마흔 살인 결혼한 아줌마다. 그래서 아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이건 내가 즐겁기 위해서였다. 아악! 약간의 화장품...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러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다. 기본으로 없으면 안 될 배낭과 침낭, 우비의 무게만 벌써 거의 3kg (빈가방이 1.8kg, 침낭 0.8kg, 우비 0.25kg이다)이다.
정답이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 짐 싸기
순례길에 관심이 있고 나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블로그의 글과 유튜브의 비디오들을 보며 사람마다 참 다르구나 싶었다. 어떤 분은 미니 헤어드라이기를 반드시 가져가라고 하고, 어떤 분은 절대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 어떤 분은 우산을 아주 잘 썼다 하고 어떤 분은 그럴 바에 비 올 때 다리를 가려주는 스패츠를 꼭 가져가라 한다. 또 어떤 분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땅콩 마사지 볼을 가져가 너무 후회 없이 잘 썼다고 하니... 이렇게 남들에게 꿀템이었던, 꼭 가져가길 추천하는 것들을 하나 둘, 모으다 보면 그것들 만으로 가방의 반 이상도 더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로 한 것도 내 결정이고, 무엇을 가지고 갈지도 내 결정이다. 남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이해불가한 내 짐들이 나에게는 꼭 맞고 필요해 정말 가져오길 백번 잘했다 싶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걷기 전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확실히 가방을 재정비하긴 해야겠지만 그 길을 걷지 않은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빼놓고 가서 후회할까 봐 하는, 이 '혹시'하는 생각이 계속 나를 붙잡는다. 내가 정말 힘들다면 중간중간에 알베르게나 호스텔에서 기부도 하고 올 수 있으니 길 위에서 그 쓰임새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과연 내 가방을 최종에 몇 kg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조금은 불안한 마음에 짧은 한숨 혹 한번 세게 쉬어보고 일단 꺼내놓은 모든 물건을 주섬주섬 다시 담아 놓아 본다. 과연 마지막에는 이 불가능할 것 같은 가방 줄이기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지 어디 한 번 지켜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