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파리? 포르토? 혹시 런던은 어때?
2023년 8월 26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선 누구든지 유럽을 통해 들어오고, 유럽을 통해 나가야 한다. 왜냐? 다들 알듯이 우리가 걸을 길은 스페인, 즉 유럽에 있으니까. 시작점이 스페인과 국경에 있는 프랑스 생장에서고, 모두가 그 길을 프랑스길이라고 부르지만 첫날에 국경을 가로질러 바로 스페인으로 들어가고 그 끝 또한 스페인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끝난다. 그렇다면 가뜩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 기회를 놓칠 것인가.... 그럴 리 만무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목적이지만 최소 비행기로 10시간이 걸려 유럽까지 오는 김에 많은 사람들은 순례길 전후로 짧지만 유럽 여행을 한다.
As you wish, 원하는 대로 골라보세요
순례길을 시작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시작점인 생장삐에드뽀흐와 그나마 가까운 세 곳의 도시로 티켓을 끊는다. 프랑스의 파리, 스페인의 마 드리드 아니면 바르셀로나가 그 선택지이다. 어느 한 곳을 선택해도 한 번에 생장까지 도달하는 방법은 없고 나름의 기차와 버스 예약 신공을 부려 반나절은 긴장을 하고 차들을 갈아타고 와야만 순례길의 성지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그 유명한 도시들을 안 들여다볼 이유가 없지 않나! 기회다 기회! 게다가 한 번도 아닌 순례길 시작하기 전과 끝나고 나서, 두 차례나 새로운 곳을 볼 기회가 있다.
순례길 시작 전 : 파리, 마드리드 아니면 바르셀로나
당연히 비행기가 나를 내려 준 곳이니 둘러보기 적격인 도시들. 게다가 세 곳 모두 대도시로 누군가는 꿈꿀 법한 여행 진국인 나라의 유명 도시들이다.
나는 3개월 전에 고등학교 단짝 친구와 일주일간 파리여행을 했기에 파리는 패스. 또 바르셀로나는 2년 전에 신랑과 함께 다녀왔으니 패스. 마드리드도 비행할 때 자주 가봤고, 혼자 여행으로도 다녔던 도시지만 신랑과 함께 간 적은 없는 도시라 나는 마드리드로 선택했다. 3박 4일 동안 마드리드에서 뭘 먹고 뭘 볼지 리스트를 쭉 만들어 보았는데 이럴 때 전직 승무원의 레이오버 신공이 발휘되는 것 같다. 그동안 나도 보지 못했던 마드리드 투우 경기도 보기로 예약했다. 신랑이 한 번은 보고 싶다고 해서 예약했지만 개인적으로 동물이 죽는 걸 봐야 하는 건 싫다. 탐탁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론 스페인에서는 존중받는 전통의 일부분이라는 점도 이해는 한다.
순례길 끝낸 후 : 포르토와 리스본, 나는? 런던!
순례길은 지도에서 스페인의 왼쪽 끝에서 끝나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도 갈 수 있는 포르투갈의 포르토와 리스본을 묶어서 가는 분들이 절반은 되는 것 같다. 지리상 근접성을 무시할 수가 없기에 나라도 그리 선택할 것이다. 순례길을 끝내고 이곳들 아니면 다시 파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아웃할 도시로 돌아가 여행을 시작하는 분들도 많다.
나는 포르토를 그전에 여행으로 다녀왔는데 해산물도 정말 맛있고, 건물들도 예쁘고 평온한 곳이다. 순례길 절반 정도를 지나 레온에서 만날 우리 친언니도 첫 순례길을 끝내고 포르토와 리스본을 다녀왔고 우리 둘의 결론은 평온해도 너무 평온한 도시라는 것. 그래서 이왕 언니가 유럽으로 날아온 거 멋지게 산티아고 순례길 끝내고 복작복작한 런던으로 날아가기로 했다.
우리 둘 다 너무 좋아하는 런던을 같이 간지도 8-9년이 지났다(아빠 환갑 기념으로 가족 유럽여행을 갔을 때였다). 언니와 내가 2008년에 단 둘이 간 첫 유럽여행지도 런던이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뮤지컬들이 매일밤 몇십 개씩 쉬지 않고 공연되는 뮤지컬 천국. 선택은 자유니까 우리가 가장 즐길 수 있는 도시, 런던에서 새로운 추억들을 쌓기로 하고 티켓팅까지 마쳤다. 이 결심은 산티아고에서 런던행 직항이 있기에 가능했다. 게다가 저가항공사라 수화물을 각각 추가해서 편도가 인당 18만 원 정도로 조금 비싼 감은 있지만 수긍은 가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설레어도 될까
아직 순례길은 시작도 안 했는데 가기 전 마드리드, 끝낸 후 런던행까지 숙소와 공연들 예약을 하면서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기말고사 보기도 전에 끝나고 놀궁리하는 학생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끝나고 놀 생각에 엄청 신나긴 하는데 시험은 걱정되는 그런 느낌. 런던의 숙소와 공연 등 날짜가 딱 고정돼 있는 것들을 예약하고 나니 얼마나 긴 시간 내가 산티아고를 걸어야 되는지 더 실감이 되었다고나 할까. 9월 완전 초에 여정을 시작해서 런던에서 공연을 보는 건 10월 중순이다.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뀔 때 나는 시작하기 전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신 어떤 분이
분명한 것은 다녀오기 전의 나와 길을 끝낸 나는 절대 같을 수가 없다 하셨다.
나도 과연 그럴지, 알고 싶다.
이렇게 산티아고의 보너스와 같은 전후의 유럽여행이 나에게는 마드리드와 런던으로 정해졌다. 마드리드는 장기간 곁을 떠나 있을 우리 신랑과의 이별 전 여행이고 런던은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기념하고 언니와의 옛 추억을 되살리는 축하 여행이다. 여기면 어떠하고 저기면 어떠하리. 언제나 그렇듯 여 행은 장소보다는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훨씬 중요한 거고 그런 면에서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이 보너스 여행들이 행복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