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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May 10. 2024

순례길 후에 적어보는 가장 필요 없던 물건들

안 챙겨가도 되었을 순례길 아이템

 순례길에  잘 챙겨간 아이템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져간 걸 후회하는 아이템들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절대로 정답은 없으니 모든 것은 참고만 하셔서 본인에게 맞는 순례길 가방을 싸시는게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웃긴 것은 완벽에 완벽을 기해 준비한 모든 아이템들 중 내 상상만큼의 유용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아이들이 꼭 생긴 다는 것. 의외의 물건이 빛을 바라고, 필요를 장담했던 물건들이 오히려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혹시나 나와 비슷한 맥시멀리스트 성향의 분들이 순례길을 준비하신다면, 행여나 같은 아이템을 두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조금의 참고가 되시길 바라면서 아이템을 꼽아봤다.


다시 걸으면 빼고 갈거야 아이템
헤어 드라이기, 복대, 경량패딩, 스포츠브라, 근육통 크림
이것들을 두고 갔다면 짐가방도 꽤나 여유가 생겼을 것 같다


1. 미니 헤어드라이기

 미니 헤어드라이기는 나의 성향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의 날씨, 숙소 전반에 걸쳐 연관성이 있다. 나의 경우만 이야기하자면 일단 긴머리를 갖은 사람으로 머리를 감은 후 바짝 말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일단 가져가보고 생각해자해서 챙겼다. 그리고 남들의 후기를 많이 읽은 바로 장대비를 맞고 걷다가 신발이 젖으면 정말 답이 없다고 해서 신발 말리는 용도로도 너무 잘 썼다고 해서 챙겼음. 그런데 운이 좋게도 비를 3~4일 정도밖에 안 만났고 하루 종일 내리는 비보다는 왔다 안왔다 하는 비, 또는 부슬부슬 조용히 계속 내리는 비들을 만나 정말 신발 속까지 질척이게 젖은 적인 없어 신발을 말리는 용도로 헤어드라이어를 쓰진 못했다. 게다가 31일 중에 3분의 2가 더 넘는 23일 정도를 개인실에서 지냈기 때문에 웬만하면 헤어드라이어가 다 준비되어 있었던 것. 그래서 결론적으로 도미토리에서 묵을 때 2번인가 쓴 게 다였고, 그나마 소음이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사람들이 없을 때, 화장실에 혼자일 때 후다닥 쓰고 말았다.

 날씨, 본인이 묵는 숙소의 타입, 머리 길이 등 개인차가 정말 많이 나지만 다녀온 사람의 경험으론 그다지 없어도 살 것 같다는게 나의 의견이다.

 

2. 복대

 내가 승무원으로 비행을 하며 모로코, 사우스아프리카, 미국,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치안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을 참 많이 다녔으면서도 밖을 돌아다닐 때 복대를 해본 적이 없건만 산티아고에서는 잘 때도 노출이 되어있으니 (도미토리 묵을 경우) 혹시나 몰라 챙겨간게 복대다. 실제로 순례길에서 가끔씩 도난사고가 있다는데 다른 순례자들이 그러는게 아니라 외부인들이 순례자인 척 들어와서 벌이는 일들이 종종 있는 것. 실제로 우리 언니가 순례길을 걸을 때도 같이 걷는 사람이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에 그들의 가방을 뒤지는 외부인을 목격하고 놀란적도 있어서 나도 지레 겁먹고 챙겼는데 결국은 안쓰고 버리고 왔다.

 일단 대부분의 도미토리에는 열쇠를 걸 수 있는 개인 사물함들이 제공된다. 그리고 25유로 정도가 되는 사립에 묵게 되면 아예 문 자체에서 코드를 입력해야 하는 문이 있거나, 카드를 찍고 들어가야 하는 시스템으로 많이 바뀐 듯하다. 그러니 복대까지는 안챙겨가도 될 것 같다. 나도 다른건 다 가져가도 돼도 핸드폰이랑 여권은 사수해야지 싶어 배에 메고 자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핸드폰은 밤새 충전도 해야 되니 밖에 꺼내둘 수밖에 없다. 도난에 대해 약간의 긴장은 해야겠지만 걱정을 안고갈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3. 경량패딩

 나의 짐싸는 마음가짐은 뭐였다? “가져가서 버리더라도 후회 없이 챙겨가자!”. 그래서 넣은 것이 긴팔 경량패딩과 조끼 경량패딩. 이 두 가지는 아마 31일 걸으면서 두 번 정도 입은 것 같다. 산티아고 날씨가 정말 변덕이 심하긴 한데 9월 초에서 10월 초까지 걸은 나에게 정말 이거 겨울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추웠던 날은 이틀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당연히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뻥 뚫린 시골들을 지나니 저녁에 해가지고 바람이 불면 조금 썰렁해지는게 춥긴 하다. 하지만 몸이 떨릴 정도는 아닌데 31일을 걷다 보면 그중 며칠은 새벽에 길을 시작하기 좀 코끝이 시린 날도 있기 마련. 그럴때 두 번인가 아침에 경량패딩을 챙겨 입고 출발하는데 대부분 1시간도 안돼서 더워서 벗게 된다. 말인즉 단 한 번도 경량패딩을 입고 하루 종일 걸은 적은 없다는 것. 혹시 몰라 가방에 꼭 넣어두고 다니긴 했는데 정말 안썼다. 오히려 가벼운 나이키 바람막이 위에 등산용 재킷 하나 입고 걷다가 날이 더워지면 재킷을 벗어 가방에 넣는게 더 편하고 온도 조절하기 쉬웠다. 경량패딩은 걸으면 금방 땀이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내 가방 안에 넣고만 다녔다. 다시 간다고 하면 경량패딩류는 안 가져갈 것 같다. 하지만 뭐든지 사람 성향에 따라 다르니까 평소에 경량패딩을 즐겨 입거나, 추위를 많이 타시는 분들은 정말 유용하게 입으실 것 같다.


4. 스포츠 브라 (여성분들에 한함)

 산티아고를 걷다 보면 땀을 비 오듯 흘릴 강행군은 거의 없다. 그냥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걷는 길들이기에 우리가 산을 뛰어다니는게 아닌지라 땀은 적당히 몸이 더워지네 싶은 정도까지만 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난 일반 브라를 하고 다니는게 더 편했다. 평소에도 사용하는 편한 것만 골라 2개 가져왔고, 위아래로 격하게 뛰는 카디오를 하는게 아니었기에  두툼한 스포츠 브라보다는 덜 숨막히는 것 같았다.

 스포츠 브라가 생각보다 부피가 작지 않다. 안에 패딩도 되어있고, 편한 착용감과 서포트를 위해 등으로 연결되는 끈과 어깨선이 두꺼운 편. 나는 일부러 나이키 앞지퍼로 된 브라를 사갔는데 오히려 더워서 안입었다. 결국에는 일반 브라 2개를 세탁해 가며 입었는데, 여자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일반브라는 기능성만큼 세탁 후 금방 마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탁을 할 때 꼭 건조기도 따로 사용했고, 스페인의 해가 무지막지한 날은 밖에서 잘 말려서 써서 별문제가 없었다.

 내가 다시 산티아고를 걷는다면 요즘 한국에서 파는 원더브라? 그런 와이어 없는데 서포트는 잘되고 기능성처럼 가벼운 브라를 사서 가지 않을까 싶다.


5. 바르는 근육약

 다들 근육크림들 정말 잘 바르시는거 맞으세요? 난 가져가서 한 번도 안쓰고 가져왔지 뭐야. 차라리 마시는 근육이완제를 먹겠다. 바르는건 일단 옷에 묻기도 하고, 손도 씻어야 하고 냄새도 나고 효과도 너무 복불복인듯한 느낌. 나는 바르는 약으로 와~ 시원하다! 뭉친 근육이 확실히 풀어지고 나아졌는데? 이런 느낌은 못받았고 집에서 연습시 다리가 아플 때도 그냥 나아진다고 하니까 바르긴 바르지만 즉각적인 효과는 미미했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서도 재미를 못봤고, 가방에 챙겨가긴 했지만 무릎이나 발목이 아프면 신발끈 조임을 변경해 보거나 보호대들의 벨크로 위치를 더 당겨보는 등 물리적인 아이템들로 조절들을 해나갔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오르며 크게 생긴 허벅지 근육 결림은 뭐 마그네슘 먹어보고 약 발라봤는데 소용없었음. 그냥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풀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건 마음가짐. 이미 놀란 근육들에 신경 쓰지 말고, 속상해하지도 말고, 운동으로 뭉친 근육들은 운동으로 풀어준다 편하게 생각하시길 바란다. 걸을 때 불편하긴 하지만 평생 뭉쳐있는 근육통은 없으니 걸으면서 풀어지겠지~ 웃음으로 넘기는 수밖에 더 있을까.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만일 놀란 근육이나 예상치 못한 큰 근육들의 뭉침에 대해 산티아고를 걸으며 할 수 있는 마사지나 빠른 약이 있다면 누군가가 또 포스팅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안 가져가서 잘했다 싶었던 아이템들
삼각대와 셀피팟 그리고 각종 영양제들
40일치를 준비하려면 비타민도 사진보다는 훨씬 그 양이 늘어날거다


1. 삼각대와 셀피팟

 삼각대나 셀피팟 이거는 혹시나 혼자 있는 전신샷을 찍고 싶거나, 산티아고 순례길 뒤에 가는 런던여행에서 필요할까 봐 싶어 끝까지 고민을 하다가 두고 왔는데 아주 잘했지 뭐야. 걷다 보면 앉아서 쉴 때 잠깐을 빼고는 크게 여유 있거나 하진 않다. 무엇보다 지친 다리를 쉬게 해주거나, 말랐던 목을 축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내 몸의 컨디션을 돌보는데 정신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늘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 가끔씩 동행하는 사람과 셀피를 찍거나, 그들이 걷는걸 서로 담아주는 정도의 사진만 남길 뿐 ”다 같이 단체사진 찍을까요? “ 이런 경우도 없다는 것. 서로의 걸음에 걸림돌이 안되게 리듬 끊이지 않고 걷게 도와주고 나도 따라가는 순례자의 입장으로 삼각대와 셀피팟은 정말 안가져가서 속 시원했다.


2. 각종 영양제와 비타민

 나도 30대 중반 때까지만 해도 영양제 관련한 것들은 거들떠도 안봤다. 나의 이론은 “우리 할머니도 영양제 안드시고 백세 가까이 건강히 사셨는데 뭐.”, “사람들이 상술인데 유난 떠는 거야.” 이런 거였지. 게다가 남들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국제선 승무원을 하면서도 동료들은 유행했던 비타민계의 에르메스 오쏘몰과 각종 비타민을 챙겨 먹는데도 거참 난리다 싶으면서 이해가 안갔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하도 중요하다고, 먹는 것과 안먹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라고 그러길래 그나마 중요하다던 오메가, 비타민C, 칼슘제를 먹기 시작했고 그런지가 1~2년 정도 된 시점에서 산티아고를 가게 된 것. 내가 영양제들을 먹으면서 몸이 가볍다, 정말 건강해지는 것 같다는 건 하나도 느끼지 못했지만 꾸준히 먹어서 나중에 덕을 보는 거라고들 하기에 그냥 믿고 계속 먹고 있었던 거였는데 산티아고… 이거 어쩌지?

 가기 전에 마드리드에서 남편이랑 3일 있고, 산티아고 31일에다 그 이후의 런던여행까지 하면 40일 동안 집을 떠나 있는 건데 아침저녁으로 먹는 영양제를 40일 치를 챙겨가자고?  안먹으면 확 기력 떨어질까봐 걱정하면서도 부피감과 보관이 애매해 정말 과감하게 두고 갔다.

 물론 내 몸 안에 어떤 요소들의 수치들이 변화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할 정도로 별일 안나더라. 체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하거나 그런 눈에 띄는 변화는 전혀 없었다. 아 영양제들 그대로 두고 오기 참 잘했어.


결국에는 길 위에서 아시게 될 거예요

 덥다가 추웠다가 비 왔다가 바람 불다가… 스페인은 모든 순례자들에게 각기 다른 날씨를 예상치 못하게 쏟아내며 우리를 적잖게 당황시킨다. 게다가 31일 동안 매일 다른 시설에서 짐을 풀고, 짐을 싸는걸 반복하며 침대와 샤워 시스템 등 예상치 못한 변수에서 고생할 수도 있다. 내가 미쳐 생각을 못해 못 가져간 것들도 같이 걷는 사람들에게 얻어 쓰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들에겐 없는데 나에겐 당장 필요하지 않은 베풀수 있는 아이템들이 생기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날씨며 사람이며 부상들이 여기저기에서 커브볼처럼 마구 날아오는 것.

 그래서 산티아고가 참 재밌다. 100명이 걸어도 100명이 각기 다른 이야기와 영감을 받아온다. 같은 날 같은 거리를 걸은 사람도 그에 대한 경험은 완전히 다를 수 있는게 산티아고다. 그러니 즐기자. 준비물이야 조금 더 자신에 맞는 것을 든든하게 챙겨 오되 없어도 걱정될게 하나 없더라.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래서 다음번을 기약하게 되는 이상한 끌림이 있는 이 산티아고를 최대한 즐기시길 바란다.

 걷기 전에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게 무엇이었는지, 정말 필요없는게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안다고 생각이 들어도 걸어보시라. 산티아고 순례길이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줄 것이다. 그리고 길 위에서 나에 대한 깨달음으로 무릎을 탁 치는 그 순간, 그게 바로 순례길의 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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