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키거 Apr 19. 2024

엄살쟁이가 선택한 순례길 신발 : 나의 나이키

31일 순례길을 걷고도 너무 자랑스러웠던 나이키 페가수스 트레일 4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 2023년 9월 5일 - 2023년 10월 5일


엄살쟁이의 순례길 신발 후기

 나는 정말 엄살쟁이다. 구두를 신다가 뒤꿈치가 까지면 그걸 못 견디고 근처에서 슬리퍼든 운동화든 사서 신고 들어갈 정도로 몸이 아프면 엄살이 느는 타입이다. 원래 잘 아프지 않고, 모든 운동을 잘하고 좋아하는 타고난 하체 건강한 몸이라 비타민, 보약과는 거리가 먼데 유독 상처에 약하다고 할까. 내가 뭔가 쓸리고 아픈데? 하고 느꼈던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고통이 증가되는 그런 느낌.. 물집이 생긴 걸 봤다던가, 뒤꿈치 까진 붉어진 상처를 본 순간 아 쓰~ 갑자기 더 아픈 것 같아. 보기 전에는 잘 걸어 다녔던 사람이 갑자기 발을 절뚝거리고 걷는 한마디로 눈으로 확인되는 상처 비주얼에 약한 엄살쟁이이다.


 그런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결정했을 때 신발이라고 고민 안 했을까. 마흔 살을 마주하고 준비하는 순례길의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돈 걱정은 너무 많이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순례길을 20대에 걸었다면 가방 산다고 깨지는 20만 원, 무릎보호대, 발목보호대 산다고 깨지는 20만 원 이런 것들이 너무 아깝고 손 떨렸을 것 같은데 이제는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구입하는건 미래의 내 몸에 투자개념으로 보기에 마음이 편해지는게 30대 후반, 40대로 들어가는 이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물론 돈은 다 귀하지만 너무 어렸을 때보다는 조금은 더 여유로운 내 모습에 어른이 되어간다는게 이런 거구나 싶기도 한 뿌듯하고 참 다행이며 감사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나의 발을 책임질 신발은 정해진 가격 없이 ‘편하다면 얼마든지 지불한 용의가 있다’는 마음으로 몇 달간 아주 골고루 찾아보며 공부했다. 너무나 아쉬운게 내가 한국이 아닌 유럽에서 살고 있기에 맘 내킨다고 하루 잡아 종로에서 한번 신발을 싹 다 신어볼까? 이런 것을 못한다는거. 그래서 나이키든 호카든 브랜드샵에 나와있는걸 알아서 인터넷으로 사는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 이럴때 한국에서 사는 삶이 갑자기 너무 그리워진다. 한국은 등산이나 트레킹 관련된 전문샵들도 많고, 서비스도 너무 좋은데 말이지. 게다가 인터넷으로 산다고 해도 배송에 반품 시스템도 잘 돼있어 혹시나 사이즈가 안 맞는다거나 내가 생각했던 핏이 아니라면 바꾸기도 얼마나 쉬워. 정말 대한민국이 최고다. 반면에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는 모든게 느리고 아주 복잡하기에 환불? 교환? 시간이 넘쳐나야지만 할 수 있고, 그 과정도 아주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잘 생각하고 고르고 고른게 바로 나이키 페가수스 스트레일 4 고어텍스 모델이다.


나이키 페가수스 트레일 4 나이키 공식 홈페이지


일단 가벼운 신발로 정하고 싶어요

내가 나이키 신발을 고른 이유는 명확하다.

무게가 정말 너무 가볍다

고어텍스 기능이 있기에 생활방수 가능하다

트레일용이니 기본적인 접지력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이키니 준수한 수준으로 잘 만들었겠지 싶었다


반면에 나이키를 사며 고민되었던 점 또한 명확했다.

트레킹 하는 전문 신발은 확실히 아니라는 것

산티아고 순례길 가신다는 분들의 글에 나이키 신고 간다는 분들은 거진 못봤다는거

밑창이 콘티넨탈이나 비브람의 전문 브랜드로 돼있지 않았다는 점


 20대 젊었을 때 높은 구두도 많이 신었고, 30대 때 부츠 스타일도 참 좋아했는데 어떤 용도의 신발이던, 어떤 디자인이든지 신발의 무게가 하루의 피곤함을 좌우한다는 걸 잘 알기에 내 최우선은 가벼운 신발이었다. 그래서 일단 등산화는 탈락. 게다가 발목까지 탄탄하게 잡아주는 미드컷 높이의 등산화는 단단함에 내 살이 쓸려 또 엄살 부릴까봐 탈락. 많은 후기들을 보면 그래도 발목 조금은 잡아주게 낮은 미드컷이라도 사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잠스트 발목보호대를 따로 매일 할 거라서 과감하게 일반 발목 운동화로 갔다. 이거 참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걷다 보면 별의별 신발을 다 보는데 가장 중요한 건 나랑 잘 맞아야 한다는거. 그리고 백번 글 읽고 뭐해도 소용 없는건 긴 거리를 걸어봐야 안다는거. 그러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들을 가장 많이 채워주는 신발을 사면 되는 것 같다. 나라고 호카, 살로몬, 머렐, 콜롬비아 다 안 알아봤을까(안타깝게도 유럽이라 한국처럼 다양하진 않지만 검색 가능한 브랜드들은 다 찾아봤다). 결국에는 나한테 가장 친숙하고 가볍고, 고어텍스라는 큰 조건들을 채워주는 나이키를 선택해 31일을 걸었다.


4월 아테네의 돌길과 5월 파리의 빗 속에서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기 전에 몇 번은 테스트를 해야 할 것 같아서 9월 산티아고를 앞두고 갔던 4월의 아테네, 5월의 파리 여행에 신고 갔는데 나름 성공적이었다, 아테네에서는 파르테논 신전을 올라가는 돌계단들과 올라가서 크고 작은 돌 위를 걷는 느낌을 확인했고, 파리에서는 비가 내려 의도치 않게 고어텍스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 아테네에서 신발을 처음으로 신은 거였는데 일단 뒷목이 스트레치성 패브릭이라 뒤꿈치 까질일은 백 프로 없을 것 같아서 합격. 그런데 돌들만 넘쳐나는 아크로폴리스를 걸으니 ‘응? 이거 괜찮을까?’ 생각이 살짝 스치긴 했다. 무언가 발판에 돌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돌들이 사이즈도 들쑥날쑥하고, 좀 거친면들이 있는데다 내가 온 정신을 과연 이 신발이 괜찮을까에 집중해서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탓도 있었겠지만 새 신발을 사야하나 잠시 생각을 하게되었던건 사실이다. 돌길을 제외하고 아테네에서 며칠 동안 많이 걸어 다녔는데 착용감 하나는 정말 좋아서 마음에 들긴 했다. 그리고 다음 달에 간 파리에서 일주일간을 비도 맞고, 신나게 걸어 다니고, 디즈니랜드에서 하루종일을 보냈어도 다리가 가볍고 피로감이 하나도 없어서 정말 신발에 쏙 반해서 돌아왔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내가 다 사서 신어볼 수도 없고, 오래 걷기 전에는 신발의 진가를 확인할 수도 없는 법. 완벽하다고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내가 중요시하는 많은 부분이 채워지는 나이키와 그렇게 내 산티아고를 같이 걷는 워킹메이트가 되었다.


그래서 나이키 신고 순례길 어땠냐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회 하나 없이 너무나 감사하고 편안하게 순례길을 완주했고 다시 간다고 하더라도 또 나이키 페가수스 시리즈의 고어텍스를 신고 갈 것이다. 정말 발이 가벼우니 피로감이 덜했다. 가장 걱정했던게 밑창이 잘 버텨줄까 하는 거였는데 순례길 다 마치고 나니 닳긴 닳았지만 걸을 때는 딱히 조금 얇다, 울퉁불퉁한 돌들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한 번도 없었다. 접지력도 혹시나 미끄러울까 염려했었지만 순례길을 걷다 보면 생각만큼 바위들을 타고 올라가고 이런 접지력이 중요한 순간들이 많이 없다. 첫날 둘째 날 몇 시간 정도 정말 가파른 돌길을 내려와야 하는데 그 험한 길들에서도 밑창이 얇거나 접지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오히려 신발이 얇고 가벼워서 툼툼한 등산화들보다 생각대로 정확하게 발돋움하면서 잘 다녔다.


산티아고에서 나이키 덕에 피로감이 덜했다


 미스트같이 가벼운 비가 오는 날에는 신발이 하나도 젖지 않았고, 조금 쏟아지는 날에는 양말 앞코가 젖는 정도로 고어텍스 기능도 나름 합격. 나는 운이 너무 좋아서 31일 동안 엄청난 비는 2일 정도, 걷다가 한두 시간 비 내리는 것도 두어 번 겪은 게 다라서 너무 다행이었다. 우리 언니는 첫 일주일을 비 맞으며 다녔다고 했는데 나는 거참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던 것 같다. 하루종일 내리는 장대비를 맞이한다면 아마 신발이 젖긴 할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고어텍스는 생활방수 수준이란걸 염두해야 된다.


 나이키 페가수스는 신발 앞과 윗등 부분도 말랑말랑 가벼워서 엄지나 새끼발가락이 눌리지 않아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일반 나이키 운동화라도 새 신발이라면 막 신기 시작하고 며칠은 뒤꿈치가 까지기도 하는데 이 페가수스는 발목 마감이 살짝 천 밴드느낌? 양말같은 스타일로 돼있어서 발이 하나도 안 까져서 나도 놀랐다.


뒷꿈치가 말랑말랑한 재질이라 상상 발꿈치가 쓸리거나 까질일이 없다

 

 발목 서포트가 크게 부족함 없다고 느낀건 아마도 산이 좀 가파르다는 날에는 알아서 잠스트 발목 보호대를 썼기 때문일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의외로 평지가 많기에 잠스트 발목 보호대를 안하고 걷는 날도 많았다. 평지만 걷는 날에는 나이키신발이 참 가벼운게 정말 좋아서 강력 추천하지만 극히 주관적인 엄살쟁이의 추천이니 신발은 정말 남들 이야기 들을 것 없이 자기랑 맞는거 고르는게 정답이다. 외국인들은 간단한 샌들을 신고도 산티아고 순례길 잘만 걷는걸 보니 하이킹에 좋은 기능 하나 둘 탑재한 운동화라면 무리 없지 않을까. 물론 전문으로 등산하시거나 하이킹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극대노를 하시겠지만 평소 전문적인 산행을 하지 않는 정말 베이직한 사람 중 한 사람에 순례길을 걸은 사람으로서 괜히 무거운 등산화 신으셨다가 고생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언니는 이번에 9년 만에 순례길 걷는다고 살로몬 좋은거를 사서 신고 왔던데 뒤꿈치 다 까졌다. 끈끈한 자매라 내가 웬만하면 신발 바꿔 신어 주고 싶었는데 내 나이키가 너무 편해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모른척 했다는 이야기는 비밀이다.


나의 첫 산티아고 신발
엄살쟁이라면 나이키 페가수스 정말 추천이요
산티아고 31일 + 일상생활에서 사용한 6개월 된 상태

모델 : 나이키 페가수스 트레일 4 고어텍스

가격 : 160유로

밑창 평가 : 산티아고 30일은 확실히 잘 버텨준다. 마모되는 건 산티아고에 일반생활까지 포함해 1000km는 걸었으니 다른 신발과 비슷. 나는 접지력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순례길을 걸으며 돌길을 지날 때도 밑창이 너무 얇다는 느낌도 못 받아서 합격을 주겠다.

쿠션 평가 : 적당히 푹신하고, 적당히 단단하다. 오래 걷기 정말 좋았다.

고어텍스 평가 : 초반에 장대비를 만났을 때도 정말 잘 버텨준게 신기할 정도로 방수기능 합격.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후에도 몇 번 비오는 곳에서 사용했는데 살짝 기능이 약해진 느낌은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 고어텍스 기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건가요? 최근에 비가 조금 더 들어오는 느낌은 개인적인 견해.

무게 평가 : 세상 가볍고, 안신은 것 같음. 이 가벼운 무게가 피로감을 확 덜어주기에 나는 다시 순례길 다시 걸어도 나이키 페가수스 트레일 4 신을 거다.

사이즈 팁 : 보통 나이키 신발을 딱 맞게 235 신는 사람인데 이번엔 245로 갔다. 예전 사이즈들과 달리 나이키가 사이즈가 좀 타이트해진 느낌이라 240을 신었을 때 딱 맞는 듯해서 245로 선택했고 살짝 넉넉한 느낌으로 갔다. 인진지 이너 양말과 두꺼운 양말을 신고, 발목에 잠스트 보호대를 하면  딱 맞는 느낌이라 정말 만족했다. 이 신발은 발목 높이가 높지 않으니 발목 보호대를 옵션으로 가져가는게 좋은데 보호대가 두꺼운걸 고려해서 사이즈를 여유 있게 선택하시면 될 것 같다.


 내가 신발 후기를 꼭 써야지 생각했던 건 이 신발의 구입을 앞두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순례길과 페가수스를 열심히 쳐가며 검색을 해봤지만 어떤 여성분 딱 한 분이 신으신 걸 발견, 하지만 정작 출발하고 신발에 대한 평가나 조언이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신고갈 신발은 단 한 켤레인데 이미 순례를 해보신 유경험자분들에게 조언을 듣고 싶은건 당연하지 않을까. 대부분 순례길 시작하시기 전에 열심히 준비하시는거 리뷰하시고 돌아오셔서는 특히나 신발에 대한 리뷰들이 많이 없어 답답했던 한사람으로서 혹시나 나이키 페가수스 트레일을 순례길 신발로 고려하시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나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후기를 남겨보았다.

 아… 나이키… 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내가 31일 동안 신발이 불편해서 속상하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었기에 정말 신체적 정신적으로 만족하는 선택 중에 하나가 신발이었다. 순례길을 두 번 세 번 걷는 것도 아니고, 신발을 두 켤레 세 켤레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모든 분들이 자신과 맞는 편하고 안전한 신발을 사셔서 편안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전 16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사 온 기념품이 궁금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