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키거 Apr 15. 2024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사 온 기념품이 궁금해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31일 간 모은 나의 순례길 기념품들

산티아고 순례길 : 2023년 9월 5일 - 2023년 10월 5일 (6일까지 산티아고)
런던 여행 : 2023년 10월 7일 - 2023년 10월 12일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뭐였게?
바로 순례길 위에서 살 수 있는 기념품이었다
언니의 소중한 첫 산티아고 순례길 기념품이었던 작은 비석은 지금도 언니의 화장대 위에 있다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나에게는 10년 전 (이제 2024년이 되었으니)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쌍둥이 언니가 있다. 내가 한창 비행 햇병아리였을 만 1년 차쯤에 우리 언니가 내가 일하는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서 순례길을 시작했더랬지. 아주 용감하게 30일 안에 모든 길을 끝낸 언니는 몇 가지의 소중한 기념품을 안고 돌아왔는데 그중 하나가 순례자들에게 방향을 가르쳐주는 아주 작은 비석 조각상이었다. 그게 지금까지도 언니의 화장대 위에 있는데 언제 보아도 이상하게 그게 탐나지 뭐야. 외국살이 하는 동생이 안쓰러워 그런지는 몰라도 늘 옷이고 화장품이고 용돈이고 자비로웠던 언니가 유일하게 못 준다고 한 물건이 바로 이 순례길에서 사 온 기념품이었다. 언니가 들려준 산티아고 무용담이 너무 용감하고 인상 깊어서 나도 뭔가 연결된 느낌을 갖고 싶어 몇 번이나 그 작은 비석을 달라했는데 아주 단호하게 “꿈도 꾸지 말아라~" 소리를 들은 기념품.

 대체 언니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걷기 전에는 이해 못 할 큰 추억이 깃든 것임은 분명하기에 나도 내가 걷게 되면 그런 진한 의미있는 기념품들을 꼭 사오리라 늘 생각했다. 게다가 언니가 누누이 "다음에 다시 걷는다면 마음이 가는 기념품을 만날 때마다 다 살 것 같아.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는 내가 봤던 기념품들을 다 찾을 수도 없었어."라고 말을 해왔기 때문에 하나의 공식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다.


마음에 드는 순례길 기념품 = 바로 산다

            

 아마 이런 게 세뇌교육이지 않을까? 그것도 9년 동안 순례길 이야기가 나오면 아쉬웠던 기념품 이야기는 꼭 한 번씩 하던 언니의 모습, 그리고 화장대의 그 작은 비석을 가지고 싶은데도 못 갖게 하니 '나도 내 거 사고 말 거다!' 이런 나의 오기가 합쳐져 기념품에 대한 집착과 기대가 조금 생긴 것 같다.


 나의 찬란했던 삼십대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으로 한동안 고민을 하던 순례길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어떤 기념품을 만나게 될지 나름 기대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챙겨야 하는 준비물들과 비상약, 숙소 예약 이런 거 당연히 중요하지. 그런 준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모든 일정과 숙소 예약, 이동 편 예약이 다 끝내고 한숨 돌렸을 때 과연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 마음에 드는 기념품들을 얼마나 많이 만날까, 이게 참 궁금해졌다는 이야기. 이게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엄청 중요했다. 나는 내가 다니는 게 여행이던 여정이던 그 순간의 느낌과 감정이 담긴 기념품을 사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에서 큰 즐거움을 받는 사람이다. 비행을 할 때에도 어딜 가던 단순히 도장 찍는 개념이 아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남들보다 더 신경 써서 고르고 다녔다. 지금도 그때 잘 골라온 기념품들을 보면 그날의 날씨와 소리, 내가 느꼈던 기분들이 고스란히 다시 떠오르곤 한다.


***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는 암스테르담 반고흐 뮤지엄에서 사 온 반고흐의 노란 집 저금통, 방콕에서 사 온 전통복을 입은 나무 조각,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사 온 코끼리 스노우볼, 남아공 조하네스버그에서 사 온 기린상, 휴스턴 스페이스센터에서 사 온 우주 비행사 조각 등 전 세계에서 산 별의별 기념품들이 차고 넘친다. 이걸 한자리에 다 모아두면 굉장히 잡다 해 보이고 웃기지만 나중에 잘 정리해서 유리 전시장에 넣어볼 생각이다. ***


 자석도 좋아하지만 뭔가 남들과 다른 작은 소품을 더 선호하는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31일 연달은 여정은 특별한 기념품들을 만날 생각에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그리고 언니가 나의 기념품 욕구에 불을 짚이는 한마디를 보탰지.


예쁜 거 있으면 내 것까지 두 개씩 사. 안 물어봐도 돼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모든 일정을 소화하는 나와는 달리 언니는 휴가를 붙이고 붙여 레온에서 산티아고 까지 11일을 걷기로 돼있었다. 그래서 언니가 레온에 도착하기 전 앞 20일 동안 나 혼자 걸을 때 보이는 예쁜 기념품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언니 거까지 두 개씩 살 수 있는 전권과 지갑을 위임받았다.

 그래! 아주 마음껏 사보겠어!


나는 순례길 위에서 어떤 기념품들을 샀나
안녕?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기념품 이렇게 사온 사람은 처음이지?


 이왕 순례길 가는 거 걷기도 재밌게, 기념품도 신나게 사자 싶어 아주 열심히 검색을 했다. 나는 우리 언니의 아쉬움 많았던 후기도 알고 있고, 기념품 마니아인 나의 성향을 잘 아는 데다 이제는 20일 동안 언니의 기념품까지 사야 한다는 미션도 주어졌기에 블로그와 카페, 브런치 등 이곳저곳의 후기를 많이 찾아봤다. 나보다 한참 앞서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들은 어떤 기념품을 사 왔을까? 그리고 어디에서 대부분 사시는 거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특이한, 특정한 곳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 놓치면 후회할 그런 기념품이 많을까? 그런데 후기들도 많이들 없지 뭐야. 대부분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몰아놨던 기념품 쇼핑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그마저도 산티아고 후에 다른 유럽지역으로 이동하는 스케줄들을 가진 분들이 많아 가볍고 상징적인 마그넷 정도를 사시는 게 다였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꾸준히 무언가 기념될만한 것을 모으신 분들은 가벼운 배지 정도나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등의 대도시에서 산 마그넷 정도. 하긴 사는 기념품들이 다 걷는데 늘어나는 무게를 뜻하니 선뜻 사는 게 꺼려지는 이유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기념품에 대한 큰 정보 없이 떠난 나는 어땠을까? 각설하고 엄청 많이 사 왔다. 그리고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더더더 많이 샀다. 기념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산티아고 31일간의 여정과 런던 여행 이야기를 끝내고 큰 마음먹고 드디어 정리를 해봤다. 정리를 하면서도 거참 많이도 샀네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하나둘 떠오르는 순례길의 기억들에 너무 행복했다.


1. 마그넷 먼저 시작해 볼까 : 개성 넘치는 사랑스러운 자석들


 어딜 가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집에 돌아와 붙여놓기도 예쁜 마그넷들은 정말 많이 살 수밖에 없는 기념품인 것 같다. 나는 비행을 하면서 I love 000라고 도시이름 적힌 자석들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번 순례길에서도 생장, 팜플로나, 레온, 산티아고에서 그런 자석들을 만나서 즐거웠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팜플로나와 부르고스, 레온, 멜리데 정도가 아닌 이상 소도시를 주로 걷기에 기념품 샵들이 의외로 없다는 사실! 그러니 자석 같이 작은 아이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면 그때 사라고 권하고 싶다.

 제일 윗줄 두 번째에 있는 문어 순례자 자석은 문어요리로 유명한 멜리데에서 산 타일 자석인데 너무 귀여워. 이런 거야말로 특색 있는 그 도시에서만 살수 있는 기념품이니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내가 걸은 2023년 산티아고를 기념하기 위해 산티아고 2023이라고 연도가 적힌 자석은 순례길을 다 끝내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매년마다 이렇게 연도 들어간 자석들이 나왔다 사라지니 기념으로 내가 걸은 해에 산티아고에서 연도가 적힌 자석 또한 큰 기념품이 될 것이니 추천하는 바이다.


2. 패치들 : 아 다음번 산티아고 걸을 때 진짜 쓸 거라니까


 패치는 평소에 쓰는 것도 아니면서 은근히 많이 샀다. 이유는 단 하나. 다음번에 산티아고를 다시 걷게 된다면 내 가방에 붙이리라! 이 얼마나 호기 넘치는 생각인지 웃음이 나긴 하지만 진짜 나는 걸으면서 '어? 걷는 거 너무 좋은데? 다음엔 더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번이면 족하다 하는 분들이 많던데 난 내 인생에 산티아고를 적어도 한 번은 더 걸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길이랑 나의 인연이 아직 안 끝난 느낌? 어느새 베스트 프렌드가 돼서 이 길을 다시 만나러 갈 수밖에 없겠다 하는 느낌이다. 실로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다음번에는 언제 걷는 게 좋을까 속으로 많이 생각하면서 걸었는데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어디 한번 지켜봐야지. 내가 언제 두 번째 산티아고 이야기를 여기 브런치에 풀어놓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다시 패치 이야기로 돌아와서 특히나 2023처럼 연도가 적힌 패치는 보이면 꼭 사라고 추천하고 싶다. 지금 보고 있어도 왜 연도 적힌 패치를 저리 꼴랑 두개만 사 왔는지 후회가 된다. 내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어떤 20대 여자분이 ‘Santiago 2019' 패치가 붙은 가방을 메고 걷길래 "어? 너 몇 년 전에도 걸은거야? "하고 물었는데 "아니, 우리 엄마가 걸었고, 엄마 패치야."라고 대답을 하더라고. 크... 너무 멋있지 않아? 레거시처럼 패치도 물려주고 대를 이어서 이런 여정과 열정을 공유하는 게 내 작은 로망이 되었단 말이지. 그래서 혹시 미래의 내 가족 구성원이나 지인들이 간다고 할 때 나도 내가 걸은 연도의 산티아고 패치가 붙은 내 가방을 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이 패치들은 산티아고에서 구할 수 있으니 순례길 걷는 내내 일부러 힘들게 찾지 않아도 된다는걸 알려드리고 싶다. 다른 작은 패치들은 생장과 부르고스나 까리온 등 여러 곳에 걸쳐 구입했다. 내 컴퓨터 가방이나 작은 소품 파우치 등에 붙여서 귀엽게 쓰려고 산 것. 언제든 내가 그 힘든 산티아고도 31일 동안 걸은 여자니 못할 거 없다는 나만의 리마인더가 되어줄 좋은 소품이 될 것 같다.


3. 스티커들 : 가볍고, 예쁘고, 어디든 붙이기 좋은 최고의 기념품 아니야?


 스티커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이라서 보일 때마다 샀다. 가볍기도 하고 다이어리나 랩탑, 작은 전자 기기들 등 붙이기 너무 좋은 게 스티커 아닌가. 좀 많이 산 것 같지만 해가 지나고, 내가 산티아고를 다시 가기 전까지는 아껴가며 이곳저곳 잘 이용할 것 같다. 가격차이가 좀 천차만별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부르고스는 장당 2~2.5유로로 좀 많이 비싼 것 같으니 비추하고,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똑같은 것들을 1유로에 파니 이 도시에서 사는 걸 추 한다.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도 도시로 치면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 더 가까운데 작지만 기념품샵과 레스토랑, 교회들이 알차게 들어서 있는 알짜배기 도시다. 이 안에 기념품 샵이 2개 정도 있는데 두 곳 모두 물건과 종류가 정말 다양하고 고를 것도 많고 가격 또한 내 순례길을 통틀어서 가장 합리적이었다.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는 평균 16일 차 정도 돼야 도착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기념품을 사기에 아직 여정의 반이 남았다는 게 고민되겠지만 자석이고 스티커고, 만족스러운 가격에 디자인도 많으니 개인적으로는 까리온 매우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언제나 선택은 개인의 몫이니 잘 생각해 보고 참고만 하셨으면 좋겠다.


4. 순례자 조개와 열쇠고리들 : 가방에 붙일 수 있는 친구들


 순례자들이 여정을 시작하며 하나의 표식으로 가방에 거는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흰 조개. 대부분 우리가 생장에 도착해 순례자 여권을 받으러 순례자 사무실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사는데 내가 여권을 받은 2023년 9월 4일에는 재고가 다 소진되어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순례자 사무실 밑에 있는 가게에서 구입해 한 달 넘게 참 잘 메고 다녔지.

 사진의 제일 윗줄 왼쪽에 있는 조개가 바로 나의 조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십자가의 색도 좀 바랬지만 그래서 더 내 것 다워진 느낌이랄까? 나와 같이 뜨거운 해 밑에서 고생하며 순례길이 끝나고도 런던에 들려 이탈리아까지 잘 데리고 들어왔다. 이건 내 순례자 여권과 함께 나중에 액자에 잘 넣어 둘 생각. 그 옆에 작은 조개는 기념하려고 하나 사둔 거고, 노란색 나무 조개는 언니와 순례자 손뜨개 인형을 발견한 폰체바돈 가던 날 같이 샀다. 작은 물병 모양의 조롱박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성당에서 사둔 것.

 어쩌다 보니 순례자 손뜨개 인형이 두 개가 되었는데 왼쪽과 오른쪽의 순례자 인형을 잠깐 보기만 해도 퀄리티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뭐가 더 비쌌게? 왼쪽을 10유로, 오른쪽 인형을 7유로 주고 샀는데 이게 유일하게 '보일 때 사자!'해서 실패한 케이스다. 순례자 손뜨개 인형이 확실히 특이한 기념품이고 실제로 나도 순례길 위에서 딱 이 두 개만 만났다. 훨씬 나은 오른쪽 인형은 순례길 23일 차에 노상에 매대에서 한화 만원 정도 주고 샀는데 저 작은 손뜨개 인형에 무려 참이 5개나 달려있다. 조개, 조롱박, 십자가, 2023년 택, 핸드메이드까지. 이게 만드는 게 보통일이 아닐텐데 완성도도 높고 가격도 좋으니 추천! 그 인형과 비교하면 왼쪽의 순례자 인형은 어린아이가 만든 듯한 느낌까지 든다. 그 외 열쇠고리들은 나중에 선물이나 집키, 차 키로 쓰려고 여유 있게 구입한 것들로 산티아고에서 구입가능하고 무게도 좀 나가니 여정을 끝내고 여유 있게 사길 추천한다.


5. 엽서들과 그림들 : 사진보다 더 은근한 매력 아니겠어요


 언젠가는 나와 함께 걸었던 사람들에게 엽서를 써야지, 아니면 나중에 내 주위사람들이 산티아고를 걷고 싶다고 한다면 응원의 말들을 담아 글을 써줘야지 생각이 들어 한 장 두 장 모으게 된 것들이 엽서와 카드들. 그리고 어쩌다가 구입하게 된 그림 두 점. 가장 오른쪽 위에 있는 그림은 3일 차 주비리에서 팜플로나 가는 날 아침에 들린 카페 사장님의 아내분이 그린 그림. 카페 안 벽에 아무렇지 않게 스카치테이프로 붙어있는 저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살 수 있을까?" 했더니 원하는 만큼만 기부하고 가져가라고 해서 기부하고 받은 그림이다. 프린트물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작은 스케치북에 물감으로 직접 그리신 그 서툴지만 솔직한 감성이 너무 좋아 순례길 초반부터 내가 순례자 여권과 내 다이어리와 같이 쭉 보관해서 데려온 그림이라 애착이 간다.

 아랫줄 가운데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착하기 하루 전 오 페드로우조로 가던 길에 만난 당나귀 아저씨한테 산 그림인데 원래 이분이 당나귀와 함께 순례길을 걸으시는 걸로 유명하신 분인데 얼마 전에 당나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것도 다른 유럽 아이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그분의 여자친구가 솜씨가 좋으셔서 이런저런 산티아고 관련된 펜화도 그리셔서 그중 한 프린트물을 사 온 거. 생각해 보면 순례길 위에 사연 없는 사람 하나도 없는것 같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나와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더 뚜렷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게 순례길의 묘미 중 하나일까 싶다.


6. 배지들 : 은근히 중독성 높은 기념품


 배지... 작고 귀여운데 깨알같이 프린트하는 게 가능해서 꾀나 만족도 높은 기념품이 바로 배지가 아닐까 싶다. 조개나 비석모양의 배지는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조개 깃발과 국기가 합쳐진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가격은 1유로에서 2.5유로까지 그 차이가 상당하니 언제든 예쁘고 저렴한 곳을 발견하면 한두 개 사는 거 정말 추천한다. 나는 신랑이 이탈리아인이고 내가 지금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기가 들어간 것도 하나 샀고 당연히 한국 국기가 있는 것도 구입했다. 지금 이 배지는 내 여행용 기내 캐리어에 예쁘게 붙여놨는데 볼 때마다 참 뿌듯하다. 가장 왼쪽에 있는 여자 순례자 배지는 순례길 초반 에스테야의 한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참 유니크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이거 하나는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에스테야 이후에 한 번인가 더 봤던 듯한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이런 사람모양 순례자 배지가 마음에 드신다면 에스테야 아니면 언제든 볼 때 사시길 바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는 확실히 못 봤으니 걷는 여정에서 사시길. 같이 걸은 친구들 중에 배지를 사서 가방에 붙이는 사람들이 두어명 있었는데 의외로 메는 가방에 붙여두면 물건 꺼내거나 집어넣을 때 눌리거나 느슨해져서 자주 잃어버리더라. 그러니 필통이나 파우치 등 가능한 가방안에 넣는 천 소재 소품들에 붙이는 용도로 사시는 게 더 알맞을 듯하다. 그리고 순례자 가방에 배지 달고 다니는 게 의외로 눈에 잘 안 뜨인다. 메는 가방에는 커다랗고 입체적인 우리의 순례자 조개가 있으니 그거 하나로 이미 순례자의 모든 게 설명되지 않을까 싶다.


7.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반지와 귀걸이

 

 조개모양 반지는 내가 순례길 떠나기 전에 블로그에서 후기를 보고 너무 갖고 싶었던 기념품이었다. 어떤 분이 순례길 다 끝나고 산티아고에서인가 같이 걸은 사람들과 커플반지처럼 나눠서 끼고 사진을 남기셨는데 그게 너무 귀엽고 따뜻해 보였던 거. 그래서 나도 언니랑 꼭 반지 매칭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의외로 길을 걷다 보면 반지 파는 곳이 많지가 않아서 적잖게 놀랐던 아이템. 부르고스, 멜리데, 산티아고에서 볼 수 있었고 가격대는 대부분 15유로 이상하기에 가격이 너무 낮은 기념품은 확실히 아니다. 그래도 은반지에다 너무 마음에 드는 모양을 잘 찾아서 지금도 자주 착용하고 있고 착용할 때마다 순례자였던 느낌이 다시 떠오르는 향수 짙은 기념품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 몸 보이는 곳에 지니고 다니니까 일상생활을 하다가 잠깐씩 내려다보는 게 너무 좋다. 큰 조개반지와 작은 조개 귀걸이는 멜리데에서, 묵주형태의 반지는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모두 언니가 사준 거라 더 의미 있는 기념품. 일부러 살짝 여유 있는 사이즈로 가져왔는데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손마디가 굵어져도 오래 사용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귀걸이나 반지나 순례길을 떠올릴 수 있는 액세서리를 살 수 있는 건 여자 순례자여서 조금 더 즐길 수 있었다.


8. 기타 기념품들 : 순례자 플레이모빌과 정말 갖고 싶었던 언니의 그 비석


 드디어 나의 얼티밋 버킷 리스트였던 산티아고 방향비석이 나왔다! 가끔 이런저런 도시들의 기념품샵에서 보긴 했지만 너무 공장에서 찍어 나온 느낌에 칼같이 깎여져 나온 반듯한 비석들만 있어서 크게 매력을 못 느끼다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 저녁 산책을 하다가 발견했다. 그것도 언니가 9년 동안 간직해 온 비석과 매우 유사한 자연스러운 돌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어 2유로인가 주고 구입했다. 게다가 이게 또 팜플로나에서 산 순례자 플레 이모빌하고 사이즈가 딱 맞네! 결국 이 둘은 지금도 우리집 장식장에 같이 친구하며 잘 서있다. 파우치나 책갈피들은 선물할까 해서 사둔거고. 손바닥보다 큰 접시는 집에 들어올 때 열쇠 등을 넣어둘 목적으로 멜리데에서 구입한 것. 황토를 구워 앞면에 색을 입힌 참 예쁜 도자기 접시인데 16유로 정도 가격이었을 거다. 아니 그림도 너무 예쁘고 존재감 팍! 들정도의 크기도 무게도 있는데 의외로 가격도 저렴해서 고민 끝에 언니도 나도 하나씩 사버린 접시. 아쉽게도 언니의 접시는 아주 예쁘게 반으로 갈라져 한국에 도착했다고 한다. 나도 가방 화물로 보냈는데 뭐지?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국사람들보다 더 화물을 조심스레 다룰일이 없는데 말이야. 거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R.I.P. 안타까운 언니의 산티아고 도자기 접시.



 이 순례자 여권 보호케이스는 생장에서 출발해 그 험한 페레네 산맥을 넘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산 것이다. 체크인을 하는 데스크 위에 보이길래 오! 마음에 들어! 하고 샀는데 아뿔싸... 여권을 넣으면 위에 지퍼가 안 닫힌다. 아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런 걸 만드신 건지. 이날 정말 피레네산맥을 너무 힘들게 걸어서 정신이 없었기에 여권을 넣어보고 살 생각도 못했다. 아니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알베르게가 바로 첫날 우리가 마주하는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 아니야! 그리고 이렇게 자체 MD를 만들어 팔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곳인데 당연히 사이즈 아주 정확하게 만드셨을 거라 생각했지. 목줄도 예쁜 주황색에 로고까지 예쁘고 여권 케이스 소재도 진짜 두꺼운 PVC라 더 안타까운 거. 사이즈만 맞았으면 이거 꼭 사시라고 권해드릴 그런 기념품 중 하나가 되었을 것 같은데 진심 안타까워 눈물이 또르르... 한국분들은 저와 같은 실수 하지 마시고, 이거 사지 마시라고 올려본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에 카드모양에 펜던트가 들어간 것은 산티아고 대성당의 기념품샵에서 산 여행자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퍼의 기도문이다. 내가 비행할 때 일본에서 산 안전비행 오마모리랑 컨셉이 비슷한 것 같아서 같이 사진을 찍어봤는데 와, 유럽에도 이런 개념이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공부, 일, 사랑과 관련된 수호성인이 있으니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 보고 나오는 길에 마련되어 있는 기념품 샵에서 선물용으로 구입해도 좋을 것 같아 추천한다. 카드 모양으로 지갑이나 가방 안에 딱 넣기 좋게 만들어져 있어서 지니고 다니기 좋은 것도 장점이다.


*** 뒷면에 적혀있는 기도문을 간단하게 번역해 보면 이렇다 ***

여행자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퍼
축복받으신 성 크리스토퍼 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그분의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인도하게 해주옵소서. 그들을 우리 여행의 동반자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시오.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로 저희를 감싸주시고, 저희를 모든 위험, 사고, 화재, 폭발, 추락 또는 부상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모든 악에서 보호해 주시고 집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산 기념품 중 나의 최애는?
보기만해도 몽글몽글해지는 생장에서 산 자석과 이제는 방향 비석과 찰떡 조합이 된 순례자 플레이모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찾은 기념품들 중에 내 최애를 꼽으라면 고민없이 정말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최애로 꼽는 몇 가지는 제일 처음 생장에서 부푼 마음으로 샀던 두 개의 자석과 팜플로나에서 만난 순례자 플레이모빌, 그 옆을 지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산 비석과 언니가 사준 반지들이다. 이게 나의 31일 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모은 모든 기념품들 중에 가장 애정이 가는 것들이다.

 I love 생장과 산티아고 조개 자석을 보고 있자면 그날 생장의 더웠던 온도와 내 몽글몽글했던 떨림이 다시 몰려오는 듯하다.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내 꿈의 직장의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 단계별로 잘 통과하고 마지막 최종 면접을 보기 전 희망차면서도 조심스럽게 떨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만큼 산티아고는 내 인생에 꼭 한번 떠나고 싶은 큰 꿈과 같은 여정이었고, 순례길은 내가 어떤 사람이건 일단 걸을 기회를 주었다. 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내가 받아들여진 듯한 이상하리만치 참 따뜻한 길이었다.

 팜플로나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순례자 플레이모빌은 원래도 플레이모빌을 좋아하는 나에게 정말 기분 좋게 완벽한 서프라이즈였고(순례자 플레이 모빌이라니! 순례자!!), 아시다시피 순례자들에게 방향을 가르쳐주는 작은 비석은 언니가 10년 전의 여정을 그 비석안에 담아 온 것처럼 소중하게 대해 나도 너무 갖고 싶었던 얼티밋 버킷 리스트였으니 만족도가 높았다. 게다가 반지들은 정말 갖고 싶었던 몇 안 되는 기념품인데다가 언니가 사줘서 너무 소중한 것.

 이제야 우리 언니가 조금 이해가 가는 게 누군가 나에게 내 이 최애 순례길 기념품들을 달라고 하면 나도 못줄 것 같다. 그 의미가 “나한테 의미가 있어서 안돼.”라기보다 “이건 네가 가져가도 의미가 없어, 나만이 의미를 줄 수 있는 거야."처럼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순례길 위에서 서로 선택하고 선택받아 지금 추억이란 이름으로 함께하게 된 내 마음의 한 조각들이 들어가있는 느낌이랄까. 이 기념품들을 볼 때마다 힘들었던 순례길을 꿋꿋하게 걸은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동한다. 애썼던 내 모습이 자랑스럽고 어떤면에서는 아리다고 할까. 그저 달콤하지만은 않은 달콤씁쓸한 이 감상이 있다는게 참 좋다.


 그래. 열심히 잘 걸었다. 그리고 그런 내 서른아홉 살 31일간의 모험을 충분히 오래 기억하게 도와줄 충분한 기념품들을 사며 참 즐거웠다. 기념품 덕후의 산티아고 기념품은 우리 언니 덕분에 후했고, 고민 없이 원하는걸 다 사서 배불렀다. 적어도 언니가 첫 산티아고에서 돌아와 느꼈던 기념품에 대한 약간의 후회와 결핍을 나는 겪지 않도록 조언과 지원을 많이 해준 언니의 내리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나에게도 언니처럼 두 번째 산티아고가 있기를, 내가 사면서 참 행복했고, 이렇게 다시 풀어보며 더 따뜻했던 기념품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꺼지지 않게 잘 지켜주기를 바라본다.


언니야 반지 너무 고마워 그리고 이제 나도 내 비석있다!


이전 15화 돌아온 순례자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의 태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