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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Apr 11. 2024

런던에서 드디어 뮤지컬 프로즌을 보다

순례길 다음 런던 (3) 런던 뮤지컬 투어

산티아고 순례길 : 2023년 9월 5일 - 2023년 10월 5일 (6일까지 산티아고)
런던 여행 : 2023년 10월 7일 - 2023년 10월 12일


브로드웨이 스타일이신가요? 웨스트엔드 스타일이신가요?
레미제라블 공연장 뒤의 감성 넘치는 벽화


 런던 하면 뮤지컬, 뮤지컬 하면 런던. 공연가로 가장 유명한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런던의 웨스트엔드 중 난 아담하고 따뜻한 런던의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미국의 브로드웨이가 너무 도로변에 휘황 찬란 정신없는데 비해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낮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인 하나의 뮤지컬 타운 같은 느낌이 늘 접근하기 편한,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언니와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 다음으로 런던 여행을 선택한 많은 이유 중 하나인 뮤지컬에 대한 이야기다. 런던의 음식들도 좋아하고, 미술관들은 더더 좋아한다만 런던에서 보는 뮤지컬이야 말로 우리 일정의 체리 온 탑, 아이스크림 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체리와 같은 하이라이트 요소로 우리 둘이 런던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원래 한국에 살 때도 뮤지컬 공연을 정말 많이 봤다. 그 판타지의 시작은 오페라의 유령으로 시작해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들이 올려질 때마다 보았고, 오나라와 엄기준이 연기자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 막 시작했을 때 이런저런 작품으로 이미 무대에서 많이 보았을 정도로 오랜 시간 뮤지컬을 참 잘 챙겨봤다. 너무 좋아해서 캣츠가 내한공연을 할 때 기자단도 했고, 에비타 한국 초연을 했을 때도 배우들과 김문정 음악 감독님 인터뷰도 하고 기사도 쓰는 공식 서포터도 했으니 학교 다니면서, 일하면서 문화생활을 진심으로 즐기는 재밌는 시절을 보냈다. 승무원 시절 비행을 했을 때도 런던이 나오면 공연부터 예약을 했고, 그렇게 레미제라블과 마틸다도 런던에서 봤다. 백조의 호수로 유명한 메튜본의 가위손도 런던 비행 있을 때 냅다 예약해서 짧은 레이오버에 후다닥 보고 올 정도로 런던은 나에게 공연 보기 참 좋은, 언제나 나와 맞는 공연 하나쯤은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공연 포식을 하기 최적의 장소다.


물랑루주, 위키드, 프로즌



 이번에는 언니와 함께 보기에 둘이 여러 옵션을 두고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3편을 골라 산티아고 순례길을 출발하기 한참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이중 물랑루주와 위키드는 한국에서도 올려진 작품이지만 우리가 본 이유들이 따로 있다. 하나같이 흥미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지만 작품마다 장단점들이 있는건 분명하다. 과연 이중 어떤 공연이 가장 큰 즐거움을 안겨줄까? 지극히나 개인적인 리뷰지만 언니와 나의 추억을 위해 기록해 봐야겠다.


1. 물랑루주 - 과연 영화보다 재밌을까?
겉도 안도 화려했던 물랑루즈 공연장


 우리도 잘 안다. 뮤지컬 물랑루주는 이미 한국에서도 공연으로 올려진 거. 하지만 언니와 나 둘 다 아직 안 본 뮤지컬이고 우리가 물랑루주 영화를 너무 좋아하기에 "이건 음악만 그대로 들어갔어도 절대 망할 일 없다!" 해서 고른 작품이다. 바즈 루어만의 영화 물랑루주는 그 음악이 너무 좋아서 OST 볼륨 1과 2를 모두 사서 수도 없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이 영화로 이완 맥그리거의 팬이 되었고 십 년이 넘게 팬심을 키우기도 했으니 나름 추억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고른 뮤지컬이다.


 일단 세트가 어마어마하게 화려하고 예뻐서 입장하는 순간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곳곳에서 이미 춤을 추고 있는 배우들을 보며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굉장히 들뜬 텐션을 유지하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음악이 아... 이거 조금... 너무 최근까지 유행했던 노래들을 짜집어 넣어놔서 영화의 오리지널 노래들을 다 가져가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이 공연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남자 주인공이 부르는 락 스타일 록센느를 들을 땐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지글러가 모든 관객들과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다 같이 손뼉 치고 노래 따라 부르며 하이텐션으로 공연이 끝낸 건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살짝 관객참여형 느낌이랄까. 나름 똑똑하게 구성된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걸 다시 볼까 하고 생각해 보면 나는 다시 보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나 영화의 예쁜 노래들을 다 들으러 가고 싶다면 별로일 거라고 미리 말할 수 있다. 노래가 너무 리믹스 스타일로 근 몇 년 유행했던 많은 종류의 음악이 정신없이 섞여있어 약간 학교의 장기자랑에 쓰는 리믹스 느낌이 조금 있었다.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가 일단 정신이 없으니 부모님을 보여드리러 다시 찾을 것 같진 않고, 안 본 사람들이라면 20대-40대까지가 적당할 것 같은게 내 소견이다.


2. 위키드 - 15년 만에 재회한 런던에서의 나의 첫 뮤지컬
위키드는 웅장한 맛이 있다


 뮤지컬 위키드도 물론 한국에서 공연하지만 언니와 내가 15년 전 첫 런던여행을 와서 함께 본 공연이어서 또다시 선택했다. 2008년도엔 우리 둘 다 한참 어렸고 그때는 영어도 엄청 잘하진 못했을 때인데 나름 공연계에서 핫하고 모든 신기록들을 갈아치우던 괴물급 신뮤지컬이었기에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연장의 에어컨이 너무 빵빵했어서 둘 다 추워서 덜덜 떨며 보다가 2막에 오즈의 마법사가 센티멘털 맨을 부를 때부터 누적된 피로와 덜덜 떠는데 지쳐 졸기 시작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그래서 다시 보기로 했다. 이제는 영어 가사를 다 알아들을 수도 있고, 더 좋은 자리에서 더 좋은 컨디션으로 어른이 돼서 왔으니 더 재밌겠지?


 결론은 은근히 길다. 이야기를 알고, 노래를 다 알고 왔어도 생각보다 전개가 느리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알파바가 하늘을 나는 장면은 우와 소리가 나오게 되니 누가 위키드를 보려 하는데 재밌냐고 한다면 한 번쯤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할 것 같다. 워낙에 유명한 Popular와 Defying Gravity를 듣는 건 여전히 행복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처럼 한곡 한곡이 다 전설이 된 클래식 뮤지컬들과 비교되게 감흥이 덜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새로운 소재로 이렇게 20년이 되게 롱런할 수 있는 작품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탄탄하고, 결말도 훈훈한 데다 시그니쳐 씬과 시그니쳐 노래도 있으니 혹시나 한국에서 안 봤다면 런던에 들릴 때 볼만한 뮤지컬로 적어도 탑 3 안에는 든다고 생각한다.


3. 프로즌 - 아기다리고기다린 나의 디즈니 판타지 뮤지컬
의외로 소박했던 프로즌 공연장


 뮤지컬 프로즌. 이건 정말 언니와 내가 가장 기대했던 뮤지컬이다. 한국에서 아직 초연을 안 했고, 둘 다 안 본 뮤지컬이며, 평이 너무 재밌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둘 다 디즈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이보다 더 완벽한 뮤지컬이 어딨어! 조금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런던을 떠나기 바로 전 날, 마지막 날 밤공연으로 예약해 즐기기로 했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오로라가 울렁거리는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실제 세트라기보다는 천막에 으로 영상을 쏘는 듯했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물랑루주처럼 기본 세트 골격이 화려하지는 않아 그런지는 몰라도 좀 시시하다 싶었지만 이젠 영상만으로 큰 무대장치 없이 무대를 가득 메꾸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궁금한 것 투성이었지만 제대로 즐기려고 일부러 리뷰도 안 찾아봤기 때문에 큰 기대 속에 프로즌이 1막이 시작되었다.


 성을 표현한 무대도 아주 좋았고, 어린 엘사와 안나를 연기하는 아이들이 정말 귀여웠다. 다행히 우리가 아는 음악들을 그대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단 말이지. 근데 좀 아쉬운 게 아역 안나는 흑인인데 성인 안나는 백인, 엘사와 안나의 부모님인 왕과 왕비도 흑인인 게 조금 이상했다. 이제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나 흑인 배우들이 많은 건 알겠다만 그래도 북유럽 콘셉트에 가족인데 엘사는 백인, 부모는 흑인, 동생 안나는 흑인이었다가 백인... 이거는 좀 관객을 덜 배려한 거 아닌가 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성인인 나도 아쉬운데 어린이 비중이 적지 않은 프로즌 관객 프로필상 어린아이들이 그걸 잘 이해하려는지 의문이 들었다. 인종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캐스팅의 기회를 갖는 것은 좋다. 그리고 북유럽 배경이라도 흑인이 연기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끼리 인종은 맞춰주거나, 같은 하나의 역을 연기하는 어린이 배우와 성인 배우의 인종 정도는 맞춰줘야지. 집중이 덜 될 정도로 의외의 조합에 요즘 디즈니가 자꾸 나가려는 인종차별 없는 메시지와 융합을 너무 멀리 가져가는거 아닌지 살짝 염려가 되었다. 어쨌든 의아함은 잠시고, 1막은 렛잇고의 화려함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과연 엘사가 어떻게 여왕으로 변하는 이 아이코닉한 장면을 재현할지 큰 기대가 되었는데 의외의 LED 처리로 살짝 허무하게 끝났다. 의상 바뀌는 씬 신기하고 멋있고요, 얼음성이 윤곽을 나타내는 것도 좋은데 하이라이트 렛잇고~렛잇고~"의 얼음을 발사하는 효과들이 대부분 LED 라이트들로 큰 모션 없이 처리된 느낌. 내가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덜 디즈니 판타지 같았다는게 내가 받은 느낌이다. 2막까지 다 보고나서 오늘의 프로즌에 대한 짧고 굵직한 리뷰는 ’안나가 주인공이었구나‘, ’내가 너무 어른이 되었나?‘ 이 두 가지다.


기념품들이 정말 다양하고 다 예뻤다


 추천을 해야 한다면 어머, 너 꼭 꼭 봐야 해!"라고는 못하겠다. 조금 시시하다고 할까. 그냥 보는 내내 안나 연기를 하는 배우가 너무 통통 튀고 발랄해서 흐뭇하고 즐거웠다 정도. 의외로 엘사는 대사도 많이 없고 프로즌은 안나가 언니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 대한 내용으로 끝이 나버렸다. 보다가 우와~ 할 몇가지의 공연 장치들이 있지만 아이코닉하기까진 않으니 새로운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볍게 추천할 수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 뮤지컬을 정말 좋아하고,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하면 난 클래식인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 또는 디즈니의 다른 라이온킹을 강력 추천할 테야! 보고 나서 우와~ 또 보고 싶다!, 어떻게 무대를 저렇게 표현했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 적어도 이 중 한 가지는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런던, 뮤지컬의 천국.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오래간만에 런던에서 뮤지컬 몰아보기를 해보았다. 한국에서 뮤지컬 한번 보려면 나름 이쁘게 꾸미고 나가서 미리 좋은 저녁도 먹고 기분도 내며 보았던 공연들을 그냥 순례자 차림의 옷으로 대강 운동화 신고 3일 내내 보러 간 것도 색다르게 재밌었다. 보통 뮤지컬 약속의 대부분은 데이트였었는데 이제 내년에 마흔이 되는 언니와 내가 둘이 팔짱 끼고 총총 걸어 다니며 로비에서 아이스크림 사먹고, 여유 있게 기념품 구경하며 평도 나누고 이런 걸 언제 또 해보겠어. 그것도 런던에서 말이야. 여러모로 참 특별한 데이트였다. 자매사이라 서로 잘 보일 것도,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없고, 둘이 공유하는 이런 취향들을 실컷 누리다 갈 수 있었던 건 런던이라는 도시가 주는 다채로운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브랙시트와 코로나 이후로 물가가 치솟았다 하더라도 이 대도시가 주는 특유의 색깔과 빛은 절대 바래거나 꺼질일이 없을 것 같다. 런던은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누구에게나 매혹적인 도시이다.


 따로 혹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가끔 런던을 찾고는 했지만 언니와 내가 둘만이 오붓이 이 도시에 돌아오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렇게 오래 걸렸다고? 서른아홉 살의 이번 런던 이후 우리 둘이 다시 이곳에 돌아오게 될 때 과연 언니와 난 몇 살이 되어있을까? 그저 너무 나이가 들어 오게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또다시 15년이 걸린다면 우린 54살일 거다) 그날이 와도 아직 언니와 내가 맛있는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 듬뿍바른 따끈한 스콘 하나에 감동하고, 보고싶은 설렘을 주는 공연이 남아있고, 열려있는 미술관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채워나갈 수 있길. 그때까지 언니와 내가 건강한 마음으로 삶에 대한 즐거움을 늘 간직하고 있길 바랄 뿐이다.


엘사와 안나처럼 우리도 언제나 함께하자 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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