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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Apr 09. 2024

지금 런던에서 가장 핫한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순례길 다음 런던 (2) 런던 미술관 투어

산티아고 순례길 : 2023년 9월 5일 - 2023년 10월 5일 (6일까지 산티아고)
런던 여행 : 2023년 10월 7일 - 2023년 10월 12일


 나에게 미술은 행복한 소유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물질적인 소유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미술관에서 전세계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를 마음껏 눈과 마음에 담는 마음의 소유는 늘 배부르리만치 좋았다. 대학생 때도 시립미술관이나 리움, 예술의 전당에서 유명 작가들의 특별전을 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가서 보곤 했고, 늘 나와 동행하는 사람은 지금 산티아고를 막 같이 걸은 우리 언니였다. 우리는 예술과 음식, 여행 등 참 많은 부분에 같은 취향을 공유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남들보다 두 배나 즐겁고 기억도 두 배는 더 오래가는 것 같다.


 비행을 했을 때도 한 달 스케줄이 나올 때마다 나는 내가 가는 데스티네이션의 미술관을 먼저 확인하곤 했다. 암스테르담에 가면 반고흐 미술관을 예약해서 실컷 즐기고 오고, 시카고에 가면 시카고 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를, 노르웨이의 오슬로가 나오면 국립 미술관에서 뭉크의 절규를 보고 오는 등 미술은 내게 소소하고 소중한 취미 중 하나였다.


 런던은 그런 면에서 나와 언니가 좋아하는 뮤지엄이나 갤러리들이 참 많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은 런던의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다 도네이션제로 운영되기에 원한다면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들은 입장료가 적어도 10유로에서 많으면 18유로도 하는데 런던은 무료라는 사실이 여행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베네핏이다. 그런데 그 미술관의 작품들이 정말 유명하기 때문에 둘러보다 보면 '아... 이거 정말 돈 안 내고 봐도 되는 거야?'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거작들에 둘러싸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럴 때는 도네이션을 하면 좋다)


 미술관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 자매가 오랜만에 함께 런던에 와서 둘 다 매우 신났다. 이번에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국립 초상화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더 코톨드 갤러리를 다녀왔다. 여러 번 다녀왔던 곳이지만 오고 또 와도 늘 새롭고 행복한 런던의 미술관 투어. 이중에서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곳은 과연 어디고, 지금 런던에서 가장 핫한 갤러리는 어딜까 생각해 보았다.


1. National Gallery 내셔널 갤러리 - 대부분의 이곳에서 시작한다
내셔널 갤러리


 트라팔가 광장에 있어 어떻게 보면 갤러리계에선 영국의 상징과 같은 내셔널 갤러리 (런던 국립미술관). 나는 이곳에서 반고흐의 그림 5점과,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보는 게 너무 좋다. 물론 내셔널 갤러리는 이 외에도 벨라스케즈, 클림트, 피카소, 세잔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작가의 작품들이 적어도 한두 점씩은 있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작가의 수도 방대하다. 아마 이곳에 있는 그림들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야 될 정도로 걷다 보면 여기 사는 영국인들이 부러워질 정도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와 반고흐의 게 두마리


 그렇다 해서 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미술관마다 각자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과 취향이 있기에 나에겐 고흐의 그림들을 보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고 배부르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해바라기 연작도 있고, 고흐의 의자 그림도 있지만 난 여기서 보는 반고흐의 게 두 마리 그림이 너무 귀엽다. 이 그림을 여기서 처음 봤을 때 '아니, 반고흐가 게를 그렸다고?' 이런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반고흐가 그릴 것 같지 않은 주제여서 한참을 쳐다보다 웃게되는 그림이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인트로에 나오게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더 유명해진 그림인데 그림속의 색깔이나 상징들, 거울 속에 비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그림 하나만으로 20분은 더 이야기할 정도로 재밌는 요소가 많으니 글을 한번 읽고 가면 참 재밌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다시 봐도 너무 행복했던 그림들. 내셔널 갤러리는 언제나 기억하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채워 나올 수 있는 곳이라 너무 고맙다.



2. National Portrait Gallery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 지금 런던에서 가장 핫한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바로 뒤에 자리한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국립 초상화 미술관)는 이름 그대로 초상화들을 모아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이 지금 가장 핫한 이유는 2020년부터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리모델링을 하며 문을 닫았다가 2023년 6월 불과 몇 개월 전에 다시 재오픈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 몇 달은 시간 단위로 예약을 하고 들어갈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고 했는데 이제는 예전의 모습을 찾았는지 내가 봐왔던 조용하고 쾌적한 갤러리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있어 참 다행이었다. 물론 리모델링을 거쳐 시설과 전시공간에도 살짝 변화가 있는 건 당연 하지만 좋은 신진작가들의 초상화 작품들도 많이 추가가 되어 굉장히 새롭고 신선해졌다는 게 나의 전체적인 감상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 보기 좋아했던 앤디워홀의 앨리자베스여왕 2세 그림이 없어져서 (아직 소유하고 있는지, 어디 대여해 줬는지는 모르겠다) 좀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을 상쇄시킬 만큼 재밌고 흥미 있는 그림들이 많아서 한참 잘 즐기고 나왔다.


Alex Katz가 그린 안나 윈투어, Bryan Organ의 다이애나


 이번에는 Alex Katz가 그린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초상화와 Bryan Organ이 그린 찰스 3세 왕과 고 다이애나비의 초상화가 현대적이면서 깔끔한 매력이 있어 유독 눈이 갔다. 앤디워홀이 그린 믹 재거 초상화 한국인이 사랑하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데이비드 웹스터의 초상화도 볼 수 있으니 언제가도 좋아하는 누군가의 초상화를 한두 점 정도는 꼭 만나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1세의 초상화나 앤 불린의 초상화 그리고 이제는 왕이된 킹 찰스의 초상화나 언젠가는 왕과 왕비가 될 윌리엄과 케이트의 초상화 등 개인적으로 왕실 구성원의 초상화들을 보는 게 참 재밌다.


호크니가 그린 데이비드 웹스터, 앤디워홀의 믹 재거


3. Tate Britain VS Tate modern -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 중에 승자는 누굴까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


 한국인들에게는 테이트 미술관 하면 테이트 모던이 먼저 떠오른다. 폐화력발전소를 재활용해 현대 미술관으로 만든 것 자체가 이미 예술이라고 2000년에 개관한 이후에도 20년이 넘게 꾀나 인기가 좋다. 순례길 바로 전이었던 8월까지만 해도 야요이 쿠사마 전시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걸 못 봐서 조금 아쉬웠지만 이렇게 전 세계의 굵직한 아티스트들의 전시전도 개최하고,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나, 르네 마그리트, 앤디워홀, 피트 몬드리안, 마르셀 뒤샹의 작품 등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즐길 수 있어서 꼭 가야 할 미술관 중 하나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예전에 비해 작품 수가 많이 빠진 것 같고, 조금 식상해지지 않았나 싶다. 항상 가지고 있는 영구소장 작품들을 제외하고 내가 간 이 시기에는 특별전도 딱히 흥미롭지가 않아 아쉬웠다.


테이트 모던의 마르셀 뒤샹- 로이 리히텐슈타인 - 앤디 워홀 - 잭슨 폴락


 그에 비해 사람들이 조금 덜 가는 경향이 있는 테이트 브리튼이 이번엔 더 재밌었다. 일단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표작 중 하나인 풍덩 보다 더 커다란 '더 큰 풍덩(The bigger splash)' 하나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걸음을 할 이유가 충분하다. 언니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더 큰 풍덩 그림 앞에서 꾀나 긴 시간을 보내다 왔다. 게다가 누구나 어렸을 때 햄릿의 한 장면인 오필리아가 물에 떠있는 그림을 책의 삽화나 표지로 한 번은 봤을 텐데 존 애버렛 밀리아스의 그 오필리아 그림이 바로 여기 테이트 브리튼에 있다. 이 그림을 보다 보면 한참 책을 많이 읽었던 어렸을 때가 떠오른다. 향수의 그림이랄까.


호크니의  더 큰 풍덩과 밀리아스의 오필리아


 그리고 내 생각에 테이트 브리튼의 화룡점정은 바로 마크 로스코의 언타이틀. 로스코의 그림이 영국의 유명 화가 터너의 그림들만 전시된 방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쓰여있는 설명을 보면 로스코가 터너를 좋아해서 테이트에 그림을 기증할 때 터너의 작품들과 가까이에 전시되길 희망했다고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터너는 영국의 대작가인데 이런 희망을 비췄던 마크 로스코나, 그걸 또 들어주는 테이트 브리튼이나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게 참 재밌는 미술관이다.


로스코의 언타이틀


 테이트 브리튼은 테이트 모던이라는 현대미술관을 따로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이 안에 데미안 허스트나 트레이시 에민의 설치 작품등 다양한 작품들을 가지고 있기에 내가 말한 위 세 가지 그림 말고도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니 런던에서 테이트 모던이 조금 식상하던 참이었다면 이곳도 놓치지 말고 와보길 바란다.


데미안 허스트 작품 뒤로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도 보인다


4. The Courtauld Gallery - 더 코톨드 갤러리에선 어떤 그림이 있을까
더 코톨드 갤러리


 이번에 처음 가 본 더 코톨드 갤러리. 정말 마음에 드는 경험이었다. 언니는 예전에 와봤기 때문에 꼭 다시 가야 한다고 해서 따라나선 길, 입장료는 10파운드로 한화 1만 7천 원이나 하지만 에두아르 마네의 그 유명한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과 반고흐의 귀 자른 후 자화상이 얼굴 마담으로 있는 탄탄한 미술관이라 돈이 아깝지가 않았다. 너무 유명한 그림인데 나도 이번에 처음 보는 거라서 정말 오랫동안 그림 앞에 서서 이리보고 저리 보았다. 이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도 그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와 가지각색의 해석이 존재하기에 보는 재미가 있다. 언니와 내가 서로 알고 있는 내용들도 달라 보면서도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마네- 고흐- 크라나흐- 드가


 더 코톨드 갤러리에는 위기의 주부들의 오프닝에 나오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 그림도 있고 드가, 쉬라, 모네의 그림도 있으니 돈을 낸 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런던의 국가에서 운영하는 다른 미술관들과 다르게 사립이고, 적지 않은 비용을 내는 만큼 사람들이 많이 없어 너무 조용하고 그림에 푹 빠져서 볼 수 있는 건 또 다른 경험일 것이다. 유럽에 사는 사람으로서 대부분의 유럽 미술관이 입장료기 정말 비싸다. 그리고 마드리드의 프라도나 피렌체의 우피치, 파리의 루브르만 떠올려봐도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도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미술을 감상하기는 힘든게 사실이다. 이건 관람이 아닌 관광 수준으로 떠들썩 한 곳에서 밀려가며 그림에 곁눈질만 주고 지쳐 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수준 높은 무료 미술관이 널린 런던에서 이렇게 돈을 받는 미술관들은 정말 다른 세상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듯한 차원이 다른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추천한다. 관광객들은 무료로 개장 하는 다른 미술관으로 분산되었는지 여기는 기침하는게 눈치 보일 정도로 조용하고, 한 전시관에서 열명 이상의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게 프라이빗해서 너무 좋았다. 그림의 질과 다양함도 좋지만 유럽에서 특히 런던에서 찾기 힘든 조용한 미술관에서 온전하게 집중해 그림을 볼 수 있는 재미난 경험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 코톨드 갤러리 아주 추천이다.


분위기 있고 조용한 더 코톨드 갤러리 내부


그림을 몰라도 런던에선 실컷 즐겨야지

 예술은 주관적이다. 내가 그림을 접할 때 내가 삶에 놓인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같은 그림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대학생 때 한참 앤디워홀과 반고흐를 좋아했을 때 모네의 그림은 너무 뿌연 것 같아서 별로라 생각했고, 샤갈의 그림은 막 그린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파리의 오랑주리에서 수련 컬렉션을 마주한 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그림에 부여하는 보조의 힘을 느꼈고, 아름답게 전시해 둔 수련 연작이 너무 예뻐 감동했다. 그 이후 모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림의 의미와 상징성을 더 알게 돼 가며 퐁피두에 있는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 신부'는 다시 보러 가고싶은 작품으로 기대되는 등 나이가 들며 삶에 대한 나의 경험이 다양해질수록 그림에 대한 취향과 스펙트럼도 함께 다양해지고 있음을 몸소 느낀다. 그런 면에서 미술은 틈이 날 때마다 자주 보는 게 참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왜 그림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그림에 대한 흥미가 선제되어야겠지만 어느 미술관이고 마음을 비우고 산책하듯 걷다 보면 내 눈이 가고,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하나는 꼭 만나게 돼있다. 이게 바로 모든것의 시작이다. 이번 런던에서도 알고 싶어진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 참 행복했고, 이제 돌아가서 가끔 그림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이들의 전시회가 있으면 방문하는 등 더 재미난 경험들을 이어갈 건 분명하다. 이렇게 한 번의 방문이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의 문을 열어준다.


 런던은 여러모로 재밌는 곳이지만 미술관에 있어서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는 데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런던의 시스템에 너무 감사하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운 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보고 싶을 때 런던을 또 방문해야지 뭐! 벌써 다음에 다시 돌아와 미술관을 주구장창 볼 생각에 즐거워진다.


 미술에 대해서 나는 평생 아마추어겠지만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보면 행복하고, 다음에 새로운 경험을 할 것에 대한 기대를 갖고 사는게 참 좋다. 어느곳을 가도 어떤 미술관이 있을지 설레고 궁금해진다. 내가 잘 알아서 보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즐거워서 보러 다닌다는 게 얼마나 마음 가벼운지 모른다. 그러니 런던에 오면 신나게 미술관 구경을 하자. 해외 생활 12년 차인 미술관 러버인 나에게도 런던은 한 도시에 너무 좋은 미술관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최고의 놀이터니까


 산티아고에서 매일 산과 들을 걷기만 하다가 이렇게 미술관에 둘러싸여 지내다 보니 순례길을 걸은 게 더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순례자에서 여행자로 순식간에 바뀐 내 모습에 적응할 틈도 없었지만 미술관이 주는 기쁨들이 크니 뭐든 시간이 지나면 소화가 되겠지~하고 눈과 마음에 한가득 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순례길이나 런던 여행이나 뭐든지 화이팅! 걸을 땐 열심히 걷느라, 놀 때는 신나게 노느라 여러모로 바쁜 나와 언니에게 뭘 하든 온전하게 그 순간을 즐기자고 셀프 응원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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