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나 1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저는 20년 5월부터 22년 9월까지 아주 긴 휴직을 했습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작했던 때, 저는 임신 중이었으며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상태였지요. 휴가로는 감당할 수 없었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육아휴직으로부터 시작했다
휴직기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우선 시간이 아주아주 많았어요. 사실 직장인이 하루에 일에 쓰는 시간을 셈하여 보면, 출퇴근 시간, 업무시간, 점심시간 포함 하루 10-11시간 정도는 금방이잖아요? 그동안에는 하루의 절반을 일하는 데에 썼는데, 휴직을 하니 그 시간이 모두 온전히 제 것이었죠. 시간에 쫓기지 않아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아이와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와, 정말 좋다,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바랬습니다. 그리고 복직시기가 다가오며 이 바람은 서서히, '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거지?' 하는 반문으로 바뀌었죠.
퇴사가 바로 떠올랐던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지금의 내 행복을 이루는 중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곱씹어 보았습니다. 나중에 복직해서 일을 하면서도 그 행복을 최대한 안고 가고 싶었거든요.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잖아요? 일을 하면 지금처럼은 할 수 없을 테니, 나와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이것만은 꼭 유지해야겠다' 하는 점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아이들을 내 손으로 하원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원할 때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요. 아이가 마치 저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엄마! 하며 환한 미소로 뛰어나오는 그 순간이 너무 좋습니다. 집에서는 투정도 부리고 떼도 쓰지만, 하원할 때만은 대부분 안 좋았던 감정을 싹 다 잊어버리고 좋아라 하면서 나오거든요. 달려 나오는 아이들을 두 팔로 덥석 안아서 그 무게감을 느끼면 참 뿌듯합니다. 아이를 꼭 껴안고 잠시나마 아이 냄새를 맡으면 행복하고요. 잠깐 떨어져 있다가 만나서 그런지, 아이가 더 반가운 느낌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다시 만난 엄마가 격하게 반겨주니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어요. 저는 우리 가족의 일상적인 저녁 풍경을 사랑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빠에게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가서 안기는 모습도, 비록 밀키트일 때가 많지만 네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모습도요. 저녁을 먹은 뒤 모두가 놀이터로 나가 잠깐 노는 것도, 또 집에서 꽁냥꽁냥 뒹굴며 몸으로 노는 시간을 갖는 것도 모두 참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하루의 끝에, 비로소 사랑하는 우리 가족 모두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그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매일 내 것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숨 가쁜, 풀타임 워킹맘의 일상
달콤했던 휴직기간이 지나고, 복직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의 등하원시간과 저와 신랑의 출퇴근 시간을 맞춰보며 복직 계획을 짜보았습니다. 등원은 신랑이, 하원은 제가 하는 것으로 하고요. 한참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는데, 아... 제가 아무리 일찍 출근을 해도, 하원시간이 너무 늦어지더라고요. 회사와 집까지의 거리가 멀었던 탓에, 제가 아침 7시에 출근하더라도 간신히 저녁 6시 하원이 가능했습니다.
그뿐일까요. 출근을 시작하면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일하고 와서 또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죠. 집안일은 외주를 줄 수 있지만 육아는 오롯이 저와 배우자의 몫이니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지금도 힘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거든요. 이 모든 걸 어떻게 해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설사 해내더라도, 체력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지쳐갈지 그려졌고, 오래 버티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요, 좀 이상하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아이를 낳고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분명히 제가 다 해냈던 일이었거든요. 그때는 일도 육아도 살림도 어떻게든 다 했던 것 같은데... 물론 무척 힘들기야 했지만 어쨌든 하기는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둘이어서 그런지, 이 모든 걸 어떻게 다 꾸려나갈 수 있을지 계획조차 짜지질 않았습니다. 정말 막막하더군요. 아이가 둘이면 할 일이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 네 배가 된다는 선배들의 말이 이런 거였나, 싶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욕심일 수밖에 없다면
한참을 출퇴근시간과 등하원시간을 견주어보다가, 마침내 인정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의 출퇴근 시간과, 내가 원하는 아이들의 하원시간을 양립할 수 없다는 걸요. 출퇴근하면서는 아이들을 5시에 하원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양가부모님이나, 등하원도우미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습니다. 아니면, 그래요, 사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6시까지 맡기면 해결될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요. 저도 아이가 하나였을 때 그렇게 했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2년 간 온전히 내 손으로 아이들을 길러내며 겪은 행복이, 그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요. 삶을 버텨내지 않고, 삶을 누리고 싶었어요.
저는 그동안 제 회사생활과 출퇴근시간을 중심에 두고, 그에 맞춰서 육아하고 살림할 계획을 짰습니다. 그 관점이 처음으로 뒤집힌 순간이었어요. 아이들의 등하원시간에 맞춰서 삶을 계획하고 싶었습니다. 나와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 일상의 시간표를 짜고 싶었어요. 이건 저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고, 또 제 안의 분노에 답하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복직 이후의 삶을 끊임없이 계획해 보다가 마침내 화가 나고 말았던 겁니다. 부모가 아이를 5시에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싶다는데, 그게 그렇게 욕심이야?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던 거지요. 내가 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은 게, 욕심이 되면 안되잖아요. 이렇게까지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그 어쩔 수 없음이, 저는 눈물 날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어.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육아휴직 기간 중에 '다르게 사는 삶'을 이미 살아버린 경험이, 그때 알아버린 행복이 저를 자꾸만 부추겼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렇게 살아갈 생각을 해야지, 회사가 그리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에 저를 맞춰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어요.
그렇게 홧김에, 저는 퇴사를 처음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2년의 육아휴직 동안 남편의 급여와 저의 육아휴직 급여(보조금)로만 생활하면서 제 월급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던 것도 한몫했었던 것 같아요. 많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럭저럭 살만했거든요. 코로나 기간 중이라 외식비며 문화비가 줄어들어서 그랬는지,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서 적응이 되었던 건지, 어쨌든 살아지기는 살아졌었습니다. 100만 원도 채 안 되는 육아휴직 급여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그만큼은 벌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이렇게, 복직을 고민하던 저는 '퇴사'를 옵션에 두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