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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다이앤 Sep 24. 2023

정말로 그만둔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마흔 즈음에서야 그려 보는 '하고 싶은 일'

퇴사, 를 생각하면 해방감이 들지만, 퇴사 이후를 생각하면 그 해방감을 압도할 만큼의 불안감이 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면, 묘한 설렘도 듭니다. '새 출발'에 대한 기대 때문이겠지요.



마흔 즈음의 새 출발이란


생애 처음으로 '진로 탐색'을 하던 대학교 3-4학년 시절을 기억합니다. 사회생활에 대한 경험치가 1도 없는 상태에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 같아 이런저런 알바며 인턴 생활을 해보았었죠. 선배들과의 대화 자리에 따라다녀 보기도 하고요. 기자, 전시기획자, 통번역자, 외교관, 마케터... 좀 멋있어 보인다 싶은 직업은 다 조금씩 건드려봤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안정적인 월급을 주는 지금의 회사에 취업하는 것으로 진로를 결정했지만.  시절, 제 진로고민에불안함보다 설렘이 더 강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이요. 그때는 내가 원하면, 내가 도전하기만 하면,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끝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일단 도전해 봐야지!라고 생각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스물몇 살의 나 자신은, 굉장히 용감한 데다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마흔 언저리에서 새롭게 진로 고민을 하는 나는 왜 이렇게 초라한 것 같을까요. 설렘보다 불안감이 훨씬 컸습니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도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갖고 있는 게 뭐가 있지, 하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었어요. 비록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자리와 연봉을 떠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지금 일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기는 할까 하는 마음에 답답할 때, 책 한 권을 접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퇴사'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이런저런 책들을 들춰볼 때였습니다.



저 역시 회사를 그만둔 누군가를 찾아가 간절히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땠는지, 뭘 하셨는지요. 먼저 그 길을 갔던 열 명의 이야기는, 성공이나 실패라는 잣대로 선을 그을 필요 없이 나름대로 다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는 모습들이라 좋았어요. 퇴사에 환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현실적일 수도 있겠지만, 퇴사로 인한 불안감이 컸던 저에게는 작은 용기를 주는 책이었죠.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그냥 살아가면 되는구나. 내가 정말 원하면 사업을 하든 공부를 하든 하는 거지. 해보고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뭐 어때.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 인생이 망하지 않아. 다시 만들어가면 되지.



조금쯤은 꿈을 꾸어봐괜찮지 않을까요



사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뭐 하지,라고 처음 생각했을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이들 대상의 공부방이라든지, 부동산 중개 자격증을 따는 것이라든지, 무인 가게 창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었거든요.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시간을 덜 쓰고, 그래도 어느 정도 수익이 나는 걸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뭘 해도, 당장은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 돈이 아니라 일에 초점을 맞추는 건 어떨까.



아주 오랜만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로또당첨이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노후 준비를 미리 한다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평생 해도 안 질릴 것 같은 일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시간과 노력투자해서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인정할만한 수준이 되면, 돈은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나이브한 믿음을 갖고요.


이제 와서야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는 은, 다소 부끄럽고 조금 막막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낯설었어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는 일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는 결국 나만이 답해줄 수 있는데, 사실 우리, 스스로와 진솔하게 대화해 본 적이 손에 꼽지 않나요. 뭘 하고 싶니 라는 질문에 자기 검열을 하지 않고, 솔직하고도 충실한, 나다운 답변을 얻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생을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냐면요. 글 쓰고 말하는 일입니다. 제 생각을 글로 써내고 싶기도 하고, 또 사람들 앞에서 말로 전달하고 싶기도 요. 공감을 얻고 싶고,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더 좋을 것 같고요. 글과 말로 다른 사람에게 가 닿고 싶습니다. 그렇게 연결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제 삶이 의미가 있을 것 같고요.


이 한 가지 답을 얻은 것만으로 세상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배우자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퇴사를 논의했던 동기에게 이 말을 하면서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고 또 설레었습니다. 희망찼다,라는 표현 그대로였을 거예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고,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살았었습니다. 아, 내 삶은 이런 모습으로 이미 완성되었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이렇게 아이를 키워내고, 회사를 다니고, 휴가나 여행 같은 소소한 이벤트를 겪어가면서, 안정적이고 무난하게.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같은 일이 생기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내 삶에는 이제 더 이상 모험과 도전 같은 단어가 어울리지 않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참, 뜻하지 않게. 결과만 보면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과정을 보면 또 그럴듯하게도. 저에게 새로운 지향점이 생겨버렸네요. 마흔 즈음이라는 나이에, 마치 두 번째 인생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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