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쎄쓰 애듈란 Aug 29. 2024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서 (상)

'주 3일 러닝'


그러니까 그 3가지 버켓리스트를 쓰던 날 아침.

나는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심장이 쿵쾅거리게 뛰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줄을 맞춰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가슴이 조여지며 다리가 무거워지는 순간에도 '걷지만 말라'라고 나를 독려하던 그녀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살아있는 내 심장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주 3회 러닝 하겠다는 계획을 성실하게 완수하지는 못했다. 너무 춥다고, 혼자는 무섭다고, 너무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고,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등등 핑계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들과도 달렸고, 남편과도 나의 반려견 싸미와도 달렸다. 그중 내 최고의 러닝메이트는 세계여행 중 우연한 인연으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던 프랑스인 여행객 F였다. 


 F는 나와 동갑이었고, 아이들의 나이도 같았다. 나의 영어는 무척 비루하여 그녀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이해했다. 

남편과 아들과 달렸을 때는 그들의 상태를 살피고 맞추느라 오버페이스를 하기도 하고 금세 약한 모습을 보이며 뛰다 말고 걷기도 했었는데 F와 달렸던 날은 버켓리스트를 만들었던 그날 아침처럼 나의 속도대로 힘들지만 걷지는 않는 속도로 3킬로를 기분 좋게 완주했다. 그날 나는 잊고 지냈던 하나의 감각이 살아났는데 그것은 적당한 거리감과 긴장감을 주는 관계가 나의 성장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었다. 




'춤 배우기'


나는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합장부와 무용부를 하고 싶었다. 들어가고 보니 두 곳 모두 단복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비용을 많이 필요로 했다. 무용부는 다행히 첫 모임에서 안내를 받아 바로 포기할 수 있었는데, 합창부는 연습이 한참 진행 된 후에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안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합창부를 그만두기로 했다. 당시 합창부 담당 선생님은 우리 학교 교감선생님이셨는데, 직접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선발하고 연습을 진두지휘하셨다. 나는 메조소프라노 파트가 되어 가장 첫 번째 줄 중앙에 서게 되었다. 교감선생님께 합창부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을 하는 내 눈에는 흐르지 못한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그런 나를 할아버지 교감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시며 이제와 센터가 사라지면 어떻하냐시며 단복은 걱정 말고 계속 같이 노래해 보자고 말씀하셨던 것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해 우리 합창부는 창단 첫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합창대회에서 2등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선생님의 적절한 도움으로 지속할 수 있었던 '노래'는 나의 첫 성취의 기억이 된 반면, '춤'은 여전히 나에게 결핍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버킷리스트에 적어둔 '춤 배우기'는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작은 시도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한 유일한 버킷리스트이지만, 춤을 배우는 나를 상상하면 가슴이 뛴다. 언젠가 꼭 이루고야 말 테다.


작가의 이전글 무기력을 넘어 깨어난 본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