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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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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에게 May 15. 2024

실은 변한 게 아니라

서른 예찬

어른들이 으레 하는 말 중에 ‘사람 안 변한다’라는 말이 있다. 


서른 해의 삶을 살아오며 그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감정적으로 늘 낯선 상황을 마주했던 20대를 지날 때는 너무 많이 변했고, 서른이 된 지금은 그렇게 격변한 결과로서의 ‘나’로 살고 있다. 하루하루 달라지느라 지친 만큼 간신히 거머쥔 이 불변이 소중하다. 이제야 한숨 돌린 느낌이 평안하다.


예전의 나는 사람에 따라 자주 모습을 바꾸고 숨기고 그랬다. 정적인 사람 앞에서는 진중한 모습을 보이고, 쾌활한 사람 앞에서는 분위기에 맞춰 더 우스꽝스러워졌다. 그 중간쯤이 실은 나의 모습인데. 가끔 너무 조용한 사람 앞에서 내적 하품을 하며 장난끼를 참고, 고민 없이 밝은 친구들 앞에서는 마음이 어두워도 나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외로웠다. 이 별도, 저 별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세상에 나랑 맘이 맞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아. 하루 종일 누구인지 모르겠는 나에게 느낀 낯섦을 상대 탓으로 슬그머니 돌리는 내가 구차했던 어느 어느 날들.


그리고 지금. 아쉽게도 여전히 자잘한 연극을 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렇게 무리하지 않는다. 밀도 높은 방황의 시간이 헛되진 않았는지 미우나 좋으나 나에 대한 꾸준한 캐해(캐릭터 해석)로 인해 알게 된 특성들이 있다. 어색할수록 말이 많아지고 성격 좋은 척한다는 것. 돌려는 말해도 거짓말은 잘 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게 돌려 말한 것조차 남들에 비해 많이 선명한 편이라는 것도. 즉흥적으로는 대담하지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소심해진다는 것도. 불안해질 때면 남의 의중을 넘겨짚어 지레 상처받는단 것도.


언제나 농담만 하던 친구에게 진지한 얘기를 하고, 늘 철학적인 얘기만 했던 친구에게 유치한 모습도 보여준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사람들이 뜻밖에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했다. 대부분은 본인이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시큰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은 나를 바꿀 수 없단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이 가장 큰 수확이다. 내가 보는 그들의 모습도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잔뜩 날이 서있던 10대에 처음 만난 친구들이 온화하고 다정해진 내 모습을 보고 참 많이 변했다고 말해주었다. 사실은 그때도 너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었는데,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진심으로 얘기한 순간 끝없이 헤매던 어린 나의 손을 잡은 것 같았다. 서른의 나는 이렇게 느끼한 말을 서슴없이 참 잘하네. 그 사실이 못내 뿌듯하여서 어쩐지 들떴다. 내가 오래 찾던 내 모습이 그냥 나였단 게 반갑고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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