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언제 될 수 있나요
10대일 때는 좋은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이 되면 세상이 완전해질 줄 알았고 20대에는 멋진 직장을 가지면 끝일 것 같았다. 하지만 30대인 지금, 삶이란 ‘이제 다 됐다’하고 한숨 돌리는 순간 또 다른 걸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애벌레인 내 모습이 나비가 되어 힘껏 날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언덕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서른은 매일 같이 쪼그라들고 탈피하고 약해지고 강해지길 반복한다. 틈만 나면 내 안에 뭔가가 열등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타인과의 비교로 이어지고 조급함을 부른다. 사실 나는 그 힘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난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 그 마음이 귀찮고 성가시다가도 떼놓을 수 없는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의 나도 그랬다. 이 정도가 나의 최선이자 최대라며 밍기적거리고 있었는데 또 다른 한계를 본 것이다. 멈춰 있으면 그저 고이는 구나. 창작의 영역은 그랬다. 이만하면 무난하게 현상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던 교만이 허를 찔러 엄청나게 구린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 근데 또 나는 그걸 회피해버리기에는 직업인의 포지션에 와 있었고 어떻게든 돌파해야하는 것이다. 미처 꺼내보지 않았던 ‘더 훌륭한 사람’을 관찰하니 내가 얼마나 멀었는지 다시 알게 되고. 결국 잠 못 이루며 다시 갈았다. 좀 더 잘해봐. 난 더 잘하는 네가 보고 싶어.
나쁘게는 끝없는 욕심, 좋게는 프로페셔널해지고 싶단 마음으로 한 일주일 넘게 잠을 못 이뤘다. 토해내듯이 에너지를 쓰고 나면 당연히 상흔이 남는다. 나 같은 경우는 열상이다. 피부 껍질이 벗겨지고 울긋불긋하게 데인 자국이 남는다. 그러면 곧 병이 나겠구나 알게 되고, 몸살을 앓는다. 침대에 누워서 대체 적당히가 없는 나에 대해 탓하다가도 그렇게 또 불태우는 나 자신에 안도한다. 아직은, 내가 열정이 있구나. 나를 꺼멓게 태우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았구나. 어쩌면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감각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은둔의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은 각질이 떨어져 나가듯이 피부가 보드라워지고 몸에 조금씩 기운이 솟는다. 그 기운으로 일어서면 그제야 뜨겁게 식는 탈피의 잔해들. 아 나에게 또 한 번의 탈피가 지나갔다. 그게 현실적 문제이건, 감정적 문제이건. 그러고 나면 드디어 제대로 된 일기를 쓸 수 있게 된다. 이번 탈피에서 내가 배운 것들과 특히 괴로웠던 것들. 그렇게 적고 나면 바닥까지 꺼졌던 용기가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이토록 미련한 탈피의 삶. 그 과정이 후련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내가 젊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그러니 아직은 나의 모든 열등함과 탈피를 응원해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