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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Apr 07. 2021

우울장애치료 10개월차입니다.

그동안 나에게 생긴 변화들

첫 내원 시에는 우울증이 확실해 보였지만 진단명 확진 전이기도 했고 내 체구가 작기도 해서 약을 초등학생 저학년 수준으로 처방받아왔다. 

그다지 약효가 체감되지 않았다. 


진단명 우울장애 확진 이후에는 약을 조절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초등학생이 먹는 수준이었다. 역시 체구가 작은 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며 그동안의 경과를 반영하여 다시 조절된 약을 받았다. 

새로운 약을 열흘간 먹어보고 경과를 보고 다음번 내원 시 또다시 약 처방을 조절받았다. 

새로 받은 약을 닷새쯤 복용한 후에, 전에 없던 신체적 변화가 체감되었다. 


아울러 우울장애 치료 10개월간 나에게 생긴 많은 변화들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의욕

그저 누워만 있고 싶고 만사가 귀찮았던 지난날에 비해 조금이나마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욕이 활활 불타는 것은 아니지만,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만한 에너지가 몸속에 감돌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2. 식욕

식욕이 전무해서 먹는 것도 귀찮았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고 있는 지경에도 허기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젠 그냥 알아서 뭔가를 챙겨 먹고 있다.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밥을 먹어야겠다는 의식의 흐름이 있었던 것도, 허기짐을 참을 수가 없어서 무언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이미 무언가를 먹고 있다. 

언제나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매 식사시간이 고민이고 스트레스였는데 (가족들 끼니를 챙겨야 하는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없으니 식사로 무얼 꺼내놔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음식에 대한 강렬한 끌림이었다. 

대단한 음식도 아니었다. 제과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쭉한 크림빵이었다. 

그리고 크림빵 한 입을 베어 먹는 순간,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허허.




3. 자책감, 죄책감으로부터의 (어느 정도) 해방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안 그래도 없던 기운이 쭉 빠져서 저녁 설거지를 다음날 아침까지 미뤄두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죄책감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닌 괴롭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의욕은 없으니 몸에 에너지는 없고, 누워는 있는데 마음은 괴로운 상태였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 에너지가 없는 게 아니라 가급적이면 그 날 설거지는 그 날 다 끝마치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미뤄두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이제는 그냥 마음 편하게 쉰다. 몸도 편안하게 마음도 편하게, '내일 하면 되지 뭐~ 어차피 내가 할 건데~'. 

똑같이 설거지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이다.




4. 지난날의 나를 용서, 위로

앞선 글에 나왔던 내용이다. 

상처 받고 비난받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어른이 된 내가 이제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자존감 낮았던 나의 행동을 스스로 비난하고 자책하던 지난날의 나를 이제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면 안쓰럽고 가엾기만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비로소 따뜻하게 품을 수 있게 되었다.




5. 현재를 살아가는 힘,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

20년 전의 나를 떠올리면 우울했던 얼굴과 방 안 공기의 무게마저 느껴질 정도로 그때의 우울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로 돌아가서 힘겨워했던 나를 꼭 안아주고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전해주고 싶지만, 나의 10대와 20대를 다시 가뿐한 마음으로 지내보고 싶지만,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금을 충실히 살아내는 일 밖에 없다. 

또다시 20년이 흐른 후에 지금을 돌아봤을 때는 밝은 얼굴의 내가 미래의 나를 반길 수 있도록.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지금의 나만이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6. 가정의 평화

사소한 일에는 예민해지거나 짜증이 나지 않게 되었다. 

윗집의 소음에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역할을 더 잘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투정과 끝도 없는 요구에 좀 더 인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역할을 잘 해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던 지난 8년에 비해 좀 더 푸근하고 여유로운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지 9년 차에 비로소, 의무감과 강박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들, 남편에게까지 잘 된 일이다. 

이전에도 불화에 시달렸던 가정은 아니지만, 지금은 보다 더 평화롭고 따뜻한 가정이 되었다.




7. 최종적으로, 내 행복의 추구

유한한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어가며 애쓰면서까지 굳이 행복을 추구해야 할 필요는 없다.

더위와 추위, 햇빛과 비, 활동과 쉼 등 양극단이 적절한 비율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 행복한 사람이 있는 만큼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야 사회와 세상의 조화가 맞춰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꼭 나 자신일 필요는 없다. 


당장 하루 동안에도 희로애락이 교차되는데 세상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내 인생을 통째로 불행 쪽으로 내몰아갈 이유는 전혀 없다. 

인생이라는 기나 긴 항해 여정 가운데 순풍도 역풍도, 잔잔한 물결도 거센 파도도 있을 수 있다. 

단지 중요한 것은 그 배의 키를 잡은 내가 최종적인 방향을 불행이나 우울 말고 행복 쪽으로 이끌면 되는 것이다. 

도착한 그곳이 비단 작은 섬일지라도, 어떠랴!


상처, 위로, 도움, 거절 등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없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은 그렇지가 않다. 

나의 행복은 오직 나만이 나에게 줄 수 있다. 

현재는 물론이오, 과거의 나에게도, 또 미래의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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