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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May 07. 2021

왜 살아야 하는가? -질문부터가 틀렸다.

삶의 의미를 찾는 당신에게.

나의 오랜 최측근 지인이 요 근래 부쩍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주로 우울하거나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허무감에 휩싸였을 때 하기에 딱 좋은 생각거리이다.


이에 대해 내가 사춘기 시절부터 앞날이 불투명한 20대를 지나, 사회생활과 육아의 세계를 살아오며 고민해온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내 얘기 한 번 들어보자.




일단, "'왜?'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부터가 잘못되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왜'는 필요하지 않다.

나왔으니 살아야지 별 수 있나, 죽지 않으면 사는 거지.

내가 이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도 아닌데 기왕 나온 거 나왔으니 사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왜'가 아니라 '어떻게'로 의문사를 정정해야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이를 고민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기왕 태어났으니 살기는 사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기왕 사는 내 인생,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

기왕 사는 내 인생, 어떤 온도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 것인가,

기왕 사는 내 인생, 어떤 언행을 하며 살 것인가,

기왕 사는 내 인생, 어떤 영향을 끼치며 살아갈 것인가,

기왕 사는 내 인생,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기왕 고민할 내 인생, '왜'보다 '어떻게'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중요하고 유용하다.




어차피 주어진 내 몫의 유한한 내 삶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나는 계속 늙어간다.

왜 늙어가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허무함에서 빠져나오기에 더욱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인생의 허무함에 빠져있다면,

우울감이 발끝부터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면,

의문사부터 바꾸고 다시 고민해보자.

"왜 살아야 하나?"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그리고 내가 나 자체로서 존재하기만 한다면

내 삶의 의미는 주변인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부여받게 된다.

내 존재의 의미는 내가 아닌 내 주변인들의 몫이다.

행여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가가 궁금하거나 걱정된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형태의 나로서 존재할 것인지를 고민하자.



덧붙여, 나 역시 내 주변인들에게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내가 긍정의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 사람을 내 곁에 두자.

동시에 나에게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과 함께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도록 하자.

나에게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과 굳이 내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공들여가며 낭비하지 않는 편이 서로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더욱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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