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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Feb 26. 2022

카멜레온 연애사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동물에 비교해보라는 숙제를 받아 들고 나는 상당히 난처했다. 도저히 닮은 동물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니가 크기 때문에 토끼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그것 말고는 토끼와의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TV광고에서 카멜레온을 발견했다. 그 당시에 처음으로 잉크젯 프린트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카멜레온이나 깃털이 빨간 앵무새가 광고에 자주 등장했다. TV 광고에서 카멜레온이 자신의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능숙하게 본인을 숨기는 저 모습은 바로 나다!'라고. 


  어릴 때는 카멜레온 같은 모습이 멋있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환경에 맞게 자신의 색을 바꾸는 사람이라니! 그런데 철이 들고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은 좋게 말하면 착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취향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연애 시장에서 상대에게 맞춰주다 호구되는 사람이자, 애인을 답답하게 하는 사람 정도 되겠다. 그게 나였고, 친구들 사이에 꼭 한 명쯤 있는 호구 중에서도 상당한 레벨을 자랑했다.


  "니는 내처럼 키가 작고 그래 가지고 소개팅으로는 승산이 없다. 공학을 가야 된다. 그래야 연애라도 한번 해보고 졸업하지." 대학에 진학할 때 엄마는 말했다. 역시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다. 성비가 상당히 불균형한 공대에서 여학생들은 꼭 몇 번씩 고백을 받는다. 나도 그랬다. 길가다 번호를 따인적은 없어도, 과 친구와 그냥 같이 피시방을 가거나 떡볶이를 먹었을 뿐인데 고백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들은 단골 멘트는 "너는 참 착하고 바른 사람인 것 같아서 좋아."였다. 이렇게 말해준 친구들과는 결국 일말의 발전도 없이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 이유는 당시에 내가 어딘가 뒤틀려있었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칭찬이 '나를 잘 챙겨줄 것 같다'로 확대 해석되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런 말을 들으면 갑자기 마음에 선을 확 긋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좀 더 전성기를 즐기지 못한 내가 연애 멍청이였다.


  나는 나에게 '활기차다', '멋지다'이런 칭찬을 해준 남자들과 연애를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끝이 안 좋았다. '혹시 내가 활기차지 않으면, 또는 멋지지 않으면 사랑해 주지 않겠지?'라고 생각했고, 이런 불행한 예감은 언제나 맞아떨어졌다. 그들은 나에게 점점 더 원하는 모습을 강요했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는 이별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그들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 사전에 '밀당'이 없기 때문에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카멜레온처럼 그들에게 녹아들어 나의 진짜 색을 보여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나는 '잘못도 없는 내가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그 멍청하고 지질한 과정 속에서 하나는 배웠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관찰한다. 그러면 그 대상의 사소한 습관이나 특이한 취향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것은 사랑을 증폭시킨다. '어머! 이런 모습도 있다니 너무 귀여워!'라고 말이다. 귀여움은 무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눈에 들어온 모습은 대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불행하게도 사랑을 시작한 나에게는 특별한 취향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취향이란 녀석들은 연애만 시작하면 사라졌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따라 보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그 사람이 원하는 데이트를 한다. 그가 나를 자세히 관찰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아주 빠르게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의 색을 보호색으로 취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내가 그 세계의 일부분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내가 왜 취향이 없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냥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랬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너도 그렇지만 '나'도 그렇다. 사랑 속에서 나는 나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다지 희생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만을 생각한다. 생각 없이 희생하는 척하는 카멜레온인 채로 사랑을 했다. 결국 그 사랑의 끝에서 나의 원래 색을 기억하는 존재들은 영영 사라져 버렸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나까지.


  요즘은 내 안의 그 많은 상처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나도 이제 나다운 사랑을 해야지라고. 내 연애 사전에 내가 좋아하는 취향들을 빼곡하게 채워 넣을 거다. 어차피 나는 이번 생을 카멜레온으로 태어나서 영롱한 나만의 색을 가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어떤가. 이왕 숨길 거면 내가 좋아하는 색과 모양으로 잘 어울려 살아야지. 그리고, 알록달록 오밀조밀 사랑을 하는 호호할머니가 되기를.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 나태주, 풀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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