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새끼 아니거든?!
육아차차 육아 육아 # 19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 부모님은 욕설을 금하셨다. 동물이나 숫자가 등장하는 거친 단어에는 발작처럼 대응하셨으니 그게 무서웠던 어린 나는 차마 입에 담을 엄두도 못 냈었다. 그래 봐야 시간이 흘러 욕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선 급기야 끊지 못하게 되기 전까지의, 마냥 순진하던 시절 얘기다.
그 어린 시절에 의아했던 건 우리에게 욕설을 금하는 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새끼'라는 단어로 칭하는 것이었다. 오해 마시기 바란다. 심한 학대에 노출된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건 아니니.
실상 '시끼'에 가까운 저 단어는 부친이 우리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이눔 시끼, 저놈 시끼. 손놈 시끼. 뭐 이런 따위의. 동생과 나는 으레 왜 아버지는 욕을 하느냐 물었고, 거기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빠는 어른이잖아."
다소 어이없는 답변에 나도 어른이 되면 마음껏 욕을 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하긴 했다. 그래서 해금된 후로 짜릿한 욕의 맛을 더 놓지 못한 건가. 어쩌면 그때 무의식 중에 머리에 각인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소름 돋게도, 애를 둘 낳고 정신 차려 보니 그 언젠가 아버지와 똑같이, 우리 애들과 같은 대화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애들을 이 눔 시끼, 저눔 시끼 하고 있고 딸과 아들은 내게 악을 쓰며 덤비고 있었다.
"아빠가 나쁜 말 하지 말랬잖아. 우리 시끼 아니거든?"
조심한다는 게 이렇다. 아무리 애칭이라도 '새끼'는 엄연히 욕이니 이미 오래전에 서로 금하기로 했지만, 귀여워 미칠 지경의 꼬마들을 어쩌고 싶은 마음을 담아 부르기에 이만한 단어가 없다. 사실 이젠 좀 컸다고 긴장이 풀려 이러는 거다. 더 어릴 때, 먹물이 백지에 번지 듯 세상의 모든 단어를 흡수하던 시절에 난처한 일을 겪고선 한동안 그렇게나 주의를 해 왔건만.
딸아이가 이제 막 말을 마구 쏟아내던 즈음이었다. 언어의 습득에 있어 이 아이는 조금 독특했다. 단어의 용례를 묻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그보다는 가만히 그 상황을 살펴보면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필요할 때 적당히 쓸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비로소 내뱉기를 원하는 듯 그전까지는 그 말을 혼자 가만 듣곤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빠가 무심결에 내뱉는 철없는 소리도 같은 잣대로 평가했다.
어느 날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신호에 걸려 정차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에 전선주를 가득 채운 비둘기가 들어왔다. 한창 산책길에 만난 비둘기를 쫓던 시기다. 나지막이 그녀가 말했다.
"비둘기 섀끼들 엄청 많아."
우린 귀를 의심했다. 아마 잘못 들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애써 모른 척 넘겼다. 이런 경우 호들갑 떨면 애가 오히려 재미를 느낀다고 어디서 본 적 있는 것도 같았다. 이제 와서 잘못된 말이니 쓰지 말라 금하기엔 아비라는 작자가 너무 내뱉어 의미도 없었다.
실컷 뒷북을 치는 심정으로 그제야 말조심을 했다. 그런데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정확한 용례로 그 단어를 다시 뱉었다. 어느 날 식탁에서 웬일로 밥을 잘 먹는 동생을 기특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넌지시 한마디 했다.
"잘 먹는다, 이 섀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모던 패밀리'에 나온 대로 랩 하는 할머니와 욕하는 아이는 재밌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간과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먼저, 사과를 하는 게 도리였다.
"아빠가 나쁜 말을 써서 미안해. 그건 나쁜 말인데 아빠가 장난으로 한 거야. 따라 하면 안 되는 말이야."
상황은 충분히 꼬여있었다. 반복되는 용처를 유심히 살핀 아이에게 아빠의 사과는 혼란만 더했고 그녀는 차근히 곱씹더니 우려하던 질문을 되물었다.
"근데 왜 우리한테 시끼라고 해?"
그건 애칭이다. 아빠는 어른이라 그런데 사실은 쓰면 안 되는 거다. 구차한 변명이 이어졌다. 아내에게 혼이 난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한바탕 소동을 겪은 뒤로는 신경 써서 버릇을 고쳤다. 아무래도 애정을 담은 그 말을 대체할 게 없어 아쉽긴 했지만.
욕뿐만이 아니다. 이젠 주변 사람들의 신변에 대한 얘기도 쉽사리 나누기 어려워졌다. 험담까지는 아니더라도 곤란할 만한 비밀 얘기는 아내와 둘이 귀엣말을 해야 할 지경이다. 뻔한 눈치를 가진 녀석이 둘이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다. 별 의식 없이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끼어드는 걸 몇 번 경험하고선 부쩍 조심하고 있다. 혹시나 실수하고 결례를 범할까 봐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고 맨날 다른 사람 얘기나 하고 욕설이 아니면 대화가 이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신경이 쓰인다. 아마 아이를 키우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말을 다듬고 덩달아 행동을 삼가면서 말이다. 최소한 함께 사는 꼬마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오늘도 1g 정도는 철든 어른이 되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