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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성 Aug 30. 2020

울어라 대한민국

울지마 톤즈 (Don`t Cry for Me Sudan, 2010) 리뷰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


    15살의 어린 태석은 십자가 앞에 꿇어 눈물 흘리며 신께 물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냐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 신은 태석에게 대답했다.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태석은 결심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영원히 기도하리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리라고.


헌신이 꽃피운 헌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이태석 요한 신부는 1962년 10월 17일 부산에서 열 남매 중 아홉째로 출생하였다. 부산항이 보이는 산동네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집 근처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로 열 남매를 키운 홀어머니의 헌신을 어린 시절부터 알아서일까, 어린 태석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바른길을 걸었다. 재능도 탁월했다. 음악에 뛰어난 소질이 있어 어린 시절 동네 성당에서 풍금을 독학으로 익힐 정도였다. 또한 기타도 독학했으며, 학창 시절에는 '묵상'을 비롯한 여러 성가를 직접 작사, 작곡할 정도였다.


    어린 태석의 꿈은 신부였는데 초등학교 시절 성당에서 보여준 한 영화가 그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벨기에 출생의 다미안 신부의 삶을 다룬 영화로,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몰로다이 섬의 한센인 마을에서 평생을 헌신한다. 그러다 그는 40대의 나이에 한센병에 걸리고, 결국 49살의 나이로 선종한다. 이처럼 평생을 헌신한 다미안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는 어린 태석에게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는 꿈을 심어준다.


    태석의 마음에는 항상 이와 같은 말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래서일까 원하던 의과대학에 합격했고 향후 의사로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지만, 군의관 복무 시절 어린 날에 꾸었던 사제의 꿈이 다시 살아났다.


    어머니는 울면서 강하게 반대했다. 이미 태석의 형과 누나가 신부와 수녀의 길을 걷는 와중에 태석마저 성직자의 길을 걷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석도 울면서 어머니께 간곡한다. 어머니가 어렵게 키우신 것도 알고,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하고 벌어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자기도 모르게 하느님께 끌리는 것을 어떡하냐고. 자식을 이길 수 없던 어머니는 결국 신과 태석의 뜻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신부가 된 이태석은 1990년대부터 아프리카 수단에 파견을 나갔고, 2001년부터 수단의 톤즈에서 평생을 헌신한다. 그러다 2008년 10월, 한국에서 휴가차 건강검진을 받던 중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죽음에 낙담한다. "톤즈에서 우물 파다 왔어요. 마저 다 해야 하는데"라며. 그의 주치의가 말하기를 '암 판정을 받아 낙담한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계속하지 못할 것에 대해 낙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태석 신부는 투병 중에 톤즈로 다시 가려고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최선을 다해 헌신한다. 암 판정 직후에도 사실을 숨긴 채로 미소를 띄며 봉사활동 및 지원을 호소했으며, 자선 공연에서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등 끊임없는 헌신을 이어간다. 그리고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Everything is good'이라는 유언과 함께 향년 47세를 일기로 선종한다.


    누군가 한국인 사제 최초로 아프리카를 지원했던 그에게 물었다. "한국에서도 불쌍한 사람 도울 수 있는데, 왜 굳이 아프리카에 가느냐". 이태석 신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적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 마지막으로 열 남매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헌신의 아름다운 향기는 다시 그로 하여금 고귀한 헌신을 꽃 피웠던 것이다.


빛과 소금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태석 신부는 먼저 의사로서 헌신한다. 톤즈에는 그를 만나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고,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2~3일 동안 걸어와서 진료를 받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이태석 신부는 하루에 300명 이상 환자를 돌볼 정도였다. 또한 환자가 늘어나자 병원을 짓기도 했다. 주민들과 함께 케냐에서 사 온 시멘트에 톤즈 강에 나른 물과 모래를 섞어 만든 벽돌로 병원을 지었다.


    그는 무한히 헌신한다. 진료를 마친 밤에 찾아오는 환자도 돌려보내지 않는다. 낮 동안에도 계속 진료를 했기에 피곤하고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찾아오는 환자가 두 번 문을 두드리게 하지 않았다. 또 환자의 증상을 정확히 알기 위해 딩카어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앉아서 진료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환자를 돌았다.


    이런 이태석 신부가 집착하던 것이 있었다. 전기를 얻기 위해 자신의 숙소에 설치한 태양열 집열기다. 물론 자신을 위한 전기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남을 위한 것이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태석 신부의 숙소에 설치된 태양열 집열기에서 얻은 전기는 톤즈를 밝히는 빛이 되었고, 전기로 가동되는 냉장고 안의 백신은 소금이 부패를 막는 것 같이 톤즈 사람들의 질병을 막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꿈을 심어준 다미안 신부와 같이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한다. 모두가 가난한 수단에서도 철저히 외면받던 그들에게 모여 살 수 있도록 마을을 만들고 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를 구해다 준다. 또 갈 때마다 빈손으로 가지 않고 몸을 보호해 줄 옷을 나눠준다. 또한 이태석 신부는 직접 상처가 난 한센인들의 발의 고름을 짜고 붕대를 감아주었으며, 그들이 맨발로 다니지 않도록 하나하나 종이에 발을 대고 그려 케냐에서 가죽 샌들을 주문해 신겨준다.


    또한 이태석 신부는 의사이자 친구였다. 그는 한센인들이 일상에서 겪은 이야기를 얘기하고 다 들어주었다. 한 노인은 이태석 신부를 가리켜 '성경에서 읽었던 하느님과 같은 분이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러 찾아오는 유일한 분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태석 신부는 한센인들의 진정한 친구였다.


    놀라운 것은 이태석 신부 또한 한센인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한센인들의 어둡고 상한 마음을 밝히고 달래주는 이태석의 존재 자체가 빛과 소금이었던 것처럼, 한센인들 역시도 진정으로 이태석 신부에게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는 정이 넘치는 그런 학교 말이다.


    이태석 신부는 의사인 동시에 교사였다.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부서진 아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이 학교라고 믿었던 그는 소년병으로 끌려가는 아이들을 위해 병원이 자리를 잡아가자마자 마을 빈터에 학교를 지었다. 병원을 만들 때처럼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모아 폭격으로 골격만 남은 학교 건물을 보수했다.


    그렇게 세워진 학교에 톤즈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초중고에 해당하는 12년 정규과정 학교가 세워진다. 한국에서 교복도 얻어 아이들에게 입혔다. 교사들은 케냐에서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데려왔으며, 이태석 신부는 진료가 없는 시간에는 고등학교 수학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그렇게 소년병으로 끌려가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아이들의 마음은 상처받고 부서져 있었다.
음악을 가르치면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음악적 재능을 살려 음악이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켜준 것과 같이 톤즈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그는 35인조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으며,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위해 직접 설명서를 보고 연습한다.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 악기마다 악보를 손수 만들었다. 또 한국에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에게 단복도 입힌다.


    남부 수단에서 전례가 없던 브라스 밴드는 단숨에 화제가 된다. 정부 행사에도 공식 초청받았으며, 남부 수단의 대통령도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브라스 밴드 단원 두 명을 데려와 대학에 진학시키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가 가르친 것은 수학과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는 악기를 빨리 배우고 싶어 했던 막내 단원에게 '악기를 배우기 전에 착한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아이가 잘못을 폭행으로 다뤘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아이에게 사랑으로 다가가 어떻게 하면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음악과 진정한 사랑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은 아이들은 이태석 신부와 같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총과 칼을 녹여 클라리넷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석 신부가 사랑을 가르쳐주었기에 우리도 여러분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랑은

    '당신은 사랑입니다'. 사랑 그 자체였던 이태석 신부의 모든 행동의 기본은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질투하는 자가 되지 않고,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사랑이었던 이태석 신부는 언제나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는 사람이었다. 의사이자 교사고 아버지이자 친구였던 이태석 신부의 진심 어린 사랑은 눈물을 수치로 여기는 톤즈 사람들마저 울렸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사랑을 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내적인 성장을 보며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 외로울 틈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이태석 신부 또한 한센인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그 역시도 사랑을 받고 있었다. 사랑은 주는 동시에 받는 것이었다.



울어라 대한민국
사랑의 실천, 자비의 실천이 모든 신앙인의 일차적인 사명이고, 또 종교를 갖는 이유입니다.... 종교 없이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바라는 바입니다. -법정 스님-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스러운 행위를 멀리할 것이며.... 내가 이 맹세를 깨트리지 않고 지낸다면 그 어떤 때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으며, 즐겁게 의술을 펼칠 것이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내가 이 맹세의 길을 벗어나거나 어긴다면, 그 반대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대한민국이 울고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의 의미는 어딘가 다르다. 의사이자 사제였던 이태석 신부에 대한 사랑으로 그를 그리워하며 흘린 톤즈 사람들 눈물과는 반대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흘리는 눈물에는 사랑이 없다. 사랑을 실천해야 할 곳의 건물은 점점 화려해지는 반면, 헌신은 점점 초라해진다. 빛과 소금이 되지는 못할망정 어둠과 바이러스가 되어가고 있다. 미래를 꿈꾸어야 할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이 의사를 찾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사랑이 사라진 땅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슬픔과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다.


    슬픔과 절망으로 울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모든 것의 본질인 사랑으로 회귀해야 한다. 주는 동시에 받는 사랑으로 언제나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뎌야 한다. 오직 서로 사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울었으면 좋겠다. 다만 슬픔과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사랑의 눈물을 흘렸으면 한다. 사랑이었던 이태석 신부 한 사람의 사랑이 톤즈를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들었듯이,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세상이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오직 서로 사랑해야 할 우리가 흘리는 눈물에 사랑이 녹아 흐른다면 어딘가 묻혀있을 희망의 씨앗이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으며 꽃피지 않을까.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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