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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사 Sep 01. 2020

7. 공부만 열심히하면 될 줄 알았는데

사회는 학교의 확장판이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이 지나간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만큼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이 없다. 어쩌면 무기력의 시작은 고등학교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나름 학업의 흐름에 맞춰 학교 생활은 상위권으로 무난하게 보냈다. 하지만 문제는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2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뚝뚝 떨어지더니 3학년이 되어서는 반에서 중간 정도 밖에 못하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공부량이 줄어든것도 아니였다. 매일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가 되어 다른 취미생활은 가져보지 못했다. 이렇게 공부밖에 할 줄 몰랐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았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다보니 학교 생활도 주눅들어갔다. 어쩌다 통지표를 집으로 가져가는 날이면 부모님에게 확인도장을 받아와야 했는데 안방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도장을 받아온 기억이 난다. 내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받아온 성적인데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늘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앞에서는 그냥 말 잘듣는 학생이였다.

어쩌면 직장상사 앞에서 주눅드는 것도 직장상사를 학창시절의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동일시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내가 받은 성적에 대해 자신있게 생각했어야 되는 것처럼 회사에서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가 칭찬해줘야 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불량 학생이 아닌 것처럼 회사에서 남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고 해서 자신없어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 이유는 내가 공부밖에 한 게 없어서 인 것 같다. 국내 일류대학에 가진 못했어도 공부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의 원래 꿈은 한의사였다. 학교에서 조사하는 희망직업란에는 늘 한의사가 적혀 있었다. 지방 국립대의 공대를 나와 회사에서 기술직일을 하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직종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성적에 맞혀 직업이 정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만 할 줄 알았지, 취미나 특기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무기력에서 빠져 나오는 훈련을 했어야 했는데, 다시 말해 내 스스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훈련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성적이 전부가 아니고 다른 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했다. 학생 때에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해서 시야를 넓히는 습관을 가져야만 했다.      

“학생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바깥세상은 달려져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바깥세상은 더 치열한 곳이였다. 모든 것이 경쟁이었고 순위를 반드시 정해야했다. 남에게 쓴 소리 잘하고 직장상사와의 관계가 좋아야 일을 잘하는 것처럼보인다. 나처럼 말수가 적고 소극적으로 보이면 일을 못하는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싸울 줄 아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하지만 난 체질적으로 그런 것을 잘 못한다. 한때는 싸울줄 알고 목소리를 크게 내기 위해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내가 아닌 것을 하려니 어색했다.”     


학창시절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저 밖의 세상은 달라져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는 이렇게 성장하여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 현실앞에서 무기력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학창시절에 성적에 집착해서 힘들어하기 보다는 무기력에 빠질때마다 취미, 특기 같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훈련을 해왔다면 지금의 무기력에 빠진 내 모습은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기력을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 만으로도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엔 나는 지금 색깔이 없다. 내가 자신있어 하는 것이 없다는 것만으로 나는 색깔이 없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해보니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 즉 자신에게 붙어있는 수식어가 무엇이냐가 그 사람 전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테니스를 잘 치는 직원이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테니스로 시작된다. 악기를 잘 다루는 직원이면 이 사람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그것으로 시작된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사회생활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수식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색깔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기력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무기력에 빠지기 전에 자신에게 붙어있는 수식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유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즉 한가지 일이라도 유능함을 갖는다면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유능함이 없다. 아직도 취미나 특기란을 적는 일이 생기면 적을 것이 없어 고민하게 된다.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업무 특기가 있어야한다.

행정업무를 잘 보면 행정특기, 기술적으로 특화된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업무 특기가 되는 것이다. 온실속에 화초처럼 인문고를 나와 대학에서 이론으로만 공부해온 나로써는 아무런 업무특기가 없다. 특히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기술쪽으로 실무를 봐야 하는 업무가 많은데 대학에서 배운 라플라스 변환 같은 어려운 학문이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고등학교 내내 배운 미분 적분이 실무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학생때의 어려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여기서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인생의 아이러니 몇가지를 소개하겠다

 내 회사동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친구는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친구이다. 그런데 이 친구 이력이 새롭다. 공고를 나와 전문대를 거쳐 우리 회사에 입사했다. 이 친구는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공부를 하고 또 돈이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 공부했다고 한다. 또한 나와 중학교 동창이다. 나와는 중학교 때부터 성적차이가 많이 났고 그친구는 공고로 나는 인문고로 진학을 하게된다.(공업고등학교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성적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었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의 회사에서 동기로 만났다. 

더욱이 회사업무가 시설관리쪽이다 보니 현장 시설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똑똑한 친구라 회사업무에도 적응을 잘 했다. 그런 동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솔직히 처음에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 친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를 버리고 그 친구를 대해야했다. 

내 주위에는 이런 인생의 반전이 허다하다. 내 고등학교 친구는 학업 성취도 그렇게 높지 않았고 학교 생활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그런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누구보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반면에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했던 또 다른 친구는 명문대를 나와 회사를 취업했지만 늘 업무에 지쳐있고 불안정한 직장 때문에 노후 걱정을 해야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것이다. 순간의 순위가 끝까지 가지 않는다. 잘나간도 좋아할 것도 없고 못나간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포기하지않고 달리다 보면 자신의 순위가 달라져있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늘 현재와 비교한다면 나처럼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살기로 결심했지만 사실 나는 과거의 영광에 빠져 현재 순위만 걱정하며 욕심내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무기력의 시작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되었다. 

 바꿔말하면 인생에서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의 순위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순위라는 말 자체도 의미가 없다. 인생에서 순위라는 기준은 내가 만든 것이다. 묵묵히 주위의 변화에 당황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만이 무기력에서 빠지지 않고 끝없는 인생의 마라톤에서 견딜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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