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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May 26. 2024

열정


열정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언젠가 연우는 콤플렉스를 이야기했다. 콤플렉스는 내재된 욕망을 끓어 올린다고, 그것이 열정일까? 그렇다면 그림에 대한 열정은 나의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아니 콤플레스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몰입은 계속 이어지고 이어져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 느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유튜브 채널에서, 방송국에서, 잡지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원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다.


언니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는 그녀들의 조언이 필요했다. 아니 함께 해주기를 기대했다. 세상의 관심이 무섭기도 했고, 아직은 준비가 안 되었다. 늘 당당하고 맑았던 예전의 나라면 기꺼이 즐겼을 일이 이상하게 두렵기만 했다. 여러 매체의 러브콜은 <전시회>의 성공이 이유였다. 사람들은 내 작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는 꺼내보이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내 입으로 꺼낼 수 없었다. 다시금 상처로 할퀴어질까 봐 두려웠다. 언니들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했다.      


선화언니: 포장하자.

경화언니: 그래, 네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기엔 아까워

나: 포장?

선화언니: 그 이야긴 빼자.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잖아. 치유와 회복으로 가자. 누구에게나 마흔은 아픈 나이일 수 있으니까.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다. 작품은 위로와 치유를 주제로 고혹적이고 투명한 표현의 새로운 시도라는 평을 받으며 언론에 소개되었고, 작품은 낯선 누군가에게 판매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그것은 연우가 만든 나의 그림 계정 팔로워 수를 통해 실감을 할 수 있었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그림, 연우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열정을 다한 그림이 내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렸다. 무척이나 두근거리는 일이지만 두려웠다. 혹여나 내 이야기가 세상에 꺼내질까 봐 걱정하는 두려움이었다.


선화언니가 이야기하는 포장의 의미는 애써 꺼내려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누구나 마흔에 있을 법한 번아웃에 초점을 맞추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도전이 그림이었다고, 그림은 치유를 가져다주었다고, 그것까지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모두 언니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답을 찾기 위해 그린 그림들, 지난 전시회를 통해 그 답이 어느 정도 선명해졌다고 느꼈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고,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함을 느끼게 되었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상처는 어느 정도 옅어져 살짝 흔적만 남은 듯했다. 다시 그것을 꺼낸다는 것은 그림에 열정을 다하며 나에게 묻고 답을 했던 그 시간들을 외면하는 일이다. 나는 포장하기로 했다.


그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 구연우‘였다. 나를 치유하여 당당하게 그의 옆에 서고 싶었다. 그가 알던 10년 전 나의 모습만큼 밝고 빛나게 그의 옆을 지키고 싶었다. 내가 그림에 열정을 다하는 사이, 그도 늘 그랬듯 그의 일에 열정을 다했다. 그렇게 우리의 마흔은 서로를 위한 열정으로 치열했다. 그 치열함은 몰입이었고, 그것은 나쁘지 않았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우리는 단단해져 갔다. 그리고 나는 깊은 곳에 박힌 상처를 지우려 애썼다. 그러는 사이,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나는 이제 그에게 가려한다.


'이제 가도 되겠지?


첫 인터뷰가 있던 날, 나는 무척 긴장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살아가게 된 이야기와 그림에 담긴 의미, 기법들을 질문받았고, 첫 번째 질문에서부터 나는 포장을 해야 했다. 아니 애써 모든 이야기를 다 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진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그날의 기억들이 다시 재생되어 그날 밤 나는 예전과 똑같은 꿈을 꾸고 그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오랜만에 느껴본 아찔한 상황에 괜찮아지기 위해 애쓴 모든 시간이 사라진듯했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삶의 숨구멍이 커진 것 같아 숨을 깊이 내 쉴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을까? 내 삶의 답을 만들기 위해 애쓴 몰입들은 분명 그림 안에 담겨 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잠시 멈추었던 그림 때문일까? 나는 다시 붓을 들었다. 이제 그에게 가야 할 때라 생각했을 때, 나는 다시 내 삶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정과 몰입의 이유가 내 안의 상처와 콤플렉스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극복해야 했다.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의 '두 명의 프리다' 1939년에 완성된 작품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고통이다. 그다음 절절함과 함께 연민이 느껴진다. 그림은 디테일한 요소 하나하나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이혼 직후 그린 작품이라고 하니,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감정과 그 감정의 표현이 고스란히 나에게 담겨 함께 고통스러웠다. 유럽식 드레스를 입고 있는 프리다는 그녀의 정체성이다. 가슴근처의 혈관이 절단되어 피를 흘리고 있으니 그것은 고통과 상처일 것이다. 오른쪽의 프리다는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건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으며, 심장에서 나온 혈관은 그녀의 손에 쥐어 있는 디에고의 작은 초상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디에고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배경은 어두운 구름으로 덮여 있다. 이것은 프리다의 고통과 어두운 감정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갈등을 마무리하고 선택의 고통을 치유하고 있는 중일까?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고통 또한 심장의 혈관을 잘라내야 할까?


치유에 열정을 다할 때이다. 그는 여전히 열렬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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