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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May 28. 2024

치유


치유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     


나는 지금 병에 걸린 거다. 그렇다.

그것은 가벼운 감기 같은 거다. 치유의 방법인 그림은 내면의 고통을 서서히 옅어지게 해 주었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다시금 꺼내어진 고통의 시발점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치유가 되지 않은 것이다. 나를 열렬히 기다리는 있는 그가 걱정이 되었다. 이러다 그도 내 곁을 떠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그에게 더 이상의 기다림을 주고 싶지 않았다.      


’솔직해야 해’      


나 자신에게도 정직하지 못했다. 다른 이로 인한 아픔의 이유를 내 안에 담아 꽁꽁 싸매고 있던 것이 나였다. 그것을 뱉어 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꼭꼭 씹어 댄 것도 나였다. “퉤”하고 뱉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애꿎은 그에게 투정만 부리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이제 솔직해야 한다.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았다.


‘솔직해야 해’


나: 연우야, 너랑 같이 있을래, 좋아해. 너무 많이.

그: 지금 어디야? 갈게.      


전화를 끊고,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이 두근거려 쿵쾅거리는 움직임이 가슴 위로 보였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핑크빛으로 상기된 두 볼에 눈가는 촉촉했다. 이상하게 거울 앞에서 설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감정이 사라지고 몸은 가벼워 사뿐해진 느낌이었다. 두 손을 모아 가슴 아래로 쓸어내렸다. 진정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고백이란 걸 했다. 마음을.

한편으로는 후련했고, 설렘이 커져 마음이 뜨거워졌다. 뜨거움에 어쩔 줄 몰르 괜히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창문을 열어 창밖을 보았다. 여름의 기운이 시작되어 푸른 잎의 향이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그 향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멀리서 푸른 잎의 향을 닮은 그가 뛰어온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나에게로 뛰어온다.

앞서 나를 짓눌렀던 고통과 깊이를 알 수 없는 포개어진 상처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치유다.'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한 것은 연우를 향한 내 마음이었다. 그것을 꺼내지 않으려 얼마나 애를 썼던가? 들키지 않으려, 외면하려 그림에 몰입했던 시간들, 그것은 콤플렉스의 작용보다 어쩌면 자꾸만 생겨나는 내 마음을 누르고 누르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일 쉬지 않고 열정을 다해 몰입했던 시간의 이유는 내 상처를 치유하여 그에게 가기 위함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 내 마음을 누르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던 거다. 두 번째 답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 시간이 아깝다고 이야기하던 그의 시간을 아껴주지 못했다. 가슴이 북받쳤다. 그를 헤아리지 못한 시간들이 스쳐갔다.


그: 연화야, 눈물… 왜?


그의 앞에선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이제야 터졌다. 연우는 자세를 낮추어 깊고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마네의 <라튀유 씨의 레스토랑에서> 그림 속 남자의 모습이다. 그럼 난 그림 속 여자의 모습이어야 할까? 순간 마음이 경쾌해졌다. 그림의 힘이었다.


나: 연우야, 미안했어.

그: 연화야. 네가 전화한 날부터 내 시간은 늘 벚꽃이 날렸어.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이 행복해, 미안하다는 건 여기선 안 어울려. 그렇지?

나: 내 생각만 했어.

그: 난 계속 네가 네 생각만 하길 바라. 이건 진심이고 또 진심이야. 네가 아픈 거, 네가 힘든 거 그게 제일 힘들어.


그와 해가 뜰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무 살 우리가 사랑했던 시절부터 시작했다. 마음이 들켜버릴까 봐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의 기억, 나의 기억의 조각들은 다른 퍼즐 형태였고 그것을 끼워 맞출 때마다 뭔가 새로운 기억이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그때 우리가 헤어졌던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각자의 미래를 준비하며 그곳에 힘을 쏟는 일은 오해를 불러왔고, 서로가 알지 못하게 각자 치열하게 아파하며 멀어졌다.


초등학교 때, 그가 건넨 사탕바구니…, 스무 살 그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 사탕바구니는 아픔이었다. 사탕을 받은 내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고, 어린 남자아이는 풀이 죽어 몇 날 며칠 괜히 바닥만 차고 다녔다고 한다.


나: 그때, 그 사탕을 먹지도 못하고 몇 달간 내 방 책상 위에 뒀는데, 여름이 돼서 흐느적 녹지 뭐야. 끈적거리는 액체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걸 보고 학교로 갔는데, 돌아오니 엄마가 버렸더라고..., 펑펑 울면서 엄마 탓을 했었어.

그: 뭐? 그럼... 너.

나: 널 좋아했었어. 어떻게 안 좋아했겠어. 그때 너 여자친구들한테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데.

그: 그걸..., 지금 우리가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평생 몰랐겠네. 하하


그가 아무런 걱정 없이 웃는 웃음은 처음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현재로 돌아왔다. 그는 그림을 이야기했다. 뭔가를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 조곤조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것은 그의 일이기도 했다.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은 몰입을 만들어내는 멋진 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나를 지켜보며 그의 일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며 일에서의 목표를 이야기했다. 목표가 없는 나에게 그의 말들은 동기를 이끌어 냈고, 뭔가를 시작하고 싶게 했다.


해가 뜨는 것을 우리는 함께 보았다. 따뜻한 차와 함께 더 따뜻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내 삶의 어느 날보다 편안했다. 그것은 치유였다. 내 마음을 꺼내어 보이는 것, 그와 함께 하는 것,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것, 창 밖의 햇살과 들어오는 바람이 어제와 다른 느낌인 것, 그와 계속 함께 있는 싶은 것이 치유였다.


마흔둘, 첫사랑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삶에 주어지는 감정들이 총량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맞다면, 고갈된 줄 알았던 사랑의 감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마흔은 원래 이런 것일까? 예측하기가 어렵다. 뭐 어떻든 이제는 괜찮다. 그가 다시 내 옆으로 왔다. 내 삶이 아주 황폐해졌을 때, 그곳에서 나를 꺼냈다. 그로 인해 세상으로 꺼내어진 나는 다시 붓을 잡았다. 그림을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내 삶을 단단하게 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애드워드 호퍼의 작품 두 희극 배우(Two Comedians)의 주인공은 호퍼 부부이다. 죽음을 1년 앞두고 그린 그림은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임이 느껴진다. 죽음을 인정하고 그림으로 담담하게 기록한 호퍼는 삶을 무대로 표현한 게 아닐까? 그 무대의 주인공은 자신과 아내이다. 삶이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영화의 마침표까지 덤덤하게 그림으로 남긴 그의 마지막 작품은 그가 삶에 대해 얼마나 초연하고 진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일생에서 그녀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림의 남자는 에드워드, 살짝 뒤에 있는 여자를 조세핀이라 해석했을 때, 남자는 감사해하고 여자는 부끄러워하는 듯 보인다. 참 많은 감정의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이다. 그녀는 그의 그림의 모델이었으니, 자신의 모델로서의, 그리고 처음과 끝을 함께한 동반자의 의미로 손을 잡고 인사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의 마지막을 그리며 에드워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완성 후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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