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지 않음
유난히 빨리 추워진 그해 가을. 겹겹이 얇은 옷을 껴 입고도 한기가 느껴졌다.
분명 몸살 기운은 아니었다. 몸의 컨디션은 최상이었으니, 문득 커피 탓인가 싶어 이마에 손을 얹으며 창밖을 보았다. 2층 창밖으로 낙엽이 보였다. 바닥에서 뒹굴듯 허공에서 여러 차례 뒹굴다 내 시선에서 수평으로 닿았다. 바람이 쏟아내는 화를 달래는 듯 낙엽이 마구 뒹굴다가 풍선이 된 것 마냥 날아오른 것이었다. 하염없이 그 장면을 바라보았던 그날 밤, 참고 참았던 화를 터트리듯 물 또한 무섭게 끓고 있었다.
물은 무서운 기세로 화를 쏟아냈다.
정신없이 뒹구는 낙엽에 이어 시선은 급박하게 물이 끓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그 장면을 오래 본 것이 화근이었다. 물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제야 자유로워졌다.
물의 역할은 이미 목표점에 도달했지만 가스불을 끄지 않았다.
그저 주체성 없이 용기에 의존하던 물이 자유의 몸이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순간 그 장면이 느린 장면처럼 느껴졌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아주 천천히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것도 웃으며 말이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내가 물이 된 듯 자유로워졌다. '물방울 따위가 부러울 일인가?'
까마득하게 오래된 기억, 자유의 감정, 몸짓의 자연스러움은 그새 잊힌 것이다.
그 사이 내 몸은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그날은 카페인의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다.
가을의 기운에 찬 공기가 가득 담겨 제법 스산하게 느껴지는 시월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지난해 가을 이맘때도 노란색 봉지의 믹스커피를 마시려 물을 끓였다. 아니다. 그땐 빨간색이었는지도 모른다. 뭐 어찌 됐든, 믹스커피 세 봉을 타서 마시며 여기를 떠날 것이라 다짐했었다.
실컷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은 커피만 들이붓고 다짐만 했었다.
물이 끓던 생김새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그 해의 다짐을 왜 지키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 년 사이에 여기를 떠날 이유로 납득될 만한 큰 사건도 여럿 있었다.
그 사건들을 곱씹어 보며 의지를 세웠다. 그래서였을까? 그날은 달랐다. 물이 닳아 공기 중에 모두 흩어질 때까지 주전자 바닥의 마지막 물기가 자작자작 소리를 내다 마침내 타닥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주전자는 불을 일으킬 듯한 무서운 기세로 타닥거렸다. 냉큼 가스 불을 껐다.
“그래, 이제는 여기를 떠나야 해. 더 이상은 안돼. 내 삶을 지켜야겠어.”
그 말을 단호하고 우렁차게 내뱉고 나니 당장이라도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내 주전자 속을 들여다보고는 마음이 바뀌었지만.
물이 뜨겁고 무섭게 끓는 것, 그만한 고통을 바닥이 까맣게 될 때까지 참아야 비로소 물은 자유를 찾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랬다. 나는 세상의 시선과 똘똘 뭉친 그들에게 길들여져 버린 고통에 뻔뻔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이었다.
나약함이란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그림자와도 같다. 외부의 압박, 스스로를 가둘 수밖에 없는 어떤 것, 그 감정은 흐릿한 안개처럼 내 시야를 가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득은 있었다. 나는 나의 취약점인 나약함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나약함이 내 모습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무엇을 해야 할지가 선명해졌다. 끓어 흩어진 물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걸까?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북받쳤다. 그것은 ‘저항’, 지난 내 삶에서 ‘저항’은 불필요한 단어였다.
사춘기 시절의 삐딱한 반항은 그 시절 누구에게나 있는 정상적인 성장의 신호일뿐 지금 나에게 필요한 ‘저항’ 과는 성격이 달랐다.
지금 나는 저항이란 단어는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어떤 낯선 영역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그 저항의 첫 번째 시작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아섰다.
이 작고 소박한 저항에서 실패하면 우렁차게 내뱉은 말을 또 지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북받친 감정에 불쑥 나온 눈물은 멈추었다. 믹스커피를 탈 물을 다시 주전자에 담아 나는 담담하게 물을 끓였다. 그리고 믹스커피 네 봉을 성의 없이 휙휙 저어 한가득 커피 물을 만들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동안 나는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달콤함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입은 기억을 했으니, 달콤한 맛의 유혹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그날은 넷이었다.
⋯
은서에게...,
서양미술사 시간에 우리가 선택했던 작품, 얀 베르메르의 [저울질하는 여인]이란 작품 생각나니? 여인이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들고 있는 저울, 여인이 만약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들고 있는 저울이 현명하게 답을 내줄 것만 같았어. 깊이 고뇌하는 모습, 여인 뒤에 그려져 있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 탁자 위의 진주와 보물들, 저 여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 무척 궁금해졌어. 그림 속 풍경은 빛이 반사되는 형상들로 시선을 뗄 수 없게 했지. 그래서 더 살피고 들여다봤어. 그곳은 여인이 선택을 저울질하기에 매우 완벽한 분위기로 느껴졌어. 생각했어. 누구에게나 선택은 어려운 것이구나. 그리고 그게 나에게 위로가 되더라. 삶의 선택에는 답이 없다는 것, 그 답을 찾기 위해 여인 또한 빈 저울을 들고 있다는 것, 그녀는 무엇을 고민하는 걸까? 답을 찾았을까? 그림의 다음 장면을 상상하며 나는 어두운 밤을 비추는 빛들을 들여다봤어. 그리고 너에게 묻고 싶어졌어. 나는 다시 반짝일 수 있을까?
은서야,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너무 뻔한 질문인가? 질문의 이유는 현재를 외면하고 싶은 이유일 거야. 요즘 부쩍 숨 쉬는 것이 답답해져. 숨구멍이 조여드는 듯해. 괜히 현재를 트집 잡고,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집착으로 허우적대고 있지. 우리가 한 사람이 될 수 없으니 넌 나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할 거야. 너에겐 그런 경험이 없기를 바라며…., 이제야 너의 안부를 묻는다. 매번 내 이야기에 급급해서 네 안부를 놓쳤는데, 이번에도 그럴 뻔했어. 어때? 괜찮지? 어딘가에서 너답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어. 그래도 조금은 빠르게 네 소식을 듣고 싶어. 늘 함께했던 우리의 젊은 날이 그리워진다.
삶은 매 순간 선택이고,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젊은 날, 우리는 왜 서로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 그것은 어쩌면 뒤늦게 알게 된 함정이었는지도 몰라. 친구인 넌 내 선택으로 만들 수 없는 인연이니, 너는 선택의 영역에서 제외할게. 선택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결혼이야. 무엇이 끌리게 했는지? 이 남자라면 아직 살아보지 못한 무수한 내 삶들을 함께해도 괜찮겠다고 쉽게 생각했어. 평생 함께 살아갈 문제는 정말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문제인 것을. 미래를 모른다는 가정하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이 남자를 또 선택했을까? 스물다섯 살의 나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 연약했으니 아마 그랬을 거야. 은서야, 괜히 쓸모없는 생각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네. 너에게 글을 쓰며 알 것 같아. 지나간 일의 후회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이 계속해서 다시 과거를 붙잡으려 해서 대청소라도 해야겠어. 그리고 이번에는 많은 것을 들여다보고 생각해서 선택을 하려고 해. 내 삶을 다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
마흔두 번째, 은서에게 메일을 보냈다. 수신 확인, 읽지 않음. 이쯤이면 은서가 주로 사용하는 메일 주소가 바뀌었거나, 메일함에 수신된 메일이 그에겐 중요하지 않거나, 그것에 신경 쓸 만큼 틈이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은서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그날은 마흔두 번째 수신된 편지의 읽지 않음이 신경이 쓰였다. 오랫동안 마우스를 그 장면에 멈춘 채 한참을 바라봤다. 답장은 바라지 않았다.
읽지 않음이 읽음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뚫어져라 모니터를 바라봤다.
마치 눈싸움을 하는 양, 눈을 깜박이면 영원히 은서가 메일을 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시큰해지는 눈두덩이가 감기지 않게 힘을 주었다. 그새 눈물이 시큰한 눈 전체를 휘감더니 주르륵 흘렀다.
은서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답답함과 그리움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어쩌면 쏟아내고 싶은 마음을 글에 담으며 순간 시원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멈춰지지 않았다. 멈춰지긴커녕 첫 번째 저항을 외치며 막아섰던 눈물까지 함께 터지며 북받친 울음소리가 가슴 안을 박차고 나왔다. 그런 나에게 당황스러웠다.
괜히 은서 탓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왜 나는 읽지 않는 메일함을 바라보며 북받쳤을까?
왜 남들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은서에게 쏟아내는 걸까? 은서는 왜 몇 달째 소식이 없을까?
스무 살 시절, 당당하게 나로 살았던 그때, 은서는 나를 더 당당하게 해 줬다.
그녀는 늘 당차고 불의에 불끈했다. 그땐 그랬다. 세상은 어떤 것도 아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세상은 나에게 얇디얇은 실타래의 부드러운 감촉처럼 너그러웠다. 메일함의 수신 확인을 딸깍 딸깍 누르며 은서가 계속해서 읽지 않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그러움과는 거리가 무척 멀었다. 은서의 한마디가 필요했다.
"거기서 당장 나와. “
은서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은서가 해주는 이야기에는 뭔지 모르게 힘이 느껴졌다.
은서의 선택은 늘 옳았고, 찰나의 선택이 던져주는 정답을 보며 늘 놀라웠다.
특히 시험공부의 계획을 기가 막히게 짜주었다.
벼락치기의 고수였던 나는 늘 미루고 미루다 남들보다 늦게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 늘 실패했던 시험 성적에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했지만 벼락치기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때도 그랬다. 풀이 잔뜩 죽어 있는 내게 내민 은서의 기말고사 계획표, 은서의 철저한 계획 아래 2학년 마지막 기말고사 준비가 서둘러 시작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평균점수가 무려 20점이나 올랐으니, 나는 꽤 공부머리가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일찍 알았더라면 미술을 시작하지 않았을 텐데…, 대학을 가기 위해 나는 입시 미술을 시작했다. 예술적 소질이 남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성화에, 새아버지의 설득에 다니게 된 미술학원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타고난 예술적 감각으로 늘 그림을 그리던 은서,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시미술을 하지 않았던 은서는 그해 원서를 넣고 실기 시험을 친 대학에 모두 붙었다.
그것도 전체 학교 수석합격, 그런데 그중 중간 정도 레벨의 우리 학교로 입학하기를 선택했다.
은서의 그림이 좋았다. 타고난 선의 감각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오묘한 색 감각으로 은서의 그림은 남다른 에너지를 뿜어댔다. 은서 그림은 내 맞은편 벽에도 걸려 있다. 가볍게 보았다가 깊이 빠져드는 그림,
저항은 하지 못했지만 반항은 했던 시절이 있었다.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 가정 선생님에게 책을 집어던진 일이 있었다. 그 시절의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엄격했었고 학교 규정과 분위기도 감히 선생님 앞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정 선생님의 늘 비꼬는 말투와 예의 없는, 아니 그것보다 더한 모욕감을 주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은 명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 말들이지만 그녀의 언행은 늘 교사의 권위로 가득 차 있었다. 나에게 그런 면이 있을 거란 것을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의자는 큰소리를 내며 뒤로 물렸고, 책상에 있던 책을 그대로 그녀를 향해 집어던졌다.
"선생님 그만 좀 하세요."
지금 생각해 봐도 나는 그 시절, 그날 뭔가에 씐 것이 틀림없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교내 봉사 10일이라는 처분을 받았다. 그것은 부모님께서 학교로 불려 오시고 교장선생님 앞에서 싹싹 빌어 많이 약해진 징계처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은서의 공이 컸다. 사건이 있던 그날, 은서는 가정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가는 학급의 모든 학생들에게 소명서를 받아 냈다. 가정 선생님의 언행과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 고운의 행동만 보았을 때는 잘못된 것이 틀림없지만 선생에게 먼저 문제가 있다는 내용들이었다. 고운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가득 담긴 그 종이들을 가지고 은서는 교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저 묵묵히 10일간 학교 안 청소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마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초콜릿이며 사탕을 건넸고, 나는 우리 학년 친구들에게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마녀 같았던 가정 선생님은 그해 말, 교무실에서 짐을 싸야 했다. 졸업식 날까지 그 일은 동학년 학생들에게 훈훈한 여담으로 남았다. 그때까지도 어떻게 나에게 그런 용기가 났던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은서의 읽지 않음.
그것이 이토록 답답하고 궁금한 이유는 그녀가 보고 싶어서였다.
그녀와의 시절이 지독하게 그리워서였다. 은서와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하늘보기를 좋아했다.
“은서야, 혹시 그 노래 알아? 엄청 옛날 노래이긴 한데. 나는 하늘 볼 때마다 자꾸만 흥얼거린다. 그리고 엄청 기분이 좋아져."
“어떤 노랜데?”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면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은서는 노래가 너무 올드하다며 웃었고 문득 스쳐 가는 장면이 있었다.
내 아버지 김 태풍. 내 아버지가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자주 흥얼거렸던 노래는 그 구절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은서에게 말했다. 다음날 은서는 호들갑스럽게 교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안고운! 고운아, 이 노래 앞부분이 진짜 좋아.”
그리곤 이어폰을 귀에 끼워주었다.
“눈을 떠보면 회색 빛 안개 사이로 보이는 아스팔트~”
그 시절을 자꾸만 돼 걷는 것은 지나 온 삶의 어느 한 부분을 후회한다는 것.
삶의 선택은 어느 순간 나에게 답을 한다.
은서의 전화가 몇 달째 연결이 되지 않아 쓰기 시작한 메일이 벌써 마흔 두통, 이상하게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이 스쳐 갔다.
그것은 기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