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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Oct 21. 2024

구름 건 손가락

#4. 구름 건 손가락   


                   

  여기서 잠깐, 아버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아버지를 꼭 닮은 딸이었기 때문에 내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아버지부터 알려야 한다. 내 아버지, 7년이라는 짧은 세월, 그리고 얼마 전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만난 짧은 시간들, 아버지와의 만남은 지나 온 내 시간 안에서 기억마저 아무렇게나 흩어진 순간의 시간이지만 잡을 수 없을 만큼 옅어져 애처로운 중요한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동화 같은 사람이었다. 어렴풋이 남은 아버지의 기억은 순간순간만큼은 선명했다. 그럴 것이 나에게 아버지는 애틋하고 특별한 존재였기에, 어쩌면 그것은 그리움.     

 

“고운아, 세상에는 고운 것이 참 많아. 그 세상을 곱디곱게 살아가라고 너는 김고운이란다. 저기 하늘 좀 봐”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늘은 무척이나 쨍한 파란색에, 눈부시게 하얀 빛깔의 구름이 밀도 높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버지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내 손가락도 가져다 대보았다. 그땐 구름이 마치 손 끝에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이 무척 선명해 지금도 뭉글뭉글한 구름을 보면 나는 손가락을 구름 끝에 걸어보곤 한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측은하게 여긴 작은 이모를 통해 들은 것이 대부분이라 제삼자가 바라본 시선이 만든 아버지일 뿐 백 프로 그것이 내 아버지라 여길수는 없지만 나는 그것을 전해 준 작은 이모에게 감사했다. 이모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버지를 도박에 빠진 동화 같은 사람 정도로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웠지만 내내 원망하며 그가 살아온 세상을 욕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정확한 것은 엄마가 알고 있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엄마에게 아버지를 물을 수 없었다. 엄마 앞에서는 나는 완벽하게 엄마 편인 척을 해야 했다. 엄마의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보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린 날 부모를 잃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의 큰 반대의 이유는 그가 보험쟁이였던 이유보다 혈혈단신 고아라는 사실이 더 컸다고 했다. 어쩌면 아버진 결혼이란 제도가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닮은 사람.      


결혼 후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억압을 느꼈다고 했다. 그것은 엄마가 이모에게 전한 표현이었기에 아버지의 진짜 감정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뻐했다는 것, 동생이 태어나던 날, 그때도 아버지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는 것. 사랑이 많고,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작은 이모는 강조하여 이야기했다. 그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늦게 귀가하여도 늘 동생과 나의 볼에 입맞춤을 할 줄 아는 아버지였다.  

    

엄마는 ‘깡다구’였던 시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늘 한결같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에게도 그것을 요구했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낀, 혼자 지낸 삶이 익숙했던 아버지는 점점 책임의 무게가 커져가며 말수가 줄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바라던 가족의 울타리가 생김이 감격스러워했다고 했다. 외가댁의 많은 식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특유의 유머는 그들 사이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엄마의 결혼을 반대했던 외할아버지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정말 그랬다고 했다.

     

  이모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가 변하게 된 것은 결혼 후 첫 추석이 지난 이후, 엄마는 꽃 피는 3월에 결혼을 했으니, 7개월쯤 지났을까? 아버지는 엄마에게 갑갑함을 호소했다고. 숨통이 조여옴을. 날개가 꺾인 듯한 느낌이라고. 그때까지 이유를 알지 못했던 아버지는 엄마에게 증상을 전했고, 엄마는 가족들과 함께 하면 나아질 거라고 주말마다 외가댁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매일 저녁마다 다양한 놀거리를 가지고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고 했다. 그때 이유를 알아차렸더라면 어땠을까? 아버지에게는 가족이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결혼은 마치 유기견이 새로운 가정으로 들어가 낯선 공간, 낯선 냄새, 낯선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것과 같았다. 주인의 과도한 관심보다는 영역을 표시하며 스스로 적응해 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곧장 첫째인 나를 가진 엄마, 주말마다 찾아오는 외가 식구들, 이전과는 다른 함께하는 삶에 대한 적응이 아버지에게는 필요했다. 숨이 막혀하고, 어느 날은 가슴의 통증에 가슴을 부여잡고, 운전이 힘들어진 아버지의 증상이 공황장애라는 것은 3년이나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동생이 태어나며 자식들에게 에너지를 쏟았고 아버지의 증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이모에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정남아, 애 키우고, 일하고, 힘든 건 난데... 너네 형부가 공황장애라니.., 이게 말이 되니? 도대체 이유가 뭔 거야? 요즘은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해. 아니, 못해”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한 아버지의 병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아버지의 귀가 시간은 늦어지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의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이모가 보았던 아버지는 결혼 직후와 영판 딴 사람이 되어 이모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와 우리와 놀아주고 있을 때 아버지는 이모 눈을 피하며 인사도 제대로 못하더라는. 이상하게 나는 당장이라도 이해가 되는 상황을 이모는 그땐 자신도 엄마처럼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우리 아버지, 아깝고 또 아까운 아버지.

      

아버지가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내가 4살이 되던 무렵, 공황장애 증상이 극도로 심해진 아버지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도박장에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태풍 씨가 도박에 빠졌다.’ 당시 가족들,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중요한 사건은 단지 이 한 문장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도박에 빠진 김태풍 씨를 알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모두 열일곱, 더 이상 그 수의 크기는 커지지 않았고, 다행히도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에 계속해서 출근할 수 있었지만, 무단결근 횟수가 열 번이 넘어가자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도박에 더욱 열중했다.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도박으로 한몫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더 부풀어졌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얼마 되지 않은 엄마의 월급을, 외할아버지의 논 몇 마지기를 앗아 갔다고 했다.  작은 이모는 외할아버지 이야기에 그만 목이 메었고, 엄마의 선택을 잠시지만 원망하기도 했다. 이모는 그랬다. 아주 잠깐 엄마가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그때 그 선택을 말렸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늘 그랬듯 아버지를 측은해했다.      


“그래도 제일 불쌍한 사람은 우리 형부지”       

“형부는 공황장애가 아니었던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익숙한 자유로움을 지키지 못한 선택으로 나타난 신체 반응이었지. 물론 마음에서 시작했을 거야. 나도..., 아니다. 여하튼 이모 생각이야. 도박장에 우리가 가보진 못했지만 영화 같은 곳에서 보면 좁고 어둡고 사람 많고, 형부는 그런 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어. 적어도 공황장애라 했을 때는...”      

“그럼 아버지는 왜?”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분명한 건, 결혼은 형부에게 고통스러운 동굴이었다는 것.”

    

나는 왜 이모가 나도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를 이렇게까지 이해하는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모에게 내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것은 스물다섯, 장현우와의 결혼을 하기 석 달 전, 그와의 결혼을 당연한 선택으로 여겼던 여름날 밤이었다. 스물다섯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선택한 나에게는 이모의 이야기에 담긴 깊은 속내는 켜켜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때 자유와 선택에 대하여 결핍이 있었더라면, 나는 그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스물다섯의 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어떤 생각이든, 어떤 행동이든, 내 자유의지에 의해 삶에 닿은 길을 밟고 있었다. 발을 딛고 멈추어서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에 가슴 설레어했다. 건물들의 색감이 어우러져 있음에 감탄하며 그 건물들 위로 펼쳐진 하늘의 색에 눈빛은 반짝였다.


구름이 한껏 하늘 안에서 뽐내는 날은 손가락을 걸어보기도 했다. 아버지를 떠올린 건 아니었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그날도 그렇게 손가락에 구름을 걸어보았다. 시선을 내리니 그 시선 멀리, 저 끝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구부정한 몸, 깊게 파인 눈두덩이는 유난히 강렬하게 내 시선에 닿았다. 햇살이 무척이나 눈부시던 날이었다. 18년 만에 눈앞에 서 있는 아버지였지만 한눈에 그가 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아버지였다. 다시 보니 젊은 날 내 아버지가 팔을 높게 들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팔의 흔들림 사이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나는 분명 보았다. 햇살에 반짝 거리는 그것을.... 그것은 그의 마지막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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