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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Oct 22. 2024

시집을 간다는 것

#5. 시집을 간다는 것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왜 우리를 떠났는지에 대한 힌트를 가장 많이 준 사람, 작은 이모, 박정남. 외가 식구 중 가장 아버지를 측은해하고 이해하는 사람, 박정남. 이상하게 그래서 이모는 내 편 같았다. 이모는 나와 8살 나이 차이가 난다. 막내딸이 붙임성도 좋고, 애교가 넘쳤으니 외할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궁합이란 게 있을까? 할아버지는 엄마 편, 할머니는 이모 편 같은 그런 경쟁 구도가 이상하게 그려졌다. 각자의 편과 외모가 닮기도 닮았거니와 식성, 말투, 사소한 버릇까지 닮아 있는 것을 나는 자주 발견했다. 그리고 편이라고 하기에는 엄마와 이모, 둘은 매우 각별했다. 엄마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이모가 태어났으니 엄마와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자랄수록 자매의 정은 두터워지는 걸까?  주변의 모든 자매가 친구처럼 친한 것과 같이 엄마와 이모도 딱 그 모습이었다. 그만큼 이모는 나와도 무척 가까웠다. 이모는 엄마의 영향을 받아 공립학교 유치원 교사가 되었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외모에 귀한 분위기를 풍겼다. 귀한 분위기라 함은 아무나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말한다. 이모의 아우라는 이십 대 때 활활 타올랐으니, 온갖 남성들이 다가왔지만 이모는 매우 단호했다. 연애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애맹충이었지만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도도하게 이모는 모든 남자를 쳐냈다. 그러다가 무척이나 용감하고 지독하게 끈질겼지만, 현명했던 한 남자의 청혼을 받게 되었다.


그들의 시작과 결혼 전까지의 이야기를 완벽히 듣지 못했던 어느 날, 이모는 결혼하겠노라 선포했다. 첫 연애 대상과 결혼이라니..., 마음속으로 나는 이모를 뜯어말리고 있었다. 이모부가 될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따가운 눈빛으로 이모를 쳐다보았다.


'이모, 이건 아니잖아. 다시 생각해 봐... 응? 응?'

"고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오늘 분위기 너무 센걸."

"응? 아.. 눈이 아파서."


'이모야. 다시 생각해 보라고..., 너무 쉬운 결정이야.'



하지만 그날, 이모와 이모부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이천십 년 오월, 지역 일대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이 있었고, 이모는 그 결혼식의 주인공, 그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이모의 가방순이가 되었다.      

시집을 간다는 것. 스무 살이었던 나는 왜 시집을 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 말의 의미를 풀어헤쳤다.      


“이모, 왜 여자에게는 시집을 간다고 할까?, 남자에겐 처가를 간다고 안 하잖아.” 이상하고 구슬퍼. 이 말이 나는 별로야”    

 

“이모는 결혼하는 거야. 시집가는 게 아니라고”


“이모야, 시집 안 가면 안 돼? 응? 별로다 별로, 시집가는 거”      


“결혼하는 거라니까.”      


스무 살 어린 마음에 이모를 뺏기는 것만 같았다. 시집을 간다는 말은 나에게 한 사람의 주체적인 삶을 뺏아가 가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몇 년 뒤 나는 그 감정을 새까맣게 잊은 채 시집을 갔지만, 스무 살인 나에게는 그랬다. 이모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다. 이모 말대로 결혼을 한 것이라면 좋았으련만, 이모는 시집을 갔다. 아니, 하얀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면사포를 쓰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날 아무도 알지도 못했다. 어여쁜 신부가 선택한 그 길을 모두가 부러워했고, 축복했다. 그 축복 속에는 사실 부러움이 더 컸다. 이모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잘 알고 있다.     

 

“정남인 지 남편을 어떻게 꼬신 거야?”


“정남이 표정 봤어? 세상을 다 얻은 그 표정.”   


이모 친구 옆으로 지나가는 척, 가방으로 어깨를 툭 쳤다. 쳐다보는 눈빛에 질투가 서려 그렇게 얼굴이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이모와 이모부의 차이가 컸다. 그것은 단 하나, 집안 재산의 차이. 단지 종이 조각들의 개수 차이인데 참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그리고 그 차이는 이모가 그렇게 사랑하던 자유를 앗아갔다.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유로움 안에서 자신을 찾고, 그것을 낭만 하며 그 에너지로 살아가는 사람, 어쩌면 아버지와 닮은 사람.      


유치원 교사의 일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나눠줄 줄 아는 이모가 결혼 후 일을 그만둬야 했다는 것, 그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몇 년 뒤 알게 되었다. 잘 모르는 누군가는 또 이모를 부러워하며 헐뜯는 말을 했을 것이다. 질투는 사람의 눈을 가린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하고 입으로 뱉어내는 말들에 의해 얼굴은 미워진다.     


이모는 결혼과 동시에 낯선 타국으로 파향을 당한 듯 정체성을 잃은 가여운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자아가 정립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면 참을만했을 것이다. 이모는 이미 건강하고 단단한 자아를 가진 어른이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한 어른이 성장하여 자유의지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이모가 한 결혼은 그것을 막아 세웠다. 너무나 어이없게도, 그날의 하얀 드레스는 동굴로 데려가기 위한 꼬임이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하얀 웨딩드레스를 꿈꾼다. 물론 지금은 그것에 속지 않는 여성들이 훨씬 많아진 것을 알고 있다. 이모도 물론 웨딩드레스에 속아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모부, 강철수.


이모부의 사랑이 끓어오를 때,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착각이 온 마음을 지배할 때, 이모부는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 같이, 세상의 금은보화는 모두 이모것인 것 마냥, 선물 공세를 해 댔다. 덕분에 스무 살 나에게도 명품백이란 횡재가 왔고, 사람 맘이 참 간사한 것이 그날 이후 나는 이모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큐피드의 화살이 되어 주었다. 내가 이모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모와 참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모부는 세상물정 모르는 내 눈에 보기에 매우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마음이 아려 낙엽을 주워 모으는 이모와는 참 다른 사람, 밤 산책을 하러 나가면 빛이 닿은 초록색 잎들에서 빛이 난다며 설레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모였다. 그런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모부, 나는 이모부를 소개받은 첫 만남에서부터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애써 이해하는 척, 공감하는 척했지만 그 수가 너무 빤히 보여 헛웃음이 났다. 뭐 어찌 됐든 이모는 이미 이모부와의 결혼을 결심한 상태였고, 나에겐 명품백이 있었으니, 이모에게 말할 무엇이 있지 않았다. 모두의 축복과 많은 사람들의 질투를 받으며 들어간 이모의 동굴은 어땠을까? 이모는 자유를 뺏기며 매일매일 독립을 꿈꿨다고 했다.      


“정남독립만세”      


이모가 들어간 동굴 안에는 박철수 씨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정부가 있었고, 이모는 그곳에서 매일 정확한 시간에 같은 일(식사, 다도, 독서, 마사지 등)을 반복해서 하며, 외출은 허락하에, 청결과 꾸밈을 간섭받고, 인터넷과 휴대폰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감시를 받으며, 꿋꿋하게도 6년이나 버텼다. 어쩌면 이모라면 더 버텼을지도 모른다. 이모에게는 에너지와 뛰어난 회복력이 있었으므로,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에 이모를 가끔 볼 때면 늘 웃었다. 그늘이 있을 법도 한데 이모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얼굴에 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모가 참 시집을 잘 갔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6년이 되던 해 이모는 “정남독립만세!”를 외치며 그 집에서 나왔다. 어마어마한 위자료를 쥐고 당당하게 그 집 문을 박차고 나왔다. 가여운 이모, 이모의 독립은 주체성은 잃은 채 타인에 의한 것, 그것도 하늘의 별을 따다 줄 것처럼 굴었던 이모부에 의한 것이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그 주인공은 이모부였다. 상간녀의 고백. 이것은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아직 나는 답을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이모는 그 일은 불행이었지만,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거면 됐다. 불행먼저, 다행히 뒤니, 이 일은 다행인 거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진 않다. 이모의 다이어리에서 그 시절에 적은 듯한 짧은 두 개의 글을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절망이 계속되는 아픔으로 단단해졌다. 심장이 찔려도 남일처럼 여기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괜찮은 척하면 시간에 무뎌져 내 절망이 날아갈 줄 알았다.’    

 

‘지옥 같은 시간들이 느릴 법도 한데 참 빨리도 간다. 당신을 믿어야 제대로 숨을 쉬며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을 믿어보겠다 했지만, 자꾸만 나는 끝이 없는 우울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불신의 늪으로 빠져든다. 헤어 나오려 부단히 애쓰면 잠시 그 늪의 끝에 걸터앉을 수 있다. 아주 잠시. 다시 빠져드는 그 늪은 더 어둡고 더 깊어 나를 세상의 끝으로 데리고 간다. 지금을 놓고 싶게 한다.’  

   

이모, 내 사랑하는 이모, 박정남. 왜 이모는 이 모든 절망을 가슴에 품고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날 밤 이모부였던 강철수 씨를 향해 총을 쏘았다. 총은 정확히 그의 가슴팍을 뚫고 지나갔고 피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것은 물론 꿈이었다. 이모가 내 아버지를 가족 중 유일하게 이해했던 것은 바로 이모만의 동굴 속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또한 잘못된 동굴로 들어섰음을 알았기 때문에.      


박정남, 내 이모는 절망 따위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절망을 잘 이용했다. 6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유를 했던 것일까? 그녀의 기록은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고,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박정남이 아니라 ‘박여름’으로.


“이모, 박여름이 뭐야? 하하”      


“야, 내 이름, 너무 촌스럽지 않니? 박정남, 나 너무 싫어 얘.” 그리고 덧붙였다.      


“난 여름을 너무 사랑하거든”   

   

이모가 사랑하는 여름, 여름은 이모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 여름이 되기 전까지, 이모는 잠시 소풍을 다녀왔다고 했다. 누가 그 시간들을 소풍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지금 소풍 중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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