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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Oct 23. 2024

동굴로 간 소풍

#6. 동굴로 간 소풍               


            

소풍이었다. 이모는 잠시 소풍을 다녀왔다. 비록 장소는 빛이 없는 동굴 속이었지만, 잘 다녀왔으니 됐다. 나 역시도 소풍 중이다. 동굴소풍, 빛은 없고 습하고 축축하며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동굴 안은 마음을 옥죄어 왔다. 빛이 보여 이곳의 실체가 훤하게 드러날 수만 있다면 잠시 찰나의 작은 빛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진짜 모습이.  


작은 이모 박정남이 값비싼 하얀 드레스를 입고 부러움과 질투의 축복을 받으며 동굴에 들어간 지 5년째 되던 해, 나는 또 다른 동굴로 들어갈 결심을 했다. 장현우와의 결혼, 지금 와서 고백하지만 나는 현우의 외모가 참 좋았다.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살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당시 나는 현우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귀한 품격이 넘쳤다. 물론 단단하게 씌어버린 내 눈의 콩깍지가 부린 착각일지도..., 은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삶을 단정하게 채워줄 것만 같은 현우,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 줄 것만 같은 현우, 은서는 나의 결심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와의 만남에서 고개를 갸웃했던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것들 때문에 그와의 만남을 그만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만남은 화려한 우연은 아니었지만, 운명은 맞았다. 현우는 제법 규모가 큰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새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미술학원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직접 운영하는 미술학원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작은 상가를 임대받는 것까지는 도움을 받았지만, 그다음부터 모두 내가 할 일들이었다.  

    

현우는 내 학원의 인테리어 담당자였고, 나의 또 다른 고백은 나는 그를 보고 첫눈에 반했는 것이다. 첫눈에 내 눈을 꽉 채워버린 현우의 미소가 그냥 좋았다. 또 한 가지, 현우는 꽤 능력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꽤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알아서 척척, 고민하는 지점까지 무척 감각적인 센스로 해결해 주었다. 나의 첫 시작에 그가 있었으니, 나에게 그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우린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9월의 어느 날,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을 시작으로, 매일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의 목소리가 좋았고, 삶을 만나는 태도가 근사했다. 그와 함께라면 내 삶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쯤, 그는 나에게 청혼을 했다. 선택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매일이 확신이었으니, 희선이처럼 세명의 남자 중 선택할 일도 없었으니,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결혼은 엄마의 마음에만 탐탁지 않았을 뿐이었다. 미술학원의 수강생들도 꽤 늘어 나의 경제적인 상황도 그럭저럭 괜찮아졌고 현우는 나와 결혼 후 인테리어 회사를 직접 운영할 계획이었다. 우리의 결혼으로 가는 과정은 이상하리만큼 순조로웠다. 나는 그걸 의심했었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순조롭게 느껴졌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여러 번 삐걱거렸었다. 사랑은 작은 삐걱임을 둔감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동굴로 들어간 첫날, 어쩌면 나에게 던져지는 시그널을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현우야, 너희 부모님은 어떤 분이셔?”      

“....”     

“무척 궁금해, 현우 넌 어떤 분을 닮았을까?”     


현우 부모님을 처음 만난 날, 현우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부드러움은 경직되었고, 웃음은 사라졌다. 그건 눈치를 보는 것과는 다른 결이었다. “어서 와요.” 두 분은 나의 존재를 반기는 듯, 아닌 듯했다. 분명 어서 와요라고 이야기했지만 제스처와 표정에는 불편함이 서려 있었다.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나는 그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날의 기운, 현우의 태도, 현우는 분명 사랑받고 자랐지만, 그 사랑에서 독립하지 못한 독립을 꿈꾸는 착한 아들이었음을..., 그땐 정말 알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 그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 만나는 날, 우리 부모님은 을인 된 것 마냥 그의 부모님은 갑이 된 것 마냥 이상한 기류가 흘렀고, 긴장되고 두근거려야 할 상견례 자리가 찌릿한 불편감으로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힘든 정도였다. 참 무심하고 무덤덤한 내 감정이여. 나는 그날 그 감정이 낯선 긴장이라 여겨버렸으니 나 스스로를 칭찬해야 하는 건지, 질책해야 하는 건지. 조금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 남편이 될 현우를 살펴봤어야 했다. 현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현우는 어떤 감정인지를.      

결혼의 시작은 낯선 사람들의 만남으로부터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상한 자리, 자식 일이니 앞서 말할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자리, 만점짜리 며느리감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바뀌는 운명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곱게 키운 딸이 결혼을 하겠다고 해 나온 자리에서 엄마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고, 나 역시도 개운하지 않은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고운 엄마입니다.”     

“네, 현우 엄마예요”      

“현우를 참 잘 키우셨어요.”      

“네, 현우는 어디 나무랄 데가 없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고운이가 복 받은 거죠.”      

“아.. 네.”      

“....”      

“현우 어머니 고향은 어디신가요?”     

“제 고향이 여기서 중요한가요? 자식들 자리인데.”      

“식 날은 언제쯤 좋으실까요?”     

“현우 편으로 날짜를 보내겠습니다. 웬만하면 맞춰주시죠.”      


엄마는 집으로 오는 길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잘못된 이야기들이 오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상대는 예의가 없었다. 결혼을 무산시켜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이 아니라 무어라 마땅히 할 말이 없었던 엄마는 차에서 내리며 한숨만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의 특징,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 예쁨 받고 싶어 하는 착한 며느리병에 걸린다. 그것은 시어머니의 하기 나름에 의해 유지 기간이 걸정 된다. 나 역시도 착한 며느리병에 걸렸다. 다행히 나의 유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처음엔 그랬다. 어머님이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전복을 사러 시장에 갔다. 난생처음 사보는 전복을 다행히 손질까지 부탁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고, 레시피를 검색했다. 찹쌀 1, 쌀 1, 전복 내장, 참기름을 쪼물딱 쪼물딱 잘 섞어 잘 달군 펜에 달달 볶았고 물을 뜨겁게 끓여 조금씩 부어가며 천천히 죽을 끓였다. 죽이 튀니 화상에 조심하라는 레시피에 적힌 글을 잘 새기며 조심조심 죽을 끓였다. 처음 끓이는 전복죽이 꽤나 먹음직스럽게 완성되었지만, 문제는 그것을 담을 보온병이 없다는 것. 보온병을 사러 나가야 했다. 죽은 잠시 뚜껑을 덮어두고, 급한 발걸음으로 마트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레시피의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려 그 마음이 더 급해졌다.

     

‘전복죽은 끓인 직후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차 시동이 걸리지가 않았다. 자동차 스마트 키를 두고 나온 것이었다. 다시 또 급하게 집으로 들어가 차키를 가지고 나왔다. 사람이 하지 않던 일을 다급하게 할 때는 실수가 생기고 어느 날은 기다렸다는 듯 사고가 터진다는 것. 그것은 흔히들 ‘아다리 걸렸다’라는 말로 퉁치기도 한다. 그날 나는 딱 그랬다. 마트로 가는 길, 나는 신호가 바뀌어 멈추던 앞차를 박았다. 시속 50km로 달리며 앞차가 멈추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발은 브레이크를 외면했다. 눈과 몸이 따로 움직일 수 있다니, 그때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착한 며느리 노릇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란 것을. 그저 사심 없이 기분 좋게 착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 그녀와 좋은 관계가 되고 싶은, 이상하게 며느리가 을이 된 사회의 분위기를 눈치채고 전전긍긍하는 서글픈 일이었음을. 자동차 앞 범퍼가 뒷 차에 푹 박히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사고처리 중, 현우가 왔다. 현우에게 죽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내 기분은 이상하게 비참했다.      


“전복죽을 끓였는데, 갑자기 콜라가 너무 먹고 싶었지 뭐야. 콜라 사러 가는 길이었어.”      


그날 이후로도 나는 사회의 문화에 공유되어 결혼날이 되기 전까지 처음 호두파이를 만들어 보고, 처음 케이크를 만들어 보았다. 너무 이상했던 것은 호두파이와 케이크를 받아 든 그들의 반응이었다. 우리 집과 현우네 집의 문화의 차이겠거니 여겼지만, 애씀에 대한 반응은 마치 15초 이상 푹 삶은 시금치 같았다. 너무 삶아 물러져버린 시금치의 잎처럼 그들에게는 그 어떤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현우야, 부모님은 케이크를 안 좋아하시나 봐”     

“아.. 아니야, 잘 드실 거야”      

“맛이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      


다음 날 착한 며느리병에 걸린 딸의 지원군 엄마는 예비 사돈댁으로 소고기를 보내려 현우와 나를 집으로 불렀다.     


“어머니, 뭘 이런 걸 준비하셨어요.”     

“우리 거 사면서 너무 좋아 보이길레 샀어. 가져다 드려, 나눠 먹으면 좋지, 뭘 그래.”

“감사합니다. 잘 전해드릴게요”    

  

엄마, 우리 엄마 박정숙, 공교롭게도 예비 시어머니의 이름도 정숙이었다. 권정숙, 두 정숙. 나에게 엄마와 시어머니의 이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름이 같은 것이 잠시 신기했지만, 엄마는 너무 재밌다며 어떻게 이름이 같을 수 있냐고, 이건 하늘이 준 인연이라며 매일매일 감탄을 했다.


현우와 소고기를 소중하게 들고 현우네 집으로 왔다. 어제도 왔던 집이기에 미리 전화를 하지 않고 벨을 누른 것이 그렇게나 큰 잘못이었을까? 나는 그날 배운 것이 없는 우주 안에서 가장 예의 없는 예비 며느리가 되었다. 나를 꾸짖는 그녀의 목소리와 시선, 말의 품격은 나를 매우 작고 볼품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울컥하고 가슴에서 뭔가가 올라와 시야가 흐려졌다. 흐려진 시야 끝으로 보이는 쓰레기통 옆에 세 시간이 걸려야 완성된 케이크가 상자에 고스란히 담긴 채 바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저 아이는 냉장고에 있어야 하는데 왜 저기 저러고 있을까? 호두 파이도, 케이크도, 소고기도, 나 안고운도 이 집에서의 자리는 바로 케이크가 자리 잡고 있는 저곳이었다. 없으면 안되지만, 눈에 띄면 불쾌한, 있는 듯 없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포지션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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